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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마누라

2016.12.13 12:32

최선호 조회 수:13

 

 

마누라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가운데 '마누라'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은 명사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통속적으로 쓰이는 저속한 말, 즉 상말에 해당하는 말이다.  '아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늙은 여자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누라라는 말은 남자의 짝이 되어 사는 여자를, 그 남자와의 관계로 일컫는 말이다. '부인'이란 말과도 통하고 '처'라는 말과도 통하는 말이다. 남자와 결혼하여 사는 여자를 부르는 말은 많은 데도, 하필 마누라란 말을 즐겨 쓰는지 모를 일이다. 속된 말을 쓰면 실상 속되지 않은 대상도 속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 그런지는 몰라도 '마누라'란 용어가 포함된 말을 대할 때마다 건전한 표현이 아니기에 몹시 거슬리게 느껴진다.

 

  여름 장마철이 되면 땅이 질척질척해 진다. 특히, 서울 영등포지역을 두고 하는 말 중에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또 "마누라는 빌어 줄 수 있어도 운전대는 못 빌어준다"는 말도 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 흥미롭다기보다는 존엄성 있는 인간, 특히 사랑스러운 아내들에 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질러 들게 된다.
 
  며칠 전, 월간잡지를 읽다가 큼직한 광고물에 시선이 멎었다. 그 광고 내용을 보는 순간 잠시 불손한 감정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마누라는 안 데리고 다녀도 골프넷트는 항상 가지고 다니죠"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찍혀 있는 것이다. 아내보다 골프가 더 소중하다는 뜻으로 쓰인 말임이 분명하다. 골프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얻어 보려는 상술에서 나온 말인 줄 안다. 물론, 한번 웃어넘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몰라도, 만약 골프 애호가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마누라보다 골프넷트를 더 소중히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하루속히 골프를 집어치워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골프가 아무리 재미있고 건전한 운동이라 하더라도 부인보다 소중할 수야 없지 않겠나! 마누라 즉, 아내의 위치가 어찌하다가 이토록 서글픈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인지. 비오는 날 신는 장화만도 못한 마누라. 돈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마누라일텐데, 돈 주고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골프넷트만도 못한 위치로 떨어지고 마는 마누라들의 신세가 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투의 말은 단란한 가정에 금을 긋는 독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늘구멍에 제방이 무너지듯, 고귀한 우리들의 가정이 한 마디 말로 무시당하고, 가정주부들이 골프넷트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면, 그것은 문화의 이기에 인간의 행복을 빼앗기는 위험을 범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소중한 우리들의 아내를 우리가 지켜주어야 한다. 비오는 날 장화보다 소중한 아내, 운전대보다도, 골프넷트보다도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아내들이므로 한마디 말이라도 가려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1996.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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