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시인作/ 봉선화
2004.11.21 06:28
봉선화
김 상옥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 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누나.
1939년 문장지 10월에 발표한 김상옥 선생님의 시조다. 다른 여러 시조가 있지만 초정선생의 이 시조는 내 가슴에 시조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답을 얻게 하였다. 우리 시조가 갖는 운율의 묘미와 여백의 미가 흠뻑 젖어있는 봉선화. 이쯤 편지를 써 보내는 간절함과 그 속에 봉선화 꽃잎 하나 담아 보내는 안부 편지는 이메일로 빠르게만 보고 듣는 요즈음 우리를 다정하게 하는 시조가 아닌가 생각한다. 초정 선생의 시조는 정말 현대 시조에 있어 그 이미지화 하는 상상이 남다르고 다정하다.
<아내 따라 6일만에 세상 버린 어느 시인의 비가(悲歌)>
[연합뉴스 2004-10-31 23:38]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 씨가 60여년간 해로했던 부인을 잃자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가 엿새 만인 31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노시인 은 부부의 깊고 애틋한 정을 시작품과 함께 세상에 남기고 떠난 것이다.
김 시인은 15년 전 화랑에 그림을 보러 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했다. 이후 지난 26일 81세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김정자 여사의 극 진한 보살핌을 받아왔다.
큰딸 훈정 씨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던 어머니가 보름 전에 허리를 가볍게 다 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친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의 뼈들이 이 미 여러 곳 부러진 상태였다"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부서진 것도 모르고 그야 말로 '분골쇄신'하며 아버지를 수발하다가 세상을 먼저 떠났다"고 말했다.
훈정 씨는 "아버지는 어머니 없으면 살 수 없는 분"이라며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가 입원한 지 한참 지난 24일에야 아버지와 함께 신촌 세브란스 병원 으로 병문안을 갔다"고 밝혔다.
병원에 누워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김 시인은 "자네를 전생에서 본 것 같네. 우 리의 이생은 다 끝났나 보네"라며 죽음을 예감한 말을 했다고 큰딸은 전했다.
면회 후 이틀 만에 부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김 시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충격을 받을까봐 자식들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훈정 씨는 "사후 이틀 만에 아버지께 사실을 알렸는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 습이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부터 나에게 밥을 권하지 마라'며 식음을 전 폐했다"고 전했다. 김 시인은 이날 큰딸에게 '어머니 은혜'를 부르라고 시키는가 하 면, 밤새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지난 30일 판교 공원묘지에 묻힌 아내의 묘지에 다녀온 김 시인은 거주하고 있 던 종암동의 둘째 딸집에 도착하마 마자 거실에서 쓰러져 인근 고려대병원으로 옮겨 졌으나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뇌사상태에 빠져 있던 노 시인은 이튿날인 31일 오후 6시 20분께 산소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60여년 간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던 아내 곁으로 따라 갔다.
훈정 씨는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것 외에는 건강해 오래 살 줄 알았는데 어 머니를 잃은 슬픔이 너무 깊어 일찍 돌아가셨다"면서 "아버지가 평소 좋아했던 조선 백자 등 골동품을 정리하는 일을 도우며 미술관을 함께 열 계획이었는데 생전에 꿈 을 이루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제시대 이후 국내 시단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봉선화' '백자부' '청자부'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은 중.교 교과 서에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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