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04 03:38

인생의 4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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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계절에 비교하여 말한다. 청춘에 이른 사람을 봄과 같다 표현하기도 하고, 중년에 접어든 사람에겐 가을을 맞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도 인생은 이렇게 네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20세까지를 성장기, 20세에서 40세까지를 체험기, 40세에서 60세까지를 결실기, 그리고 60세 이후부터 인생을 마감하는 날까지를 정리기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이 보통 80까지 살 수 있다고 치면 이 네단계의 분류는 각 20년씩 균형이 맞는 셈이다.

이렇게 인생의 네단계, 즉 봄,여름,가을,겨울을 놓고 내 인생이 어느 지점에 이르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나이로 치면 나는 이제 막 여름의 끝을 지나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 말하자면 결실기의 초입에 도달한 셈이다. 요즘 내 인생의 결실기에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다가 스스로 초조해 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인생의 결실이란 어떤 의도에 의해서만 맺어지는 것인가? 내가 살아온 봄과 여름이란 과정의 농도에 따라 저절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 열매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얼마나 아름다운 봄과 얼마만큼의 치열한 여름을 지냈는가에 따라 인생의 결실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겨우내 언땅을 헤치고 고개를 내미는 가녀린 새싹의 움틈이 아기의 탄생과 같다면, 꽃샘바람의 시새움 속에도 새싹이 성장하듯이 아기들은 잔병치레를 해가면서 걸음마를 배우고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해 간다. 때로는 봄비를 맞고 변덕스런 날씨 속에 때아닌 춘설을 감당해야 하는 새싹처럼 사람의 성장기에도 시련이 찾아들게 마련이다.

그래도 봄날의 햇살은 어머니의 사랑처럼 한결같이 새싹을 키우고 드디어 가지엔 꽃봉우리가 맺힌다. 우리는 봄날의 꽃봉우리와 같은 청소년기를 사춘기라고 부르지 않는가? 호기심에 가득찬 인생! 앞날이 두려워지기도 하고 꿈으로 부풀기도 하는 아름다운 청춘! 그 화사한 젊음엔 방황이라는 유혹의 베일이 항상 따라다니게 된다.

나의 봄날, 나는 지극히도 깊은 꿈을 꾸었고, 봄비 속에서 인생을 두려워하기도 했으며, 방황의 베일에 휘감겨 공연한 눈물을 흘려보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도 힘이 들었던 봄, 지금에야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나의 봄은 지극히 봄 다웠으며 아름다웠다고......

맺혔던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여름, 땡볕 아래서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사람으로 치면 가장 많은 에너지가 생성되고 발산되는 때이다. 이때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많은 변화를 맞게 되는데, 하나의 성인으로 완성되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여성에게 있어서는 출산과 육아와 더불어 가장 많은 변화를 갖게 되는 시기이다.

한여름을 생각하면 작열하는 태양과 불볕에 달구어진 모랫벌로 밀려오는 푸른 파도을 연상하게 되듯이 인생의 여름은 발랄하고 힘에 넘치면서도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남성들은 사회 생활을 통해서, 여성들은 시댁 식구의 일원이 되는 결혼 생활을 통해서 더불어 사는 법의 인내와 책임을 고통스럽게 터득해 간다.

나는 멀어져가고 있는 나의 체험기를 돌아다 본다. 실로 나의 여름은 치열했다고 말하고 싶다. 봄의 환희에서 벗어난 철없던 여인이 어머니가 되고, 삶의 심오함과 아픔을 동시에 터득하던 시기, 때론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렸다. 만개했던 내 꽃잎 위로 감당할 수 없던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어느 땐 이 굵은 빗방울을 감당할 수 없어 내 꽃을 지탱하고 있는 가지가 필경 꺾이고 말리라며 절망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 치열한 여름이 내 곁을 떠나버렸는가?

한 자락 여름의 자취를 발목에 감은 나의 초가을 위로 채 걸러지지 못한 체험기의 경솔함이 아직도 난무하고 있다. 초가을처럼 서늘한 눈빛으로 삶을 관조하기보다는 만나는 사람의 가슴마다에서 사랑의 척도를 재보려는 오만한 모험심은 아직 내 인생이 가을로 들어섰음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랑할 사람과 미워할 사람의 경계선이 두드러질 것도 없는 마음의 고요를 안고 바라보아야할 세상에서, 나는 사랑할 것을 찾아다니고 미워할 것을 뒤져내는 오류를 범한다. 아직 깊이 들어가 보지 못한 인생의 가을보다는 지난 여름의 치열함이 나를 더 지배하는 까닭이다.

깊어질 내 인생의 가을, 삶의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섬은 당연한 것일까? 결국은 내가 살아온 삶의 비중만큼밖에는 맺지 못할 나의 결실...... 지나온 봄과 여름이 헛되지 않도록 고요한 눈빛으로 삶을관조해 보리라.

인생의 겨울을 맞은 사람들, 잘 늙은 사람의 아름다운 얼굴은 바라만 보아도 우리를 풍요하게 한다. 그가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에 상관없이,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에 상관없이 삶을 긍정적으로 껴안으며 세월에 순종해온 사람들에게서는 저절로 풍부한 인격이 풍겨져 나온다. 내가 겨울과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아름답게 늙은 사람이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겨울은 인생의 봄과 여름과 가을을 잘 보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일 것이다. 봄날의 꽃샘바람을 이겨낸 사람, 그래서 여름의 변덕스런 날씨와 태양의 뜨거움에 잘 견디어낸 사람, 그로 인해 고매한 눈빛으로 가을의 결실을 잘 거두어낸 사람은 겨울을 맞게되면 저절로 풍부한 삶의 이력을 지닌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인생의 겨울은 지난 삶을 정리하는 기간인 동시에 또 다른 삶에 대한 준비기간이다. 백합의 뿌리가 찾아올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차가운 땅 속에서 침묵하듯이 영원하다는 내세의 새로운 삶을 위해 낡아가는 육신 속에서 영혼의 거듭남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자기에게 찾아온 인생의 계절에 어울리는 언행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우리 주위를 밝게 만들어 준다. 아직도 여름의 꼬리를 붙잡고 발람함의 만용을 부리고 있는 나, 이제 고요해 지자. 분명한 논리로 넘실댔던 나의 여름을 이쯤에서 놓아주고 사랑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는 인생의 가을을 한번 맞아보자, 이 세상 뭐 그리 사랑할 것이 있던가? 미워할 것이 있던가? 지금은 미움의 사그라짐을 위해 사랑도 접어두기로 하자.

잔잔한 마음 속에 결실은 저절로 맺어지는 것, 나 언젠가 겨울을 맞게되면 내 가슴엔 사랑할 것만 남으리라. 삶이 침잠된 인생의 겨울 그때에는........               1999년 [광야]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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