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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시편정해 시편 119편

2016.12.02 16:38

최선호 조회 수:493

 

 

                                     시편 119편

 

 

 

이 시는 답관체 형식으로써 다른 시의 형태보다 더욱 엄격한 특성을 갖고 있다. 총 22 연(22 stanzas)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연마다 8 절(8 verses)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연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대로 1연은 ‘알렢’으로, 2연은 ‘베트’로, 3연은 ‘기멜’로…22행은 ‘타우’로 시작된다. 이처럼 여러 가지 주제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의 내용을 개략하기는 어렵지만 시인은 첫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권면하고 둘째, 계율에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방법을 지적해 줌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율법을 연구하도록 권면하고 있다.1)

특히 말씀에 대한 시인의 진지한 자세와 말씀의 본질 및 기능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총 176 절 가운데 넉 절(84, 121, 122, 132절)을 제외한 모든 절에서 말씀, 율법, 법, 증거, 법도, 율례, 계명, 판단, 규례, 도(道)와 같은 동의어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 시의 구조는 여덟 절을 단위로 하여 각 절의 첫 단어들이 동일한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되며, 또한 매 여덟 절이 스물 두 자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이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8 절×22 연=176 절).2) 150 편 중 가장 긴 시이다.


주제: 여호와의 말씀을 통한 완전한 삶.

소재: 말씀, 율법, 법, 증거, 법도, 율례, 계명, 판단, 규례, 도.

배경: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기를 원하는 생활환경(바벨론 포로 후기로 추정).

수사: 문답(변화), 반복, 연쇄, 직유, 경구, 신인동형, 비교, 인용, 사은유, 은유, 의태, 제유(대유).

경향: 묵상, 기도, 권면, 교훈.

구성: 병렬. 답관체(踏冠體- acrostic: 각 절의 첫 자를 히브리 알파벳순에 따라 배열함), 평행법(parallelism).

작자: 미상(바벨론 포로 후기에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았던 경건한 유대인(제사장)이 쓴 시로 추정).

핵심어: 여호와.

 

* 묵상기도의 시


 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3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1~8절: 첫 행이 히브리 알파벳 첫 자(Aleph)로 시작되다.

말씀을 지킴에 있어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함을 말한다.3)


1절: “여호와의 법”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토라’는 ‘교훈한다’란 의미를 가진 말에서 온 것으로 성경에서는 ‘율법’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을 뜻하기보다는 광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법칙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축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으로 시편기자는 인간의 행위 기준에 이것이 있음을 밝히고 이 법을 준수하라고 촉구한다.4)

시인은 묵상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완전하기를 갈망하며 “여호와의 법”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자신이 복 있는 자이기를 영탄적으로 노래한다. 옳은 신앙에서 복을 갈구하고 있다.

2절: 1절에서는 “여호와의 법”을, 2절에서는 “여호와의 증거”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인 복음이다(마7:24~27;28:20). 복음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3절: 1절에서는 “여호와의 법”을, 2절에서는 “여호와의 증거”를, 3절에서는 “주의 도”를 나타내고 있다. 역시 여호와께서 주신 복음의 동의어들이다. 하나님의 법(도)을 따라서 사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다(창5:22,24).

4절: “주의 법도”를 “근실히 지키게”하심으로 주님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을 강조한다.

5절: “주의 율례”를 지킴으로 영원한 영적 축복에 이른다.

6절: 성도의 의무를 다 할 때 떳떳한 의인에 이른다.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사50:7;잠28:1).

7절: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함”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것”을 강조한다. “주의 의로운 판단”은 ‘공의(公義)’로 이루어진다.

8절: “주의 율례를 지키면”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율례를 지킴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


 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9~16절: 첫 행이 히브리 알파벳 두 번째 글자(Beth)로 시작되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두신 율법이 죄를 막고 기쁨을 가져오는 방편임을 제시한다(잠7:1~5;렘31:33;마4:1~11).5)

정욕의 지배를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청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전12:1;딤후3:15~17).6)


9절: 문답법(변화법)으로 자문자답형식을 취하여 청년이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정욕이 강하고 생각이 방만한 때의 청년에게의 경고가 9~16절에 이어지고 있다(전11:9;12:1;딤후3:15~17).

10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으면 정결케 되므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라.

11절: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는 성경의 능력을 믿고 말씀을 묵상함이다. 이는 범죄하지 않으려는 경건한 삶이다.

12절: 의미상으로 도치문(倒置文)이다. 정치법(正置法)으로 보면 “주의 율례를 가르치심으로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의미이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를 앞에 놓고 극존칭 애원으로 강조하고 있다. 주의 율례를 가르치고 배우는 중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다.

13절: “주의 입”은 신인동형의 표현이다. 따라서 “입”은 주님을 대신한 대유(代喩), 제유(提喩)의 표현이다. 주의 규례를 내 입으로 참되게 선포(증거)하였다.

14절: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는 직유의 표현이다.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는 영적 부요와 즐거움의 표현이다. 

15~16절: “주의 법도”와 “주의 율례”는 동의어이다. 이를 묵상하고, 주의하며, 즐거워하며, 잊지 않음은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을 의미한다.


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17~24절: 히브리 알파벳 세 번째 글자(Gimel)로 시작되다.

율법을 연구함으로써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을 확보한다는 것을 가르친다.7)

인간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자신의 이성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말씀은 단지 순종의 대상일 뿐이다.8)


17절: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면 주의 말씀을 지키이리이다”는 조건부의 내용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지켜 살면 그것이 바로 후대 받는 길이다. “후대”를 강조하기 위하여 앞세웠다고 생각함이 좋다.

18절: 영적 지혜를 볼 수 있도록 영의 눈을 밝히는 방법은 기이한 주의 법에 있음을 알게 한다.

19절: “땅에서 객이 됨”은 ‘나그네’ 신세와 같다. 영적 나그네를 말한다. “주의 계명”을 바로 알면 영적 나그네를 면하게 된다(히11:13).

20절: “주의 율례를 사모함으로”와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는 역접(逆接) 관계이다. “주의 율례”와 “내 마음” 사이에 내 자신이 ‘땅에서 객이 된 신세’(19절)로 영적 소망을 갖기에는 자신의 부족을 너무 강렬하게 인식하는 자책지감(自責之感)에서 “마음이 상함”을 느끼는 통회(痛悔)의 표현으로 봄이 좋을 듯싶다(131절). 또는 역설적 표현(逆說的表現)으로 “주의 율례”를 향한 마음이 심화(深化), 확대(擴大) 될수록 세상을 향했던 마음이 상함을 받는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21절: 교만을 갖고 주의 계명에서 떠나면 영적 방황자가 되므로 하나님의 저주와 책망을 면치 못한다.

22절: 19, 20절의 내용과는 달리 22절은 대단한 비약(飛躍)을 보인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라고 자신 있는 당당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적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23절: “나”라는 호칭이 “주의 종”으로 바뀌었다. 자기를 비방하는 방백들과 대조적으로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로 고백하고 있다. “비방”과 “묵상”은 서로 반대의 개념으로 쓰여 있다.

24절: “나의”를 반복, 강조함으로써 주와 나의 관계를 더욱 확실히 하고 있다. “나의 즐거움”과 “나의 모사”는 오직 “주의 증거” 뿐임을 강조한다.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26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27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28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제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25~32절: 히브리 알파벳 네 번째 글자(Daleth)로 시작되다.

고난 중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된 새로운 생명을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신30:1~2).9)

시인은 자신의 무지와 부패함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노래하고 있다.10)


25절: “나의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는 ‘나는 죽었사오니’ 또는 ‘나는 시체가 되었사오니’의 표현을 우회적(迂廻的)으로 한 시적(詩的) 표현이다. 영적으로 시체와 같이 죽은 상태에서 소성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주의 말씀”대로 사는 길뿐이다. 주의 말씀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새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26절: “내가 내 행위를 고하매”는 주 앞에서 회개함을 나타낸다. 그 회개를 받아 응답하시는 주께 주의 율례를 배우기를 갈망하고 있다. 주는 교사이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27절: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는 구속적(拘束的)인 조건부(條件附)가 아니라 ‘주의 기사를 묵상함’으로써 주의 법도를 깨닫는다는 의미인데 “주의 법도”를 자의(自意)로 깨달을 수 없기에 먼저 주께 부탁을 한다. 순서를 바꾸어 표현한 의도는 “주의 법도 깨달음”을 강조하기 위한 도치법(倒置法)의 수사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혜를 찾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8절: 영혼이 눌림의 상태에까지 떨어진 상태에 있을지라도 “주의 말씀”으로 세워짐의 약속된 능력(삼하22:40)을 믿음으로 드리는 고백이다.

29절: 내가 주의 법으로 은혜로이 될 때 거짓행위를 떠나게 됨으로 자신의 마음 판에 “주의 법”을 통한 말씀의 유익을 구하고 있다.

30절: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는 상태는 “거짓행위”(29절)와 반대의 상황이다.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음”은 의의 길을 택하는 바른 선택이기 때문이다.

31절: “주의 증거”는 ‘여호와의 증거’이다. 이로써 수치를 당하지 않을 떳떳한 의인으로 확고부동함을 나타낸다.

32절: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감”으로써 “내 마음은 넓어진다”. 그러나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감”이 내 뜻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고 주의 도우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38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33~40절: 히브리 알파벳 다섯 번째 글자(He)로 시작되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신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여 인간적인 탐욕과 그 무익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간구한다(요일2:15~17).11)

주의 법도를 사모하는 시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12)


33절: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주의 율례를 깨달아 끝까지 지킬 수 있음을 알고 간구한다.

34절: “깨달음”은 의지에 앞선 지혜이다. 확신 있는 기도로 “주의 법”을 아는 지혜를 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지혜를 가르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전심으로 준행하는 믿음을 보이고 있다(신17:19).

35절: 25절부터 35절까지 점층적 수법으로 강조되고 있다. 25절에서 영적 죽음의 상태에서 소성되어 35절에 와서는 “즐거워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동화(同和)의 정도가 점점 심화되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시인이 열심 있는 기도를 통하여 ‘의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 “소성케 하소서”(25절)〈“가르치소서”(26절)〈“묵상하리이다”(27절)〈“나를 세우소서”(28절)〈“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29절)〈“내 앞에 두었나이다”(30절)〈“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31절)〈“달려가리이다”(32절)〈“끝까지 지키리이다”(33절)〈“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34절)〈“즐거워함이니이다”(35절) 등의 내용은 점진적으로 주의 말씀(율례, 기사, 법, 증거, 계명)과 시인의 관계가 밀착(密着), 동화(同和)되고 있음으로 점층적(漸層的) 강조 수법이다.


36절: “주의 증거”와 “탐욕”이 대조적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나 “탐욕”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고 “주의 증거”의 길만을 택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그 마음의 기능을 움직이고 있다.

37절: “허탄한 것”은 ‘거짓’(시12:2;24:4) ‘다툼’(사59:4) ‘우상 숭배’(욘2:8) ‘탐욕’(36절) 등을 말한다. 이것들은 유익을 주지 못한다. 허망하고 망령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공허함만 더 할 뿐이다. 다만 “주의 도”를 통해서 유익을 구할 수 있다.

38절: “주의 말씀”은 인간이 “주를 경외함”으로 인간이 말씀으로 바로 세워진다. “주의 종”은 넓게 “주의 말씀”을 경외하는 개인이나 모든 이를 통칭하고 있다.

39절: “선”은 “훼방”을 이기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주의 규례”의 속성도 “선”이다.

40절: “주의 의”로 소성하려는 영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다(시119:50).


41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

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45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46 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

47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41~48절: 히브리 알파벳 여섯 번째 글자(Waw)로 시작되다.

시인은 신앙을 조롱하는 자에게 대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주실 것을 간구한다. 그러면 시인은 어떠한 권력자 앞에서라도 떳떳이 신앙을 증거하겠노라는 것이다(마10:18;행26:1,2).13)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모든 지혜의 근원이 그 말씀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말씀이 제공하는 참된 자유와 용기를 소유하게 된다(요8:32;약1:25).14)


41절: “주의 인자”로 구원을 얻으려는 탄원이다. “여호와여”의 호격으로 간절한 애원을 호소하는 동시에 “주의 말씀”, “주의 인자하심”, “주의 구원” 등, 같은 의미의 단어가 세 번씩 반복, 강조되어 ‘주의 전권’을 뚜렷이 돋우고 있다(행16:30).

42절: 영혼의 대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주의 말씀을 의뢰함” 뿐이다.

43절: 약속된 영감(출4:12)과 영적인 소망을 위하여 “주의 규례”를 바라고 있다.

44절: “영영히”와 “끝없이”가 반복, 강조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 말씀’(신17:19)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이다.

45~48절: ‘하나님의 법도’를 통하여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자 함이다. “주의 법도”(45절) “주의 증거”(46절) “주의 계명”(47절) “주의 계명”(48절)을 목적어(目的語)로 하여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45절),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46절), “스스로 즐거워하며”(47절), “묵상하리이다”(48절) 등의 서술어로 연결을 이루고 있다. 중심개념은 ‘하나님의 법도’이다.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51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 하였나이다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54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49~56절: 히브리 알파벳 일곱 번째 글자(Zayin)로 시작되다.

신앙생활 자체가 조롱을 받는 위기에 처하여 신앙과는 거리가 먼 생활로 타락해 가는 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말씀이 소망이 되고 생명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고난 중에 신앙을 견지하느냐의 여부는 말씀 청종의 여부에 따라 다르다. 시인의 율법을 향한 자세는 밤과 낮이 없다. 그래서 말씀은 그의 소유의 일부가 아니라 곧 유일한 소유가 된다(56절). 다른 것이 없어져도 이것만은 굳게 부여잡았던 것이다.15)

시인은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소리 높여 간증한다.16)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라도 위로와 길잡이가 됨을 고백하고 있다.17) 


49절: “종”은 시인 자신을 가리키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이는 모두 “종”이다. 또한 “종”이라고 불림을 받는다.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의 “소망”은 ‘영적인 소망’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 받는 영적인 소망이야말로 얼마나 값진 소망일까!

50절 하나님께서 위로하심으로 영적 소생을 이루셨다(88절).

51절: “주의 법을 떠나지 않음은 ‘영적인 건실함’을 나타낸다.

52절: 50절과 연관이 깊다. 스스로 위로를 하였지만 위로의 근원은 여호와이시다(136절).

53절: “맹렬한 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열심히 율법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하여 의로운 분노를 일으키게 하였음을 뜻한다.

54절: “나그네 된 집에서”- 성도에게는 이 세상이 나그네가 잠시 거쳐가는 여관집과 같다. 즉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방랑과 고난의 역경을 겪어야 하는 나그네인 것이다(히11:13~16). 하지만 그 나그네 된 삶에서도 돌아가야 할 분명한 목적지와 말씀을 통하여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에 성도는 늘 기뻐할 수 있다.18)

“집”의 의미와 “나의 노래”를 통하여 ‘찬송하는 목적’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

55절: 남이 다 잠을 자는 밤에 시인은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으니” 깨어 있는 낮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56절: “내 소유가 주의 법도”이면 이것은 영적 기업의 특징이다. 하나님의 법도는 모든 이의 영적 기업이 되어야 마땅하다.


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 내가 전심으로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60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61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

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57~64절: 히브리 알파벳 여덟 번째 글자(Heth)로 시작되다.

말씀에 대한 감사와 경건한 생활을 말한다.19)

시인은 하나님의 율례를 지켜야 할 가장 큰 이유를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차적인 이유로써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지도를 받지 않고는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20)

시인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그 분의 긍휼을 구하고 경건한 이웃들과 더불어 말씀생활에 헌신하고자 다짐하고 있다.21)


57절: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는 성도의 분깃이 여호와임을 깨달은 시인의 고백이 인용으로 강조되어 있다(시142:5). 시인이 따라야 할 대상이 여호와뿐임을 강조하고 있다(눅2:51).

58절: 열심 있는 간구로 자비를 구하는 영적인 마음이 나타나 있다.

59절: “발을 돌이켰사오며”에서 ‘자기 성찰’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자기 성찰’은 “주의 증거”를 바탕으로 한 성찰이다.

60절: “주의 계명”을 순발력 있게 신속히 지켜야 함을 나타낸다(창22:3). 옳은 길은 머뭇거리며 가선 안 된다.   

61절: “악인의 줄”과 “주의 법”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악인의 줄”이 내게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따라 ‘의의 길’로 가겠다는 고백이다.

62절: 밤중에 열심 있는 기도로 주께 감사 찬양을 드린다.

63절: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에서 성도의 진정한 교제를 발견하게 된다(말3:16). 거룩한 친교의 삶이다.

64절: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충만하신 여호와께 자신이 주의 율례로 온전히 되기를 간청하고 있다.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65~72절: 히브리 알파벳 아홉 번째 글자(Teth)로 시작되다.

고난 이전에는 타락의 길을 걸었으나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말씀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22)

시인은 자기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근본 동인(動因)이 하나님의 자비심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인간의 영역에서 아무리 경건하고 지혜롭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 없이는 선을 추구할 수 없다. 때때로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적인 제약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시기도 한다(욥42:2~6).23)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타락한 생활을 했으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말씀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24)


65절: 선(善)하신 여호와의 언약대로 시인을 선대(善待)하시는 성실을 보여주심이 나타나 있다.

66절: 시인은 “주의 계명”을 믿고 영적 명철과 영적 지식을 구하고 있다.

67절: “고난”이 삶의 전환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 “고난”을 겪고 나서 “주의 말씀”을 지킴으로 그 고난이야말로 ‘복된 고난’이 아닐 수 없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

68절: 67절의 연결로 보아 징계를 해서라도 나(시인)로 하여금 “주의 율례”를 따르도록 해달라는 간구이다. 선하신 하나님께는 이런 요구도 가능한 것이다.

69절: 거짓에 대한 금지를 함으로 흠이 없는 온전한 헌신을 다짐한다(살전5:23).

70절: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脂肪)같으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둔하고 무감각하여 미련한 상태’를 비유한 직유(直喩)의 표현이다. 즉 물질적으로는 부요하지만, 영적으로 메마른 상태를 묘사한 표현이다. 그들의 마음 판에는 “주의 법”이 새겨져 있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시37:31).

71절: 고난 당하기 전(67절)과 고난 당한 후(71절)의 차이가 이렇게 다르다.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으므로 “고난”이 ‘징계의 유익’을 얻게 한다.

72절: “주의 법”은 세상의 어느 물질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한 말씀이지만 시인은 “천천 금은보다”라고 비교법을 쓰면서까지 고귀한 진리를 사모하고 있다(127절).


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74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76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77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78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79 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의 증거를 알리이다

80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73~80절: 히브리 알파벳 열 번째 글자(Yodh)로 시작되다.

여기서 시인은 잠시 율법에서 벗어나서 그릇된 길을 걸었던 과거를 교만한 자의 유혹이라고 진단하고 교만한 악인에 대한 진멸을 탄원하면서 실족한 의인의 돌아섬과 또 자신의 삶이 완전을 행하여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기를 간구한다.25)

교만한 자들이 부끄럼을 당하고 경건한 자들이 자신과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법칙에 따라 자신을 완전하게 세워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26)


73절: “주의 손”은 신인동형, 의인법(神人同形, 擬人法)의 표현이다. 이는 창조주의 능력의 손이다. 주의 능력의 영향으로 “깨닫고”,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라며 호소한다. 주의 능력이라면 불가능이 없이 온전히 이루게 된다.

74절: 주를 경외한 영적인 소망이 기쁨으로 승화되고 있다. “주를 경외하는 자”를 통하여 나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와 같이 타인을 통하여 나를 나타내는 방법은 간접묘사수법(間接描寫手法)이다.

75절: 하나님의 심판은 “의”와 “성실”로 말미암는다. 나를 괴롭게 하심도 하나님의 언약이므로 하나님의 뜻이다.

76절: 하나님의 언약의 위로가 성취됨을 나타낸다(왕상8:56).

77절: 내가 사는 유일한 길은 “주의 법”을 즐거움으로 준행하는 일이다. 즐거움의 근원은 “주의 법”에 있다.

78절: “나를 무고히 엎드러뜨리는 교만한 자”와 “주의 법도를 묵상하는” 내가 대조(對照)를 이루고 있다(사26:11).

79절: 성도들이 연합되기를 원하므로 “주의 증거”로 참된 증거가 되게 하려는 호소이다.

80절: 영적인 마음을 품어(신5:29) 떳떳한 의인이 됨으로 수치를 당치 않게 되기를 소원한다.


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85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81~88절: 히브리 알파벳 열 한 번째 글자(Kaph)로 시작되다.

시인이 고난 중에 있음과 그런 중에도 말씀을 지키고 있으므로 구원을 베풀어 달라는 호소이다. 지금 시인은 고난 당하여 거의 멸망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87절). 이런 상태를 버려진 상태, 혹은 무관심한 상태라고 스스로 되뇐다(83절). 그러면서 언제 악인을 진멸할 것인지 묻는다(84절). 그들은 교만한 자이며 더 나아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고난에 처한 의인을 핍박하며(86절) 그를 죽일 궁리까지 도모하고 있다(85절). 하지만 고난 중에서도 시인은 주의 언약인 말씀을 굳건히 부여잡고 절대로 잊지 않으며(83절) 버리지 않는다(87절). 그 말씀은 신실하기 때문이다(86절).27)

시인이 고난 중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은 결코 파기되지 않는다(벧전1:24,25).28)

고난에 처한 시인은 약속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다.29)


81절: 본 절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역접관계(逆接關係)를 이루고 있다. 이는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함”보다 “주의 말씀을 바람”을 더 강조하려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열망하고 있다.

82절: 사랑스러운 말씀을 기다리지만(97절) 지금 믿음의 시험을 받고 있다(요11:6).

83절: “연기 중에 가죽병 같이”는 직유법(直喩法)의 표현으로써 연기에 그을려 열을 받아 쪼글쪼글해져 버려진 가죽 술 부대처럼 시인이 고통에 시달려 형편없이 된 처지임을 비유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주의 율례”를 잊지 않는다는 믿음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기 생각을 통한 고백은 자신을 나타내는 직접묘사(直接描寫)이다.

84절: 환난으로 괴로워하는 시인(주의 종)이 속히 환난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열망한다(시6:3).

85절: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는 나(시인)의 대적이다. 이들은 나(시인)를 해하려는 자들이다. “웅덩이”는 ‘올무’ ‘또는 그르치게 하기 위한 모략’ 등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쓰이는 “웅덩이” 같은 표현은 은유로써의 구실을 상실한 사은유(死隱喩)에 속한다.

86절: 핍박에서 벗어나려고(157절)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한다.

87절: 세상적으로는 죽었으나 영적으로는 살아 있음을 영적인 견실함을 통하여 알리고 “주의 법도”를 따를 뿐임을 나타낸다.

88절: 영적 소생을 하여(149절) 주의 증거자가 될 결심을 보인다. “주의 입”은 신인동형(神人同形)의 표현이다.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95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89~96절: 히브리 알파벳 열 두 번째 글자(Lamedh)로 시작되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의 불변성을 찬양하고, 고난 중에서도 이런 말씀을 굳게 의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30)

시인은 하나님 말씀의 영원성을 찬양하였다. 이 영원성은 단순히 정체되어 있거나 확고부동하다는 뜻만이 아니라, 계속적인 변화와 생명의 요동을 수반한 것이다. 즉 그 말씀은 당신의 거룩하신 목적을 좇아 끝내 그 목적이 성취되고야 말도록 활동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편에서 이런 사실들은 전혀 변함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동시대적인 것에 불과하다(시90:4;벧후3: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31)


89절: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고 굳건함을 찬양하고 있다(152절).

90절: “성실”은 우주의 창조자이신 “주”의 속성이다. 

91절: 우주만물에 대한 전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주권행사이다. 이 주권은 “만물”을 “주의 종”으로 삼았다. “만물”을 “주의 종”으로 표현한 수법은 의인법(擬人法)이다.

92절: 즐거움의 근원은 “주의 법”에 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됨으로 나의 멸망을 면하게 된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92절은 표현의 묘미에서도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93절: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함”은 지극한 충성이며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은 충성스럽게 순종한 내 믿음의 결과로써 새 사람이 되는 길을 보여준다.

94절: 온전한 구원을 간구하는 시인은 자신을 “주의 것”으로 온전한 의지를 보이며 하나님을 찾고 있다.

95절: “악인”과 “나”의 대조를 이루며 악한 행실(에3:6)을 하는 영혼의 대적과는 달리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며 착한 행실을 추구한다.

96절: 유한한 모든 것과 무한한 “주의 계명”이 대조를 이루어 하나님의 유일성을 찬양 강조한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무한한 “주의 계명”에 소망을 두고 살도록 교훈하고 있다.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8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104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97~104절: 히브리 알파벳 열 세 번째 글자(Mem)로 시작되다.

말씀을 열심히 연구할 때 시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롭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말씀은 시인을 원수, 스승이나 이스라엘의 전통을 후대에 전하는 노인보다 지혜롭게 한다는 것이다(98~100절).32)

시인은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이 원수, 스승, 노인의 지혜보다 앞서는 높은 지혜를 가져다주었음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존귀한 말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33)


97절: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스런 말씀으로 내 마음 판(시37:31)에 묵상의 중심을 이룬다.

98절: 지혜의 근원이 “주의 계명”에 있음을 강조한다. “주의 계명”을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는 대상으로 비교,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의 계명”은 나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99절: “스승(교사)의 가르침보다” 나은 것이 “주의 증거”이며, “주의 증거를 묵상함으로” 얻는 “명철”로 영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시48:9). 이것은 묵상에서 오는 기쁨이다(148절).  

100절: 노인보다 나은 것이 “주의 법도”임을 아는 것은 영적 지혜이다. “주의 법도”를 지켜 얻은 명철이 노인(가르침)보다 낫다는 뜻이다. “노인”은 이스라엘 전통 전수 책임자로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자를 말한다. 비교법을 이용한 강조이다.

101~102절: “주의 말씀”을 지켜 “주의 규례”를 떠나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의의 길’이며 하나님의 훈계에 따른 영적인 견실함이다.

103절: 주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므로(렘15:16) 육신의 양식보다 더 유익하고 달다. 위로와 기쁨과 소망을 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문답법과 비교법으로 강조하고 있다.

104절: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므로 거짓된 것들(113절)을 떠나는 영적 지혜를 누리게 된다.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1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05~112절: 히브리 알파벳 열 네 번째 글자(Nun)로 시작되다.

고난과 박해 중에서도 말씀이 시인을 인도하도록 그 말씀에 청종했음을 고백한다.34)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율례를 성실하게 지키겠노라고 맹세하였다. 또한 이 맹세가 어떤 환경의 변화가 있을지라도 파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이처럼 확실한 태도를 표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는 감격과 평온함 때문이었다.35)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시인은 말씀을 떠나지 아니하고 삶을 인도하는 말씀의 교훈에 따라 행동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36)


105절: “발”과 “길”이 동의, 열거이며 “등”과 “빛”도 동의, 열거이다. 이는 강조를 위한 표현이다. 즉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130절). 인간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진실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요1:4~11) 빛이 없으면 어둠과 불안 가운데 방황하다가 영원한 멸망의 객이 될 뿐이다. 인생은 자기의 부정확한 안목을 떨쳐버리고 ‘주의 빛’을 따라야 한다(18절).  

106절: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는 것은 굳은 언약 중에 지켜진다.

107절: 환난 중에 새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주의 말씀”만이 소성의 능력을 갖는다.

108절: “내 입의 낙헌제”란 ‘나의 기도와 찬양’을 의미한다. 낙헌제를 드릴 때는 힘대로(신16:17) 자원하는 마음으로(고후8:10~12) 인색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고후9:6,7) 드리게 되어 있었다. 한편 “받으시고”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라차’는 ‘오직 기쁘신 뜻이 따라’ 라는 은혜 안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친다.37)

109절: “생명이 항상 위경에” 처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지혜의 근원’을 잊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지혜로운 일이다.

110절: “주의 법도”와 대칭을 이룬 것이 “올무”(시140:5)이다. “올무”에 걸리지 않음은 “주의 법도를 떠나지 아니한” 까닭이다.

111절: “주의 율법”을 유산으로 받아 기쁨의 근원을 마련한다(16,24,35,47절). 가장 좋은 상속이다(사54:17).

112절: 거듭난 자의 순종의 실례를 볼 수 있다.


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117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119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


113~120절: 히브리 알파벳 열 다섯 번째 글자(Samekh)로 시작되다.

시인의 경건과 악인의 불경건을 날카롭게 대조시키고 있다. 이들의 분별 기준은 그 행동이 말씀 안에 속해 있느냐(116,117절) 말씀 밖에 있느냐(118절)이다. 중간 계층은 없다. 만약 있다면 두 마음을 품은 자일 뿐이다(113절).38)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피난처와 소망과 구원자가 되시지만 말씀을 떠난 행악자에게는 심판자가 되심을 선포하고 있다.39)


113절: “두 마음”은 율법을 향한 마음과 세상을 향한 마음이다. 오직 “주의 법”을 사랑하는 한마음이어야 한다는 마음의 교훈이다.

114절: “은신처”와 “방패”는 나를 향하신 “주”의 속성으로 나를 보호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주의 말씀”(47절)에서 나온다.

115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담대한 의인의 태도이다. “행악자”와 분리되기를 원하고 있다.

116절: “주의 말씀”에 따른 떳떳한 의인으로서 갖는 영적인 소망이다.

117절: “주의 율례”를 주의함이 성도의 안전이다.

118절: 미련한 자는 교묘한 거짓으로 속이는 자이다. 그것은 허무한 일로써 “주의 율례”를 떠났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119절: 찌끼같이 버림받는 악인이 되지 아니하고 “주의 증거를 사랑하는” 의인이 되겠다는 고백이다. “찌끼같이”는 ‘무가치함’을(마13:30,49,50) 나타내는 직유법의 보조관념이다.

120절: “주의 심판”이 두려우므로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명령하신다. “두려워함”이 반복, 강조를 이루고 있다.


121 내가 공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압박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

122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소서

123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24 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

12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128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21~128절: 히브리 알파벳 열 여섯 번째 글자(Ayin)로 시작되다.

악인이 율법을 파괴할 때 하나님이 간섭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 악인의 의인에 대한 핍박은 극심했던 것 같다. 시인은 이러한 악인의 핍박이 말씀대로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121절). 그래서 악인의 핍박에 의인을 붙이지 말 것을 호소한다(121,122절).40)

거짓 행위를 미워하며 공의를 행하고 계명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실천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를 억압하는 핍박자로부터 즉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다.41)


121절: 하나님께 공의(公義)에 대한 탄원을 하고 있다(신16:20).

122절: 주님을 참된 보증인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려는 애원이다.

123절: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의 뜻은 불평 불만이 아니라 여호와께 구원을 간구하는 고백이다.

124절: “주의 인자”와 “주의 율례”의 자비를 구하여 받아들일 태도를 보이고 있다.

125절: 지혜를 찾는 자의 고백이다.

126절: 주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다(시7:6).

127절: 비교법을 이용하여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함을 나타낸다. 이는 고귀한 진리(162절)에 대한 기대이다.

128절: 하나님의 법도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는다(마5:18). 또한 내 마음에 맞는 율법만 취사선택하여 지켜서도 안 되니, 그것은 주의 법도 전체가 온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 중 하나만 어겨도 모든 율법을 범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42) 거짓된 것들을 버리는 옳은 신앙에 대한 추구이다.    


129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33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134 사람의 압박에서 나를 구속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135 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


129~136절: 히브리 알파벳 열 일곱 번째 글자(Pe)로 시작되다.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슬픔에 처했다고 토로하면서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랑을 간구하고 있다.43)

시인은 죄악이 자신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혜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그를 가르치시고 압박자들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44)

 

129절: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이나 기타 다른 종교적 경전과는 그 성질상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속성에 있어서 단순히 의사전달의 수단을 넘은 영과 생명이다(요6:63). 따라서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케 하기도 하며(요15:3) 영혼을 소생케 하고 영과 혼을 찔러 쪼개며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마음의 어두운 생각을 드러내 폭로하고 분쇄시키기도 한다(히4:12,13). 능력의 말씀에 영혼이 의지함을 고백한다.

130절: “어둠을 밝히는 빛”(잠29:13)은 “주의 말씀이 열림”으로 이루어진다. “우둔한 자”는 “주의 말씀으로 깨닫게” 된다.

131절: 목마른 사슴처럼(시42: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 소망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132절: “주의 이름”은 “주의 영광”, “주의 권능”을 나타낸다. 또한 “주의 이름”은 ‘주의 모든 것’을 대신하기도 한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자비를 구하고 있다.

133절: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성도의 걸음은 영적 자유를 누리는 걸음으로 죄악이 그를 해칠 수가 없다.

134절: “사람”은 ‘악인’을 나타낸 말이다. 구출을 간구하고 있다(시140:1). 진정한 구출은 “주의 법도”로 이루어진다.

135절: “주의 얼굴”은 신인동형(神人同形)의 표현이다. “주의 율례”를 가르치시는 하나님께 은총을 비는 기도이다.

136절: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는 직유(直喩)와 과장(誇張)의 수사로 강조한 표현이다.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오는 불순종에 대한 염려이다(158절).      


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138 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

139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

140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137~144절: 히브리 알파벳 열 여덟 번째 글자(Tsadhe)로 시작되다.

율법, 즉 말씀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근거한(137절) 것이기 때문에 순결하고(140절) 성실하다(138절). 하나님이 영원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 말씀 또한 영원하다(142절). 시인이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140절).45)

시인은 하나님의 율례가 의롭고 진실한 이유는 그것을 말씀하신 분이 의롭고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판단과 인간에게 계시하신 당신의 모습은 조그마한 오류나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더욱이 하나님은 당신의 완전성뿐 아니라 모든 피조 세계의 비뚤어진 부분을 바르게 하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요15:3).46)


137절: 구약의 의를 나타내고 있다(시145:17). “의로우심”은 여호와의 공의(公義)이며, “정직하심”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의 공정성을 나타내는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찬양이다.

138절: “의로움”과 “성실”은 주의 속성이며, 주님이 역사하심으로 존재함을 찬양한다.

139절: “내 대적”은 ‘영적으로 나와 맞서는 자’를 일컫는다. “잊어버렸으므로”는 히브리어로 ‘쇠카’인데, 여기서는 ‘무시하다’로 번역함이 좋을 듯싶다. 관심 없이 무시하였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무시했으므로”이다.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는 ‘내 열성(사62:1)이 도저히 나를 참을 수 없게 하였나이다’ 또는 ‘주의 말씀을 무시하는 대적들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대하였기 때문에 정작 자신은 의식할 겨를이 없었으므로 자신을 잃은 상태’였다는 뜻이 된다.

140절: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精美)하므로”는 사랑이 자상하게 넘치는 말씀이다(잠30:5). 불순 요소가 끼이지 않은 말씀이기에 인간을 순수하게 이끄신다(요8:44,45;16:13).

141절: “주의 법도”를 잊지 않는 자는 멸시를 당하지 않는다. 나는 비록 미천할지라도 “주의 법도”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롬7:12).

142절: “주의 의”와 “주의 법”은 동의어이다. “주의 의”와 “주의 법”은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에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롬7:12).

143절: 성도에게도 근심이 닥쳤으나 “주의 계명”이 그 근심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키신다.

144절: 영혼의 생명을 소망하며 지혜를 찾는 자의 간절한 기도이다. 깨닫지 않으면 진리는 터득되지 않는다. 


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리이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키리이다

147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0 악을 좇는 자가 가까이 왔사오니

       저희는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152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를 궁구하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145~152절: 히브리 알파벳 열 아홉 번째 글자(Qoph)로 시작되다.

시련 중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고 고백한다.47)


145절: 전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전심으로 부르짖음”은 열심 있는 간구이다. “주의 율례를 지킴으로”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

146절: 145절과 내용이 같은 표현이다.

147절: “새벽 전”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네세프’는 ‘동틀 무렵 아직 빛이 분명히 비치지 않는 때’를 이르는 말이므로 여기서 새벽에 일어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즉 열심 있는 새벽기도를 드리고 주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슥8:21).

148절: “야경”(夜更)은 한밤중이다.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는 한밤중이 되기 전이니까 밤을 새워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묵상의 기쁨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149절: “주의 인자하심”은 주의 속성이다. “주의 규례”는 주의 속성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를 따르면 살 수 있고 새 사람이 된다(시143:11).

150절: “주의 법에서 먼” 악인들이 가까이 왔음을 고백한다. 이는 영적으로 당하는 괴로움이다.

151절: 가까이 계신 하나님(시145:18)을 알아차리는 지혜이다.

152절: “영원히 세우신 것”은 ‘영원한 말씀’이다.


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54 주는 나의 원한을 펴시고 나를 구속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55 구원이 악인에게서 멀어짐은

       저희가 주의 율례를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크오니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소성케 하소서

157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를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신 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153~160절: 히브리 알파벳 스무 번째 글자(Resh)로 시작되다.

악인으로부터의 구원을 계속 간구하면서 부동의 진리인 말씀에 대한 충성, 다시 말해서 하나님 뜻에 충성할 것을 다짐한다.48)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셔야만 된다고 간구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소리를 외면치 않으시고 그 기도에 신실히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50:15;렘33:3). 이처럼 기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부분은 매끄러운 언어 구사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다(히11:6).49)

시인은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시고 핍박 자와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소성케 하시기를 호소하고 있다.50)


153절: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이 고난 중에도 건짐을 받는 일이다. 간절하게 구출을 원하고 있다.

154절: 나의 원한을 풀고 새 사람으로 소성되기를 주의 말씀을 따라 소원하고 있다.

155절: 악인이 받는 보응이다. 악인은 말씀을 거부한 자이다(시50:17).

156절: “주의 규례”를 따라 새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는 기도이다.

157절: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은 동의어이다.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는 영적 대적 앞에서 영적인 견실함의 고백이다.  

158절: 불순종에 대한 염려(렘3:17)로 슬퍼하고 있다(136절).

159절: 사랑스런 말씀(47절)에 따라 영적 소성을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

160절: “주의 말씀”은 “진리”임으로 영원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찬양한다.    


161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63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64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167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 내가 주의 법도와 증거를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이니이다


161~168절: 히브리 알파벳 스물 한 번째 글자(Sin and Shin)로 시작되다.

율법이 그 사랑하는 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없이 찬양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말씀은 핍박에도 불구하고(161절) 극도의 기쁨을 가져다준다(162절). 그리고 이를 지킴으로 주 앞에 설 수 있다(168절).51)

이 부분에서 시편의 저자가 핍박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52)


161절: “방백들”과 “나”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무고히 나를 핍박하는 방백들은 “주의 말씀”을 떠난 자들이지만 “나”는 “주의 말씀만 경외하는 자”(신4:2)이다.

162절: 직유법의 활용으로 “주의 말씀을 즐거워함”을 강조한다. 즉 “주의 말씀을 즐거워함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같이 즐겁다는 표현이다. 여기서 “사람”은 ‘악인’을 의미하고 있다. “주의 말씀을 즐거워함”은 ‘고귀한 진리의 발견’이다(잠23:23).

163절: “거짓”과 “주의 법”이 대조를 이루었고 “미워하며 싫어하고”와 “사랑하나이다”가 대조를 이루어 “내가 주의 법 사랑함”을 강조하고 있다.

164절: “하루 일곱 번씩”의 “일곱 번”은 히브리적으로 완전 수이다. 그러므로 “일곱”의 의미는 ‘온전히 쉼이 없이’라는 뜻으로 계속적으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이는 온전히 주를 찬양함을 나타낸다.

165절: “주의 법”을 근거로 “평안”(잠3:17)을 유지하는 자에게는 장애물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의 “장애물”은 ‘영적 장애’를 의미한다. 

166절: “주의 계명”을 행함은 바로 “주의 구원”에 직결된다. 이는 영적 소원의 성취이다.

167절: “내 심령이 지킨 주의 증거”는 ‘사랑스런 말씀’(47절)이다.

168절: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킴”으로 내가 하나님께 드러난다(시139:3).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은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을 찬양한다.


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찬송을 발할지니이다

172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

173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5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유리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69~176절: 히브리 알파벳 스물 두 번째 글자(Taw)로 시작되다.

깨달음이나 구원의 간구, 혹은 애타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주의 도움 없이는 자기가 목자 없는 한 마리의 양임을 토로한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그 깨달음을 생활 속에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기쁨을 찬양하리라는 것이 시인의 서원이다(171절).53)

이 시의 결론으로써 시인은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말씀에 약속된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다.54)


169절: 영적 지혜(잠2:4)로 열심 있는 간구를 한다. “주의 말씀대로 깨닫기를 원함”은 매우 훌륭한 지혜이다.

170절: 내가 구출되기를 간구하며 그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171절: 하나님의 훈계를 통하여 전심전력으로 찬송할 것을 다짐한다. “입술”은 나의 몸과 마음과 정성 모두를 대칭(對稱)한 제유(提喩), 대유(代喩)에 속하는 수사이다. “발할지니라”는 단순히 ‘말하다’의 표현이 아니다. 샘에서 물거품이 올라오듯 말을 풍성하게 한다는 뜻인데, 이는 히브리어 동사의 원형인 ‘나바’에 근거한 표현이다.

172절: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는 ‘하나님의 말씀(시19:7)을 찬양한다’는 표현이다. 찬양의 근거를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에 두고 있다. “혀”는 앞 절의 “입술”과 같은 표현이다.

173절: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사오니”는 바른 선택이다(미4:5). ‘하나님의 도움을 청함’에 있어 “주의 손”은 신인동형(神人同形)의 수사이다. “주의 손”은 “주의 법도(말씀)”를 대칭(對稱)한다.

174절: 변함없는 영혼의 갈망(시143:6)으로 “주의 법”을 즐거워한다. 하나님 법도 안에서의 삶이다.

175절: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의 “내 영혼”은 ‘의인의 영혼’이다. “주의 규례”는 영혼의 생명을 살린다.

176절: “잃은 양 같이 유리하오니”는 직유의 표현으로 자신이 주를 떠나 방황함을 고백하며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있다. 그가 유리하고 있는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