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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단편소설 <적그리스도>

2016.12.10 16:06

PAULCHOI 조회 수:140

 

 

단편소설 <적그리스도>

 

 

 

 

학생들이 돌아간 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학교는 거대한 짐승의 숨이 끊긴 순간처럼 적막하기 그지없다. 유난히 밝은 초저녁 달빛이 교정에 가득하다. 소년은 교실 모서리에 놓인 받침대에 있는 등사기를 교실 중앙 난로 옆으로 옮겨 놓고 등사를 시작했다. 내일 치를 고사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담임교사는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런 일들을 소년에게 맡기면서 집에 다녀온다며 교정을 떠났다. 전 학년 학기말고사 시험지 등사를 마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모양이다. 시장 끼를 느낀 소년은 난로 속에서 다 익었으리라 생각되는 감자를 꺼냈다. 어느새 두 개의 감자 중 한 개는 시커멓게 탔다. 불이 너무 괄아서 그렇거니 했다. 학교에 오는 날은 집에서 감자를 가져와서 난로에 구워먹으면서도 감자를 이렇게 태운 적이 없었다. 소년은 스스로의 부주의를 뉘우치며, 내일부터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다. 감자를 먹으면서 한 손으로는 연신 등사를 계속하는데, 등사기에서 나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닥아 오며 소년의 귀를 의심케 한다. 소년의 귀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로 치솟았다. 복도를 걷는 구두소리였다. 교실 가까이에서 구두 발자국소리가 딱 멈췄다. 소년은 하던 일을 멈추고 창문을 통해 밖을 살폈다. 그러나 어둠이 깔려 있는 실외는 살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소년은 다시 등사를 계속했다. 이어서 아까 들리던 발자국소리가 바로 귀밑에서 나는 게 아닌가. 소년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어둠을 향하여 소리쳤다.

“누구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발자국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만약 집에 가셨던 담임이라면 “나야 나”하는 대답이 있을 텐데...... 소년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담임용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교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큰 소리로

“저는 이 학교 육학년 일반 학생입니다. 누구신지 말씀 하세요.”

순간 야전전등이 켜지면서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렸다.

“학생 어디 있나? 이리 나와 봐. 나 방범대원야”

소년은 거의 매일 늦은 시간까지 교실에 있었지만, 오늘처럼 누가 찾아온 일은 처음이다. 방범대원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한 사람만 나타난 것에 의심이 갔다. 소년은 쪼그리고 앉은 채

“우리 교장선생님 이름을 아시나요? 그리고 담임선생님 이름도 아시나요?”

하고 목청을 높였다.

잠시 후, 교실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키가 매우 컸다. 얼굴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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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눌러쓰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학생용 의자를 썩 내놓았다.

“이리 앉으세요. 담임선생님은 잠깐 댁에 가셨어요. 어머니가 몹시 편찮으신가 봐요.”

"학생은 이런데 혼자 있기가 무섭지 않은가?“

“별로요.”

"학생은 이 학교 내력에 대해서 잘 아나?”

“별로요.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 외엔 아는 게 없죠.”

“떠도는 이야기라니?”

“그냥 주고받는 이야기들이죠 뭐.”

“그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없나?”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시선을 방범대원의 얼굴에 대고 모자 밑으로 그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들으셔도 될 텐데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떠도는 소문뿐이어요.”

“소문이 더 재미있지. 이야기 좀 해보라니까.”

소년은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뭐 있나 싶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인데다가 특별한 정보가 되는 이야기도 아닐 텐데. 별 이야기도 아닌 걸 가지고 꾸물대다가 방범대원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분한 마음으로 들은 대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재미없어도 들으시겠죠?”

“암. 듣다마다.”

“이곳에 학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산이었대요. 수백 수천 년 산으로만 바위와 나무, 약초도 많고 꽃나무들도 많았답니다. 뿐만 아니라, 날짐승도 많아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민들은 이 산을 영산이라 불렀대요. 그래 그 이름을 따서 영산초등학교가 됐답니다.”

“옳지, 그랬겠지, 그래서”

“땅을 파서 운동장을 내고 건물 터를 잡을 때, 땅 속에서 큰 구렁이 두 마리가 나왔는데, 그걸 본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구렁이가 아니고 용이라는 사람들도 많았대요. 양쪽 귀에 왕조개보다 더 큰 귓불이 달리구요, 몸통 앞뒤로 발이 두 개씩 네 개나 뻗쳐서 구렁이처럼 기어 다니다가 네 다리로 걷기도 했대요. 그리고 가끔 몸통을 구부리며 울기도 했는데, 그 울음소리가 너무 애처로워 듣다 못한 사람들이 괭이, 삽을 들고 와서 그 긴 몸통을 열두 동강을 내서 죽였대요.”

“원, 저런.”

“그 뿐인 줄 아세요? 학교가 세워진 후,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가장 큰 행사인데, 보다 더 큰 행사는 가을철에 열리는 대운동회랍니다. 해마다 추석 이틀이나 사흘 전에 열리는 이 운동회는 이만저만 큰 행사가 아니지요. 어른이나 애들 할 것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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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명절처럼 차려입고 음식도 넉넉히 장만하고 모두 나와서 한바탕 축제를 벌이지요. 학교만의 행사가 아니라 이 지역 전체의 대축제였습니다. 운동경기가 끝나면 청군 백군으로 경주를 끝낸 학생들 모두가 푸짐한 상품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쁘고 좋은 날 한나절이 되면 영락없이 하늘이 소나기를 한바탕 퍼 붓습니다. 해마다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학교 지을 때 용 두 마리를 죽인 죄 값을 치른다’고 입들을 모았고 지금도 후회막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운동회 날 저도 비를 많이 맞았지요, 그래서 어른 애 할 것 없이 감기 몸살들을 앓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 일로 계속 앓다가 세상을 뜨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이것은 소문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작년 가을 운동회날도, 저 작년 운동회날도 비가 엄청 많이 내렸습니다. 해마다 그랬습니다.”

“아 참, 놀라운 일이군. 재미없다더니 재미만 있네. 또 다른 이야기 없나? 사실이 아닌 뜬소문이라도 좋아.”

“달이 안 뜨는 밤에는 귀신이 나타난다고도 하는데요. 특별히 여학생용 변소에는 귀신이 자주 나타난대요.”

“원, 저런. 누가 봤대?”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요.”

“학생은 집이 어딘가?”

“새터를 아시나요?”

“아, 알다마다.”

새터라는 말을 듣자 몸이 떨리는 듯 멈칫 놀라는 기색을 보인 그의 얼굴에 불안의 빛이 감돈다. 소년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거기 살아요,” 하자 그는 말머리를 돌리려는 듯, 다급히

“여기서 새터는 꽤 먼데,,,,” 했다.

“오리는 더 되고, 십리는 좀 안 돼요. 뛰어가면 가까워요.”

“부모님은?”

“안 계십니다.”

“혼자 사나?”

“네”

“식구들은 다 어디 갔나?”

“왜 그러시죠? 말씀 드리기가 좀 거북스러운데요.”

“걱정 말고 말해봐라”

“돌아가셨어요.”

“학생으로 봐선 부모님이 젊으신 분들이실 텐데.”

“아버지는 서른일곱, 엄마는 서른다섯, 여동생은 열 두 살이었지요.”

“어찌된 일인데?”

“작년 겨울에 총살 당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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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쏜 사람이 누군데. 왜, 뭘 잘못했길래?”

“잘못은요? 무작정 총질을 했지요.”

“학생은?”

“저는 그때 옆방에 사시는 할머니 약을 사러 읍내에 갔었죠.”

태연한 듯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소년은 방법대원이라는 이 사람이 점점 더 의심스럽기만 했다.

소년이 등사를 마칠 때까지 방범대원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등사를 끝낸 소년은 시험지를 차곡차곡 챙겨 담임 서류함에 넣고 잠갔다. 거의 삭아진 난로 불에 양동이 물을 부어 불을 완전히 껐다. 소년이 교실을 나오자 그 사람도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은 넓은 운동장에 환하게 깔린 달빛을 밟으며 교정을 나왔다. 소년과 점점 사이가 벌어지던 그 사람은 달빛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어디론지 사라졌다.

 

소년은 밤길을 걸어 새터까지 가야 한다. 늘 오고 가는 길이라 익숙하지만, 학교가 있는 읍내를 벗어나면 거기서부터 집까지는 매우 으스스한 길이다. 산모롱이 두 곳을 옆에 끼고 지나야 하는데 그 입구에는 숯가마골로 불리는 곳이 있다. 해마다 몇 차례씩 통나무를 실어다가 숯덩이를 생산하는 동굴 같은 곳인데, 사람들은 그 곳에서 무엇이 나와 사람들을 해코지 할지도 모른다며 항상 그곳을 피해 다닌다. 낮이나 밤이나 이곳을 지나칠 때는 언제나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두 번째 모롱이는 공동묘지로 덮여 있는 후미진 곳이다. 그래도 소년은 별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공동묘지가 있는 오구재산 근처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총살을 당한 후, 일 년이 넘도록 소년 혼자 이 길을 왕래한다. 밤이 되면 길을 더듬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어둠이 깔리더라도 아무리 산 중이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는다. 도깨비나 귀신은 사람이 있을 때에만 나타난다고 소년은 생각하고 있다.

오구재산 공동묘지 위쪽으로 학교교실 반 정도 크기의 흙담집 한 채가 있다. 그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다. 백수십 년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상여를 보관하는 집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집을 상여집이라 부르고 있다. 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은 주로 노인들이다. 마을에 상을 당한 가정이 있으면, 마을 어른들이 이곳에 와서 상여를 꺼내 상가에서 장지까지 시신을 이동한다. 그러므로 장례에 필요한 제반 도구가 보관된 곳이다. 마을 노인들이나 구장이나 이장 또는 반장이 이곳을 연중 한두 번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예 얼찐거리지도 않는다. 이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은 이 집을 쳐다보는 일조차 꺼려한다.

소년이 이곳을 지나고 있는 이슥한 저녁이다. 상여집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게 아닌가. 소년은 이 마을에서 산 이후로 이런 일은 처음이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사람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도깨비나 귀

신이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지금은 밤이니까 알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내일 낮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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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이 안에 누가 있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소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집을 향해 걸었다. 전에 마중 나와 주시던 아빠 엄마 생각이 오늘 따라 더욱 간절하다.

 

오늘은 주일이다. 멀리 읍내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소년이 사는 마을까지 은은하고 구성지게 울려온다. 그러나 소년은 종이 울리기 전에 집을 나선다. 오늘은 더 일찍 나서면서, 어제 밤 학교에서 돌아올 때 상여집 불빛이 새어 나온 일을 생각하며 교회 가는 길에 그곳에 가보리라 생각했다. 조반식사를 마친 소년은 옆방 할머니에게 교회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렸다. 막 집을 나서려던 참에 어제 밤 그 상여집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하였다. 할머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년을 향해 두 눈을 부라리며 ‘만약 그 곳에 가기만 하면 이 집에서 당장 내쫓는다.’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상여집은 조상 때부터 수백 년 동안 수백 수천 마리의 귀신들이 떼를 지어 들끓고 있는 곳인데, 거기 가서 귀신 떼를 집에 묻혀 들이겠느냐?. 절대 안 된다. 그 집을 드나든 식구가 있는 집안에 상을 안 당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 늙은이를 저 세상으로 보낼 작정이냐? 안 된다. 안 되고 말구’ 노인의 노발대발하는 이 말을 듣자 소년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집은 옆방에 사는 할머니의 집이다. 1.4후퇴로 집을 잃고 방황하던 소년의 가족들이 할머니의 배려로 돈 한 푼 안 내고 이 방을 사용해 오고 있는 터이다. 소년은 취직이라도 되면 할머니의 용돈정도는 자기가 책임질 것이라고 마음에 벼르는 중이지만 그 일이 어느 날에 이루어질는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할머니에게 꾸벅 절을 하고 곧바로 교회로 갔다. 매 주일마다 소년은 아침 아홉시 이전에 교회에 도착을 한다. 일단 도착하는 대로 교회당 곳곳의 청소를 도맡아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소년 스스로의 믿음이 그를 시키는 것이다. 한 시간가량 부지런히 청소를 마치고 성경공부 그룹에 참여한다. 소년은 이 시간과 이 시간 이후 11시부터 시작되는 장년 대예배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성경공부 그룹은 신학교 휴학 중인 스물 남짓의 신학생이 전도사 호칭을 받으며 지도해 주고, 장년 주일 대예배는 교회 담임목사가 직접 예배인도를 할 뿐 아니라, 설교는 담임목사의 몫으로 한 번도 거르는 일 없이 맡아 해 주기 때문에 소년에게는 더 없이 만족스러움을 채워주고 있다. 소년의 부모와 여동생은 이미 불운으로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교회 출석은 물론 그들의 신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총살을 당하면서도 양 팔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외치며 죽었다고 옆방 할머니는 혀가 닳도록 열을 올려 말을 하는 터이다.

주일 대예배를 마친 소년은 주일저녁예배 전까지 교회 도서실에 자리를 잡고 자기에게 참고가 될 만한 책을 골랐다. 교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도서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서적들이 만만치 않게

갖춰져 있다. 신앙서적 역사서적 문예서적 정치서적 교양서적 등, 다양하게 갖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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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소년은 다짜고짜 신앙서적 코너로 갔다. 소년은 귀신에 대한 서적을 뒤적거렸다. 귀신이 과연 있는가? 귀신이 있다면 신앙서적들은 어떤 취급을 하고 있는가. 등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소년은 주일저녁예배시간을 알리는 초종이 울리기까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책에서 귀신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점심 이후부터 초저녁이 올 때까지 소년이 찾아낸 귀신에 대한 내용은 대강 이렇다.

귀신(Demons)

1. 귀신의 명칭들

마귀들, 악한 신(악신), 악한 천사들(벌하는 사자), 더러운 귀신, 마귀의 사자들, 더러운 영, 점하는 귀신, 거짓말하는 영, 정사, 미혹케 하는 영, 범죄한 천사들.

2. 귀신의 능력

더럽고도 힘이 셈, 사단(Satan)의 능력 아래 있음,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임, 수가 많음.

3. 귀신의 능력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음,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 봄, 사람을 초월함, 오류를 범하도록 선동함, 범죄를 가르침.

4. 귀신들의 활동범위

하나님의 허락 내에서 활동함, 예수님의 허락으로 행함,

5, 귀신이 하는 일

불화, 시기와 다툼, 번뇌, 거짓말, 예언하는 체함, 점쟁이 되게 함, 벙어리가 되게 함, 눈 멀게 함, 귀머거리가 되게 함, 간질을 앓게 함. 미치게 함, 괴롭게 함, 거짓 이적, 초혼(혼을 부름), 형편을 악화시킴.

6. 귀신에게 미혹되는 원인

믿음에서 떠남으로, 양심이 화인 맞아서,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함으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좇음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영혼이 굳세지 못함으로 등이다. 소년은 일단 노트를 접고, 도서들을 제 자리에 꽂았다. 그리고 이만큼이라도 이론상 귀신에 접근할 수 있음에 감사기도를 올렸다.

오늘 도서실에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귀신에 대하여 아는 것이 나름대로 많아졌다. 귀신이 존재하는 지, 존재하지 않는 지조차도 모르던 상태에서 귀신은 완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도 자신의 궁금증은 많이 풀린 셈이다.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이렇게 친절히 답을 구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오늘 조사된 내용 중에서 귀신들의 활동범위가 하나님의 허락 내에서 활동함, 예수님의 허락으로 행함은 이해되기보다 먼저 의심이 앞선다.‘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군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마귀의 외침이라고, 그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소년은 자신이 갖는 의심은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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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다음 기회에 다시 와서 확인하고, 마귀 들린 사람을 구하는 방법에 대하여도 알아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 훗날, 소년이 알아 낸 귀신 축출의 능력은 이렇다. 귀신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떪,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 축출 능력을 주심 등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는 귀신을 어찌할 수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능력을 받아야 가능함을 마음 깊이 다짐하게 되었다.

 

소년은 날이 갈수록 옆방 할머니를 속이고 싶은 생각을 참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여집엘 들어가서 밤에 불빛이 새어나오는 까닭을 알아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만약 상여집에 들어갔었다는 사실을 할머니가 아는 날이면, 그 즉시 소년은 갈 곳이 막연해지기 때문인 것이다. 할머니 집에서 쫓겨나는 일만이 아니라, 만약 그리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에게도 미움을 받아 부정 탄다고 동네마저 떠나야 할 난관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섣불리 상여집을 드나드는 일을 예사롭게 여길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여집의 현 실상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동네 어른들에게 이러니저러니 섣불리 말 할 수는 더욱 없는 일이다. 일단 마음을 접어두고 아예 없던 일로 쳐버리면 그뿐이겠지만 소년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속에서 불덩이 같은 갈등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며칠을 두고 생각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 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소년의 부모와 동생이 난데없이 나타난 괴인에게 총살을 당하기 넉 달 전쯤에 동네 어른들이 몰려들어 동네 젊은이를 생으로 몰매를 쳐서 죽인 사실이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알고 소문이 나지 않게 철저히 입들을 봉하고 지내는 터였다. 몰매를 맞아 죽은 젊은이의 가정은 노모와 아내와 여동생이 젊은이 하나만을 의지하고 사는 형편에 남자라고는 젊은이 한 사람뿐이고 세 식구 모두 여자들인데, 젊은이가 날이면 날마다 이들을 못살게 굴었다는 것이다. 이 일을 보다 못한 동네 어른들이 의견을 모아 더 이상 동네에서 살지 못하도록 내쫓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후, 며칠이 자나지 않아서 밤이면 찾아와서 식구들을 못살게 괴롭히는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 이 집에서 식구들의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아,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어울려 죽인 것이다. 상여집 옆에 땅을 파고 거기에 묻었다. 이런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옛날 어른들이 지켜오던 향약정신이 새로 발동한 것이라 한다.

동민들이 한꺼번에 한 덩어리로 뭉쳐 저지른 일이니, 누가 어쩔 도리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묻어 사는 소년의 가슴에 큰 바위 덩어리가 굴러들어온 답답함이 꽉 차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가까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멀리 쫓는 바람에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던 것이다.

 

소년의 초등학교 졸업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졸업을 하면 상급학교에 진학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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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러나 홀몸으로 부모 없이 사는 신세에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 까지는 동네 노인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왔고, 육학년 담임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지내왔지만, 앞으로 닥칠 일은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소년은 불끈불끈 두 주먹을 쥐었다. 어금니가 부서져라 하고 있는 힘을 대해 윗니와 아랫니를 꽉 깨물었다.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부모 슬하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자신은 영문도 모르는 일에 가족들을 잃고 자기 혼자 남아 가시밭을 맨몸으로 뒹굴듯 찔리고 피 흘리며 사는 삶이 새지 않는 밤길을 걷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소년은 가족과 사별을 하고 혈혈단신 홀몸으로 사는 것이 마귀들의 해코지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질의 욕심도 없이 일한 대로 순수하게 생활을 꾸려왔는데 부모와 여동생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까닭모를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한없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연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부모와 동생이 가엾다는 생각이 솟구칠 때마다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워 몸부림을 치곤한다.

그렇다! 우리식구들의 믿음은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릴 만큼 뜨겁지는 못했다. 어렵사리 품팔이하며 노동으로 연명해 오느라 교회에 충성 봉사하는 일에는 별로 열심을 내지 못하고 이때껏 전쟁의 열기에 시달리며 지내왔다. 나 자신의 믿음도 그렇다. 그러니 언제 또 하나님의 진노가 나를 덮씌울지 모를 일이다, 그럴 바엔 아예 내 삶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소년은 자신의 가정을 떠올리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생각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소년이 알고 있는 한,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일이다. 우상은 나무, 돌, 금속 등의 물질로 형상을 새긴 것이거나 자연물 자체를 신성화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며 살아왔지 천지신명이나 미신을 숭배하거나 따른 적은 분명히 없다. 해나 달이나 별에게 빌어본 적도 없다. 오직 성부 성자 성령님께만 매달려 살아왔을 뿐이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고대의 민족들은 각 신들을 상징하는 여러 종류의 우상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족속이 섬기는 모든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셨다. 구약성경은 어떤 구체적 물체에 신성을 부여하거나 더욱이 하나님과 동일시한 적이 결코 없다. 영문도 없이 가족이 총살을 당하는 엄청난 비극에도 하나님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동네 사람 중에 어느 누구도 소년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토록 분하고 억울한 일을 소년 혼자 당하고 말았을 뿐이다. 소년의 가슴은 답답하다. 더구나 외롭기 그지없다. 이 세상에 오직 자신의 혈육 한 점뿐이다. 소년은 이것이 인생의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럴 때 자신의 친구가 되어주는 이는 오직 자기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자신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분이

라고 굳게 믿고 있다. 소년은 종종 찬양과 기도를 올린다. 기도를 올릴 때마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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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떻게 응답하실지 모르지만, 기도할 때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원하는 때에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고, 심지어 안 좋은 상황이 더 악화되기도 하지만,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며 계속 구해야 한다. 기다리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소년도 잘 안다. 그만큼 더욱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소년은 힘주어 찬양을 하였다. 눈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힘없던 주먹이 쥐어졌다. 소년은 더욱 소리를 높여 찬양을 하였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결국 소년은 상여집을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누가 밤에 불을 켜는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이 결정은 소년의 용기도 용기이지만 그의 믿음의 힘이었다. 귀신도 우상도 소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소박한 신념이 그의 가슴을 채질하고 있음이다. 소년이 교회 도서실에서 귀신, 마귀에 대하여 이미 글로는 접해 보았지만 소년에게는 믿기지 않는 것들이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마귀나 귀신이 살아서 판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우수개소리일 뿐이다. 더구나 귀신이나 마귀가 저지르는 행위로는 당연히 멸망 받아 이미 존재하지 못했어야 마땅한 일이라는 당연한 생각이다. 만일 사람이 마귀나 귀신처럼 악행을 저지르며 산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수나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마귀든지 귀신이든지 그런 존재가 어떤 형상으로나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인간을 괴롭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상여집도 오랜 세월 무용지물처럼 산허리에 우뚝 서 있으면서 사람들의 정서를 파괴하고 불안을 조성하는 마귀의 존재나 다름이 없다. 오늘날은 옛날과 달라 화장을 하거나 영구차를 이용하는 세상이다. 상여를 사용하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헌데, 이 산 중에 서 있는 상여집을 치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여집을 치웠다가는 어느 결에 귀신의 밥이 될지도 모른다는 미신신앙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미혹에 빠뜨리는 헛것들, 이런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진정한 평안을

만나기는 어렵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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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조반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마친 소년은 집을 나와 오구재산 중턱에 서있는 상여집을 유심히 쓸어보며 학교로 갔다. 오늘 졸업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로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학우들은 물론 담임선생님까지 이별해야 한다. 담임선생은 약간의 용돈을 돌돌 뭉쳐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남달리 자기를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소년이 서울을 다녀올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려면 야간 중학이 많은 도회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졸업식장에서 교장 상을 받은 소년은 영어소사전을 상품으로 받았다. 가방을 든 채 예배당을 찾아간 소년은 졸업감사기도를 드렸다. 6년 동안 보호와 인도를 해주신 하나님과 가족들의 사랑을 고하며 눈물을 흘렸다. 예배당을 나오는 소년의 눈에 오늘 저녁 금요철야기도회 광고가 눈에 띄었다. 아직도 더 기도해야할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 소년은 철야기도회에 참석할 결심을 하며 읍내 주유소를 향해 걸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소년은 오구재산을 올라 상여집 앞에 머물렀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세찬 바람이 소리를 내며 불어 닥쳤다.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난 소년은 책가방에 든 병을 꺼냈다. 가득 휘발유가 든 병이다. 소년은 집 주위를 돌며 벽 밑으로 골고루 휘발유를 뿌리자마자 성냥을 그어 댔다. 순식간에 집이 불덩어리로 타오르자 태양이 떠오른 듯 온 산이 대낮처럼 밝았다. 소년은 책가방과 함께 산을 내려와 큰 길로 들어서 읍내를 향해 달렸다. 불을 지른 사람은 소년이지만 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소년은 상여집을 삼킨 불길이 사위어질 때까지 안전한 장소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난생 처음으로 통쾌감을 맛보았다. 마음속에 불안스럽던 것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있으니 말 그대로 상쾌했다. 가슴조차 물로 씻은 듯 시원했다. 순간적으로 모든 사악한 것들이 완전히 재로 변하는 놀라움을 경험한 것이다. 그것은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승리감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수도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원한도 한꺼번에 갚아버린다는 통쾌함이 소년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무릎 꿇고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소년의 얼굴은 눈물 마를 순간이 없다. 밤새껏 울음바다를 이루던 소년은 새벽이 되어서야 기도를 마쳤다. 교우들이 마련해준 아침식사를 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미 옆방 할머니를 안심시켜 드렸고, 자기를 찾지 마시라고 단단히 일러 드렸기 때문에 미련 없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서 닥칠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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