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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구원의 이정표

2016.12.12 15:01

최선호 조회 수:5

 

 

구원의 이정표

 

 


   인간은 하늘의 넓이를 모른다. 시간의 길이도 모른다. 이토록 무변광대한 우주의 한 지점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연결된 힘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매는 끈은 사랑이다. 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이다. 하나님을 향해 소리 지를 만큼 아팠던 상처, 이것은 남에 의해서 입은 상처다. 이 상처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밝은 획을 그은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의 경륜을 진행시키시는 도중에 <때(Kairos)가 차매> 그리스도로 성육하여 인간역사 안에 들어와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한 증표다. 만민을 위한 속죄의 증거이며 죽음에서 다시 사는 부활의 촉매로서 하늘에 뜬 태양보다 확실한 인류구원의 표지이다.

 

  이 상처로 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됐고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의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상처는 서로의 관계를 깊이 이해시키는 매체다. 상처는 때린 자나 맞은 자의 가슴을 파내는 예리한 쟁깃날이다. 인류역사를 꾸며내려 온 원동력이 상처에서 기인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지난 4 29는 우리가 당한 인종의 아픔이다. 죄 없이 순수하게 당한 상처라면 인류의 아픔을 대신 지고 있는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그렇다면 이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날로 급증하는 인류사회의 병리현상, 이상상태, 부적응의 현상, 즉 생활난과 빈곤층의 증대, 비행, 범죄, 자살, 타살의 급증, 가족결합의 붕괴, 인격의 분열, 계급 또는 집단의 갈등격화 등, 이 어려운 현상들을 녹여내는 활화산으로 승화될 수 있어야 한다.

 

  병원의 시설을 아무리 훌륭하게 차려 놓는다 할지라도 인간의 죽음을 막을 길은 없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물리적 재건에 인간재건과 사회재건이 선행되어 보람된 삶을 찾는 것이 상처치유의 지름길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우리의 아픔으로 자신과 폭도들의 참다운 인격적 평정을 되찾아 잠긴 문을 두드리면 새 날의 문은 반드시 열릴 것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 년 역사에 9백 3십여 회의 내 외환을 겪었다. 줄잡아 4~5년, 아니 2~3년이 멀다고 이 어려움을 치러낸 셈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이것이 민족갱생의 활력소로 승화되지 못하고 흉터 자체로 남아버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상처를 흉터로 남기지 않았다. 부활과 영생의 문을 열어 끝없이 넓고 영원한 사랑의 나라로 안내하는 구원의 이정표로 바꿔 놓았다.
                                                                                                                            (1992.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