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임팩트'의 종말

2004.12.28 02:42

박경숙 조회 수:276 추천:1

'딥 임팩트'의 종말
박용필 논설실장







바다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자 파도는 거대한 진공 청소기로 변한다. 해일이 맨해튼을 덮치는 순간 고층빌딩들은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차량들은 마치 장난감 처럼 바닷물에 휩쓸려 떠내려 간다. 산 위로 올라가 용케 살아남은 두 소년 소녀. 파도가 도
시를 집어 삼키자 눈물짓는 장면이 클로즈업 된다.

1998년 개봉된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의 마지막 장면이다. 공상과학 영화로 분류되지만 예언자적 내용을 담고 있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여자 친구의 눈에 띄기 만을 바라며 천재 클럽에 가입하는 리오. 어느날 우연히 망원경으로 잡은 소행성이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다. 이 행성은 지구와 충돌궤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입증된 때문이다. 극도로 긴장하는 백악관. 행성은 맨해튼 만한 크기에 무게는 5000억톤이나 된다. 지구와 충돌하면 세상은 종말을 맞게 될게 뻔했다. 러시아와 함께 제작한 우주선 '메시아'를 쏘아올려 행성을 파괴하려 했지만 바라던 궤도 수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인류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영화가 설정한 주제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 미주리주에 100만명이 2년간 버틸 기지를 만들어 종말을 막아보려 한다. 엘리트 20만명은 정부가 선정하고 나머지 80만명은 컴퓨터 추첨으로 뽑아 대피소로 보낸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현실에선 꿈같은 얘기다. '우주 겨울'의 혹한 속에 살아남을 생명체가 어디 있는가.

'딥 임팩트'는 촬영이 끝날 무렵 실제로 지구와 충돌이 가능한 행성이 발견돼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줬다. 애리조나주립대학의 천체과학팀이 발견한 소행성은 정확히 2029년 4월 13일 지구와 운명의 만남을 갖게 된다. 불길하게도 이날은 금요일. 그러니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이 되는 셈이다.

이 행성의 파괴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13만배. 과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면 요한 계시록에 기록됐다는 세상의 종말 이른바 '아마겟돈'(Armageddon)이 되는 것이다.

연방항공우주국(NASA)은 내년 1월 12일 무인 우주선을 이 행성에 보낸다. 탐사선의 이름은 영화를 본따 '딥 임팩트.'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맞춰 행성과 충돌 축구장 크기의 분화구를 만든 다음 행성의 화학 성분과 구조를 정밀 분석하게 된다. 충돌이 예정된 코스라면 영화에서 마냥 핵폭탄을 싣고 가 행성을 산산조각 낼지 아니면 궤도를 수정하게 만들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행성이 지구로 돌진할 확률은 37분의 1. 오히려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질 가능성보다 크다. 지난 8월 우주선 발사 계획을 부시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걸 보면 상황이 꽤나 급박했던 것 같다.

성탄절 바로 다음날 해일이 덮쳐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구촌 대재앙. 행성 충돌과 함께 '심판의 날'이 올 조짐이라며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겟돈 정말 있는 걸까. 역설적이지만 인간이 여태 존재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마겟돈 덕분이 아닌가 싶다. 수천만년 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 종말을 불러왔다는 행성. 공룡을 떼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던들 인간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종말은 시작만이 있을 뿐 끝은 없는 게 아닐까. 자비의 하느님이 인간을 내칠리야….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1
전체:
10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