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외롭다

2007.08.16 03:05

박경숙(昭侹) 조회 수:562 추천:5

겨드랑이와 무릎에 주먹만한 구멍이 난 헐어빠진 양복을 걸친 남자가 전시장에 들어섰다. 썩은 양파를 겨드랑이에 낀 남자의 무릎에선 피가 흐르고 움직일 때마다 몸에선 먼지가 떨어졌다.

1929년 친구 아내에게 프로포즈 하기 위해 파리의 한 행사장에 나타난 달리의 모습이다.

해외토픽감인 그의 몰골을 보고 사람들은 웃고 조롱했지만 이 해괴망측한 남자의 재능을 알아차린 여인이 있었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아내였던 갈라는 이 날 10살 연하인 광기의 천재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bador Dali)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20세기 최고의 화가이며 조각가 작가 영화제작자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달리의 생애는 그를 사랑한 여인에 의해 완성됐다.

남편을 버린 여자는 세상의 비난을 받았지만 그 행각이 불륜으로 기억되지 않는 건 그들의 관계가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죽는 날까지 지속됐기 때문이다. 갈라는 괴기스럽고 도발적이며 자기 중심적이고 욕망과 충동을 절제하지 못했던 달리의 동반자 연인 친구로 존재하며 그의 예술적 영감에 천재적인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자칭 피카소보다 1000배는 뛰어난 예술가라고 자신을 추겨 세우던 달리는 자신이 그린 '최후의 만찬'은 피카소의 모든 그림을 합친 것보다 뛰어나다고 호언 장담했다.

공맹의 가르침에 이의를 달지않는 민중에게 그 오만함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내란의 예감'이나 '기억의 영속성' 앞에 서면 그의 천재적인 재능에 입이 벌어진다.

많은 학자들이 천재성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결론지었다. 지능지수가 140이상 일 때 천재라고 부르는데 천재는 보통사람과 다른 정신 능력을 갖고 있어 정신적 활동에서의 창조성과 생산성이 탁월하다. 걸출한 천재 중에는 마음의 불안정과 모순성 등을 극복하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많은데 E.크레치머는 정신 병질의 요소와 창의력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천재는 외톨이가 많다. '천재 뒤에 지기(知己) 하나만 있으면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은 천재의 우수성을 식별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이다.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을 보면 백아(伯牙)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친구 종자기(種子期)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앞에 있구나"라 말하고 흘러가는 물의 모습을 상상하며 거문고를 타면 "유유히 흐르는 물이 눈앞을 스치는구나" 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는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떠났기 때문이다. 눈빛만 보아도 속사정을 알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친구를 '지기지우 (知己知友)'라 부른다.

예술가는 상상과 이해를 뛰어넘는 천재성 혹은 미친 짓거리로 시대를 앞서간다. 천재는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천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고 해야 옳다. 천재가 아닌 아이를 천재로 키우려고 밀어 부치면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당신이 나보다 열살이나 어리지만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해요. 또한 예술에 미쳐버린 당신의 세계마저 사랑합니다." 갈라는 달리를 이렇게 위로했다. 광기어린 예술혼에 꽃다발을 바칠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술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다. 천재는 외롭지만 외로운 천재를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 시공을 뛰어넘는 위대한 예술이 창조된다.

   -이기희 윈드화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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