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作/ 관계
2004.11.21 06:25
관 계
고정희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번째 회신 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 거다 천기를 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 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한 여인이 기다리는 인생은 사랑이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가치는 그 여인
많이 기다리고 찾을 수 잇는 존재다. 우리들은 이러한 절대적 사랑을 동경하고 그리워
하지만 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일인지....알아야 할 것이다 이 관계라는 시도 이야기 설
정이 서정적 삶을 토대로 한 한 여인의 기다림 속에 오고 가는 과정을 설정하여 쓰고
있다 끝맺음 속에 나타난 것처럼 정말 이 관계라는 시는 완벽한 겨울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그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차가운 바람 소리 속에 나타난 풍경만으로 짐작하는
사랑임을 나는 감상하면서 이 여인의 관계가 아름다운 그리움을 넘어 꿈이 된 느낌을
받았다. 참 좋다. 이런 사랑을 하는 여인은 내색하지 않는 미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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