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시인作/멸치

2004.11.21 06:33

박경숙 조회 수:1246 추천:26


멸 치


김기택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졌던 것이다
모래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집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김기택 시에서 작은 흐름 혹은 작은 힘이 무수히 쌓이는 중압감을 나는 받는다 어찌보면

시인은 규격화된 틈을 보고 규격화 되기까지의 흐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언어의 다양성

표현의 수치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김기택 시인의 시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딱딱함, 건조함,

수치화한 언어로 그린 유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분명 동양적인 모티브는 아니다

삶과 직결된 그런 시는 더더욱 아니다 멸치가 바다 속에서 건져져 딱딱하게 마르고

다시 그 딱딱한 힘을 소유하기 까지의 의식은 시인이 줄기차기 추구하는 의식의 흐름이라고

본다 삶 자체가 건조된 의식 속에 우리의 일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5
전체:
10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