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이력서 / 노민석

2004.11.21 06:42

박경숙 조회 수:509 추천:29

    
  입동을 지나 이제 겨울의 초입이다. 이맘때면 이제 곧 학교를 떠나는 졸업반 학생들이 지나온 자신의 이력서를 쓰면서, 그들이 평생을 살아갈 이 사회에 새로운 세대로서의 진입에 기대와 걱정으로 가슴 두근거리고, 기성세대들은 지나온 한해를 뒤돌아보게 된다.

지구의 탄생 이래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게 순환하지만, 이는 생명체가 나고 성장하고, 다시 다음의 순환을 위한 결실을 맺는 생명의 움직임의 순서인 듯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환경을 구성하는 생명체나 무생물체, 그 밑에 계절이나 시간의 변수를 갖다대면 변화상과 자국과 흔적 등의 지나온 이력이 나타난다.
세상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력서는 어떠한 빛깔이고 어떠한 모양일까.
우리의 기록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그 지향선(志向線)과 귀착선(歸着線)은 어디일까. 시인이 기록한 그의 이력서*를 읽으면서 우리의 이력서를 생각한다.

  내 어렸을 적에/ 토끼풀 지천으로 깔린 들판을 지나/
  연자방아 쓰러진 언덕에서/ 가시 찔리며/
  뽀얀 찔레꽃 많이도 따먹은 일/ 감꽃도 많이 줏어 먹은 일/

  동네 청년들을 따라/ 산길 첩첩 청국사 찾아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이 시린 우물을 한 모금 마신 일

  그 때/ 반물빛 산등성이 너머/
  하늘과 바다는 맞붙어 있고/ 곰실곰실 돛단배 떠 있는 동해바다를/
  처음으로 바라본 일/ 무섭도록 지켜본 일

  아아, 그래서 그 바닷물이/
  지천명이 가까운 내 눈에/ 아직도 넘치고 있는 것/ <시: 이력서>

시인은 그의 이력서 내용을 어렸을 적 토끼풀 지천으로 깔린 들판으로 시작한다. 기억의 통로를 지나면서 만나는 언덕, 연자방아, 찔레꽃, 감꽃 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대를 하나로 이어서, 산길 첩첩 찾아간 청국사 절에서 이 시린 우물물을 마시며, 문득 바라본 산등성이 너머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선과 그 위로 떠있는 배, 그리하여 그 동경의 먼 바닷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시인의 눈에서 넘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도 과거와 현실이 함께 있음이다.
    
그 이력서의 다음 장을 펼쳐보면,

  머뭇거리다가/ 결국엔 내 이렇게 당할 줄 알았다라고/
  -중략-
  무공해로 살던 그녀를 올가미 씌워/ 분칠하고 포장하여/
  이 눈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으로 끌어낸/ 무서운 상혼/ 자본주의의 검은 악취/
  결국엔 이렇게 망가뜨리고 말 것을/ 이런 일이 생길 줄 내 진작에 알았다/
  야, 이 놈들아! <시: 야, 이놈들아!>

  논 개구리는 황소개구리가 다 잡아 먹고/
  노란 초가집, 처마 끝 높던 기와집은/ 아파트들 무리지어 다 잡아 먹었구나/
  <시: 당하리 근황>

이는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현실세계에 대한 분노이다. 그 분노는 그의 이력서에서 시작하였던 찔레꽃, 토끼풀, 감꽃 등이 만들어주는 자신의 모습과 지향(志向)선 위에서 엇갈리는 세상에 대한 엄준한 분노이다. 또한 그와 친숙한 자연환경에 대한 현대문명의 침식에 대한 한탄이다. 야, 이놈들아! 하는 그의 호령은 우리가 들었던 옛날 어른들의 꾸짖는 소리이다. 이는 사실 우리 내면의 소리, 야인(野人)과 자연인의 소리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우리의 모습과 소리를 잊고 있었다. 시인의 소리는 우리에게 문명의 이면에 서있는 야인의 존재성을 깨닫게 해준다. 야인은 세상의 존재와 지향성을 유지하고 제어하는 자연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야인은 있는가, 야인은 어디에 있는가.
야, 이놈들아! 시인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창경원 동물원이 아직/ 위세를 떨치던 시절/
  사슴의 눈이 수정처럼 맑다 길래/ 가서보니 생선 눈알처럼 혼탁했다/
  -중략-
  도회지속의 온갖 풍상 다 겪고/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임을 깨달은 때에는/
  내 눈도/ 생선 눈알처럼 흐려진 뒤였다/ <시: 사슴의 눈도 내 눈도>

그의 기록에서처럼 세상이 우리를 눈멀게 하는 것인가, 혹은 찬란한 현실에 우리가 눈머는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이 사슴과 시인과 우리의 눈빛을 불투명하게 하는 것일까. 물의 흐름과는 다르게 세상의 흐름은 사람의 역류적인 흐름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시인의 이력서는 고독과 영원으로 이어간다.

  백령도 떨어진 섬 꼭대기에/ 까만 수염의 염소가 홀로이/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 상처 입은 젊은이 모습으로/ 세파 다 겪은 늙은이 걸음으로/
  -중략-
  그 느리고 까만 소리/ 파도 위에 염소 똥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시: 고독>

결국 시인이 써내려가는 이력서의 지향선과 귀착선은 고독의 길에서 만나는 영원성으로, 산에 사는 사람은 더 깊은 산에 들어가고 싶고, 섬에 사는 사람은 더 작은 섬에 안기고 싶으며, 도시의 시멘트 길을 걸어가면서도 칠월의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싶은(시: 칠월에서) 멀고도 깊은 영원인 것이다.

  저물고 저물어/ 생의 마지막 길목에선/ 보드랍고 말랑한 홍시 되어/
  사람도 까마귀도 다 먹이는 저 나무의 육보시나/ 닮을 수 있을까/ <시: 감나무 밑에서>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은 그 영원으로 가는 길에서 세상 만물의 동일성과 순환을 얘기하면서, 육과 혼, 물질과 정신, 그리고 그 다음에 관한 얘기는 차마 멈추고,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의 육(肉) 보시(布施)로써, 그 다음의 세계를 남겨두지만, 지금도 시인의 눈은 어릴 적에 청국사 절 산등성이 너머로 보던 그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의 이력서를 써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2004, 11>


*주: 시인 최상호의 시집 “그대 가슴에도 감춰진 숲이 있다” (2001년 도서출판 오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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