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불꽃으로 만들었다.

2005.05.21 01:51

박경숙 조회 수:220 추천:10

[나는 너를 불꽃으로 만들었다.-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르타 -]

마르가르타는 이탈리아에서 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마르가르타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는데, 얼마 안 가서
마르가르타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말았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였는데,
계모는 어린 마르가르타를 사랑하기는 커녕, 오히려 질투를 느끼는 것이었다.

마르가르타는 미모가 빼어났다.
이 미모가 마르가르타에게는 덫이 되고 말았다. 한 젊은 귀족청년이 그녀의
매혹적인 미모에 사로잡혀 17세의 그녀를 유혹하였다. 이 유혹에는 속이는
말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마르가르타가 한없이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지닌, 사랑에 목마른 소녀였기 때문이다.

사랑의 화살을 맞은 마르가르타는 육욕의 황홀함과 육체의 아름다움과 야성적
포옹 등을 체험하였다. 그녀의 사랑의 역사는 9년 동안 지속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옷들로도 그녀가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니라, 정부(情婦)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마르가르타는 중죄(重罪)의 상태에서 살고
있었으며, 혼인성사의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들을 하나 낳았다.
어느 날 그녀는 숲속에서 강도들에게 피살된 자기 애인을 발견하고 말았다.
마르가르타는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지고, 자신이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
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이 그녀에게 미치기 시작하였다.
마르가르타는 그녀의 정부(情夫)가 갑자기 죽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심판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서로 단지 야성의 쾌락을 누린 것이며,
마르가르타는 이에 대해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정부(情夫)의 참혹한 종말이
라는 벌을 받은 것으로 느꼈다.

하늘에서 굉음이 들리면서 마르가르타는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이때부터
그녀는 화려한 의상을 벗어 던지고, 검은 옷을 입고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성(城)을 떠나 몸과 마음이 지친 채 한없이 절망하며 걸어갔는데, 그 발길은
마침내 고향 부모님 댁에 닿았다. 아버지는 딸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계모는
대문을 닫으며 배척하였다. 마르가르타가 방탕한 삶을 통해 그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마르가르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느 무화과나무 아래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르가르타는 프란치스코 수녀회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보속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자, 그 수녀회는 그녀를 거절하였다. 마르가르타는
'코르토나'라는 아주 조그만 도시에 발을 딛게 되었다. 거기서 마르가르타는
두 부인을 만났는데, 그 부인들이 마르가르타를 자기 집에 받아 주었다.
마르가르타는 그 두 부인에게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고, 자신이 보속의 삶을
살도록 좀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마르가르타는 보속의 삶이란 우선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을 돕는 것이라고 여겼다. 마르가르타는 소도시 '코르토나'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모두 외면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마르가르타도 역시 옛날에는 말을 타고 거들먹거리면서
교만하게 그런 사람들을 지나쳐 갔었으며, 그들을 새까맣게 내려다보며 자신
을 귀하신 몸으로 여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르가르타가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참회자 마르가르타는 병원을 설립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계획은 그녀의
힘에 부치는 것이어서 도무지 불가능하리라는 반대들을 그녀는 일축하였다.
마르가르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아주 보잘것없는 병원을 설립하였다.
마르가르타는 스스로 가난하게 살면서 거의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였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자들을 간호하는 것이 그녀의 보속의 삶의 한 부분이었
다. 마침내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회의 제3 회원(재속회)이 되었는데, 보속이
라는 것은 세속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향하는 회개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사신 성 프란치스코를 잘 이해하였던 것이다. 지난 날 그녀가 정부(情夫)에게
품었던 그 정열이 그녀를 더욱 정화(淨化)된 가난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르가르타는 자신이 그저 '훌륭한 부인'으로 여기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오히려 죄녀(罪女)로 여겼으며, 아니 간혹 밤중에 자기가 사는
집의 옥상에 올라가 '보십시오, 여기 큰 죄인이 있습니다' 하고 소리질러
남들이 잠에서 깨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마르가르타는 자신을 낮추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자초한 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맨발로 그리고 목에 밧줄을 두르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 죄인처럼 성당에 왔다. 너무 지나친 행위가 아닌가?
예레미아 예언자는 등에다 멍에를 지고 사람들 속에 나타났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주교님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이제부터는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임을 표현하
기 위하여 속옷까지도 다 벗어버렸다. 마르가르타는 그 어느 것 앞에서도
겁나서 꽁무니를 빼지 않는 용기를 지닌 채 겸손의 심연(深淵)으로부터 상승
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도 마르가르타의 비상한 겸손한 행동들
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 주변의 이웃 사람들은 경탄과 동정
그리고 자비심을 보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마르가르타의
겸손한 행동들은 오로지 그녀의 육체적 참회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마르가르타는 원한에 차서 자신의 육체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옛날에는
네가 나를 이겼지만 이제는 내가 너를 이겨 내리라!" 그 옛날에는 마르가르타
가 경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욕정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 몸을 가꾸었지만,
이제는 자기 얼굴에 검댕을 발라 사람들이 자기의 아름다운 혈색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육체를 거슬러서 하는 모든 강압조치들은 기껏해야 육체의 기능들을
극복하는 것이지, 육체 그 자체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외적인 금욕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내적 욕정을 이겨내는 것이다. 그 어떤 참회복(懺悔服)도 그
어떤 금욕, 고행도 이 내적 욕정을 이겨낼 수는 없다.
가끔씩 마르가르타도 이렇게 말하였다 : "내 육체여!"

인간의 본질은 육체와 영혼의 조화이다.
'코르토나'의 참회녀(懺悔女)는 하나의 '예외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는
데, 이 길은 누구에게나 보편적 의무를 지우는 전형(典型)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프란치스코회 수사(修士) 한분이 확인하였다 : "마르 가르타는 자기 아들을
얼마나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는지, 마치 그녀가 그 애의 어머니가 아닌 것처
럼 보였다."  하나의 경악스러운 확인이다. 그러나 마르가르타는 성인들도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마르가르타의 신비적 삶은 그녀의 참회의 핵심이었다. 그녀는 때때로 영성체
후에 탈혼(脫魂) 상태에 빠져 넋을 잃고 쓰러지곤 하였다. 절정의 순간은
그리스도께서 탈혼 상태에서 그녀를 딸이라고 불러 주셨을 때이다 : "오 타는
가슴으로 바라고 바랐던 말씀이여, 오, 굳은 신뢰와 최고로 큰 기쁜 추억의
말씀이여!" "내 딸아!" 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 하느님이시여"
하고 응답하였다. "내 딸아!" 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내 그리스도
님이시여!" 하고 대답하였다. 마르가르타는 넘쳐흐르는 기쁨과 행복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으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 말씀의 끝없는 영복(永福)을
받아들였다. '딸 체험'은 그녀의 생애에서 최고의 시간이었다. 바로 여기에
그녀의 참회생활의 본질이 있는 것이지, 육체를 대적하여 싸우는데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마르가르타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
세상의 나락 밑바닥에서 너를 찾았고, 거기서 모든 창조물 중에서 가장 비참
한 너를 발견하였다고 하였었지.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바로 작은 이들을
위대한 이들로, 죄인들을 의인으로, 가장 멸시받고 가장 불쌍한 이들을 가장
영광스러운 이들로 만들기 위한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
"나는 차가운 사람들을 위해 너를 불꽃으로 만들었노라!" 고 하는 이 말씀이
마르가르타에게 위임(委任)되었다. 마르가르타는 활활 타올랐으며, 그리고
따뜻하게 한 하나의 불꽃이었다. 마르가르타는 말년에 홀로 조용한 곳으로
가서 살았다. 거기서 그녀는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그녀가 죽은 후 시신은
'코르토나'로 옮겨 왔다. 그런데 그녀의 시신은 하나도 부패하지 않았다.

'율리안 그린'은 그녀의 삶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르타의 생애는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을 얻게 한다.
즉 "소용돌이 속에서만 위를 향하여 가장 높으신 분께로 발을 그저 멈춰 설뿐
이지, 가장 깊은 근심과 불안 속에서만 더 높이 뛰어 오르게 된다는 것" 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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