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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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꽃병문화

2016.12.13 04:54

최선호 조회 수:6

 

 

꽃병 문화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 없는 풀도 없다. 굵은 뿌리이든 실 뿌리이든 제격에 맞는 뿌리가 다 있다. 그렇다고 나무나 풀에만 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만사 삼라만상 어느 것에든지 뿌리는 있게 마련이다.


   꽃병의 꽃은 뿌리가 없지 않고, 뿌리가 있지만  잘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뿌리 없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뿌리는 사물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생겨 날 수가 없고, 그에 따른 역사도 출발할 수가 없다.

 

   뿌리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뿌리로부터 모든 생명이 싹을 내고 줄기가 자라고 잎이 피고 꽃봉오리가 벙글지만, 뿌리가 시들면 줄기나 잎이나 꽃은 생기를 잃어 저절로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시작도 뿌리에, 끝도 뿌리에 연관되어 있다.

 

   사람 개개인에게도 뿌리가 있다. 조상으로부터 이어 내린 피의 뿌리, 뼈대의 뿌리, 가풍의 뿌리가 그것이다.

 개인이 아닌, 사회나 국가에도 뿌리가 있다. 뿌리가 넓고 깊게 자리 잡혀 있어야 가풍이나 전통, 역사와 문화도 넓고 깊게 지속된다.

  하늘에 뜬 해, 달, 별들에게도 뿌리, 즉 그 근본이 있다. 만약 오늘밤에라도 태양이 그 근본을 잃는다면 내일이 와도 태양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별이나 달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나 근본을 잃는다면 그것이 마지막이다. 뿌리 없는 줄기나 잎, 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민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뿌리는 우리 조국에서 연유한다. 이것은 사상이나 철학이나 예술이 아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가지는 핏줄로의 연결이다. 그러므로 어느 꽃인들 꽃밭에서 잘려 나와 꽃병에 꽂히고 싶어하겠는가?

  우리 동포사회는 꽃병문화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중 문화에 희석되어 뿌리 의식마저 잃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난 나그네 동포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뿌리의 온상을 마련키 위해 민족성 회복은 물론, 그에 상응하는 뿌리 찾기가 절실해진다. 자기네 문화나 전통과의 단절은 그야말로 천애고아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신앙에도 뿌리가 있고, 교회에도 뿌리가 있다. 선에는 선의 뿌리, 복에는 복의 뿌리가 있고, 악에는 악의 뿌리가 있다. 만약, 뿌리를 잃은 신앙, 뿌리 없는 교회가 있다면 꽃병에 꽂혀 있는, 뿌리 잘린 꽃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해관계나 체면치레로 교회를 찾는 이들은 없는지. 복음을 전한다면서 엉뚱한 철학이야기나 자기방어 또는 속세에 영합하고 있지는 않은지. 만약 그런 일이 추호라도 있다면 이것은 뿌리 잘린 꽃병문화 또는 꽃병신앙일 수밖에 없어 머지않아 시들어져 깡마른 시신만 남게 될 것이다.

 

  뿌리 없는 신앙은 허공에 뜬 신앙이다. 뿌리 없는 교회도 허공에 뜬 교회다. 신앙의 뿌리, 교회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도 되시고 뿌리도 되신다. 포도나무와 같은 질기고 튼튼한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야말로 반석 위에 세운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에서의 고난, 부활, 승천, 재림을 믿으며 구원의 확신으로 영생을 소망하는 믿음이 믿는 자와 교회의 뿌리다. 이것을 부인하거나 잃어버리면 이단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와 교회는 주님을 뿌리로 하여 피어날 때 위대하고 아름답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성도가 된다.  흔들리거나 시들지 않는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뿌리에 접목되어야 한다. 뿌리 잘린 꽃으로 병에 꽂혀 있을 때는 잘 어울려 보이고 퍽 아름다운 것 같으나 머지않아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본적 사고에 묻혀 뿌리를 잃은 신앙, 뿌리가 약한 교회가 있다면 이와 다를 바 있으랴! 다만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행태만이 시퍼런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서로 사랑으로 화합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도우며 사는 길이야말로 가장 좋은 뿌리에서 자라 오른 인간이 가지는 최상의 삶이다.

 한때는 주님을 열렬히 따르던 가룟 유다가 근본을 잃고 후회로 목숨을 끊지 않았던가! 순간의 안일을 위해 제 뿌리를 잘랐기 때문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3:10)는 말씀은
 우리들로 하여금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런데 꽃병에 꽂힌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없지 않은가. 꽃병문화에서 '꽃밭문화'로의 변화가 절실하다.  (199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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