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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2016.12.13 17:10

최선호 조회 수:214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옛날부터도 생일이라면 서로 축하를 하고 선물을 보내고 하는 관습이 있어서 탐관오리들은 흔히 생일을 재물 모으는 날로 여기는 일이 예사였다.

 중국 신천현에 장 모씨가 현령으로 취임하여 말로는 몹시 청백한 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얼마 아니 가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말하기를 "모월 모일이 내 생일인데 누구를 막론하고 무슨 선물 같은 것은 가져올 생각도 말게. 가져와도 받지 않을 테니"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분명한 토색 방법이었다. 현령 생일이 어느 날인지 알 리도 없고, 또 묻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생일은 왜 꺼내며 선물이야기를 왜 하는가. 이것은 넌지시 가져오라는 암시인지라, 현령 생일이 되자 사람들은 많은 비단이며 금과 은, 기물이며 값비싼 선물을 가지고 와서 현령의 생일을 축하했다.

 

 현령은 거짓 놀래는 듯이 "이게 웬 일들인고. 제발 이런 것들은 하지 말라고 미리 부탁을 하지 않았던가. 모처럼 가지고 온 것을 아니 받는다면 정의가 아니고, 받자 하니 이런 미안할 도리가 어디 있는가."라며 넙죽넙죽 선물을 받았다.

 

 사람들은 권에 못 이긴 듯 모두 음식을 먹고 돌아가려는데 "오늘은 이렇게 되었지만 모월 모일은 우리 마누라 생일이니 아무 것도 가져 오지들 말게." 하자, 사람들이 나오면서 "흥, 이건 갈퀴라도 쇠갈퀴로군, 알뜰이 긁기로 작정을 했구나" 라며 혀들을 찼다.

 

 그런데 현령 부인의 생일에도 역시 많은 예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어느 사람이 이런 사실을 풍자한 시 한 수를 현령에게 보냈는데
  "처음 올 때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고상한 학인 줄 알았더니 내려온 것을 보니 고기만 찾는 욕심 많은 백로였구나"라는 내용이었다 한다.

 높이 떠 있을 때는 우리에게 학같이 보였던 이들이 이제는 고기만 아는 백로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내가 재물을 모으고 싶어 모았다기보다는 재벌들의 관행에 따랐을 뿐. 또는 2천 8백 3십 8억 9천 6백 만원 뇌물수수 사실을 주장한 검찰 측에 대해 모 전직 대통령 변호인들은 관례에 따른 성금에 불과한 것이며 국책사업, 특정기업 발주지시는 안 했다고 말을 했다니, 과연 법을 아는 이들은 이렇게 말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관행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관행이면 집권기간에 깨끗하게 고쳐 볼 노력은 조금치도 안 해 보았단 말인가. 아침에 마음 편치 않은 가슴으로 신문을 읽다가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옛 말을 잠시 떠 올려 보았다.(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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