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作/ 무명초
2004.11.21 06:26
무명초
이동순(李 東洵)
차디찬 시멘트 축대 위 가파른 곳의
금간 틈서리를 비집고 살던 풀포기 하나
바람결에 나 이렇게 잘 있으니 염려말라고
온 몸으로 흔들어보이던 고갯짓이
지금은 어디 갔나 모진 비바람끝에 축대 무너지고
무지막지한 흙더미 그 위로 쌓이고 덮여
이젠 아무도 깔린 풀포기를 떠올리지도 않는데
더욱 까맣게 흔적조차 잊어가고 있는데
애잔한 한 포기 목숨 죽었는가 살았는가
즐겨 이곳을 찾던 채마밭 콩새들도 오지 않고
낯설구나 어제 모습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다니
허물어진 성터에 오른듯 마음만 소란할 뿐
내가 오늘도 기웃거리며 돌틈 뒤지는 것은
거친 흙더미를 솟구쳐 하늘로 파리한 얼굴내밀
무명초, 네 믿음의 힘을 보려 함이다
1983년 발행 "물의 노래"에서
지금이야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로 산 하나 없애는 것이 몇일 거리의 작업이지만
예전에는 부역이라고 신작로를 구역구역 각 동네별로 맡아 고치고 가끔씩 오가는
시외버스 길을 관리해야 했다 그때 돌성벽에 풀포기며 칡넝쿨이 즐비했던 기억이
난다 고인돌도 즐비했던 나의 고향은 이제 고인돌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이 무심초
라는 시도 이동순 시인이 그런 감정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힘없는 무명초가 갖는 민초의 상징성에서 이 시는 사리져 안 보이겠지만 결코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꽃으로 피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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