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푸른 숲 속의 그들

2010.03.16 11:20

임혜신 조회 수:136

깊고 푸른 숲 속의 그들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별빛도 이르지 않는 곳 여린 풀잎처럼 어둠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들어야 할 소리도 마주치는 눈길도 없는 곳에 눈 맑게 뜨고 귀 기울이며 있었습니다 결 고운 바람이 스칠 때마다 적막을 뚫고 풀벌레 울음이 흩어지던 거기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깊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곳에 등을 달고 싶었습니다 그중 단단한 나무 가지에 등불을 걸면 어두운 숲의 가슴을 열릴 것 같았습니다 저 먼 곳에서 오는 달빛으로는 알 수 없을 숲의 고요, 내부를 비추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내부에서 번져 나오는 주홍의 은밀함 멀리 이르지 못하는 조그만 등불 아래서만 아프게 드러나는 순박한 사랑을 잉태하고 싶었습니다. 

그 숲을 나는 세상으로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은 것도 실상 착각이었는지 모르지요 어차피 깨어날 바에는 크고 검푸른 알속에서 깨어나느니 밖으로 빨리 나와서 깨어나는 것이 좋았습니다 자라나기 위해선 홀로 있을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늘을 더 깊게 꽃잎들을 더 보드랍게 바람을 더 싸늘하게 홀로 있음을 더 무섭게 하기 위한 뼈아픈 시간이, 

숲을 떠나온 지 오래입니다 뒷마당에 참나무 감나무 산딸기나무까지 자라고 그들의 향그러운 가지에 새소리가 떨어집니다 그것들은 모두 숲에서 따온 것들입니다 꺾일 때마다 아프다 소리하던 숲, 그 이별이 이만큼 잘 자라난 아침 나는 어딘가에 잘 자라고 있을 숲 그늘을 생각합니다 나의 고독만큼 잘 익은 그곳엔 몇 번이나 잎이 지고 피었겠습니다. 

숲으로 돌아갈 계획이 서지 않습니다 돌아가 다시 어둠을 배워야할 나는 너무 먼 곳에 살았습니다 바람이 쏟아지는 뒤뜰에 서서 하루 일과표를 찢어버립니다 지난달에는 영이 엄마가 죽고 엊그제는 잔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용감하게 숲을 뛰쳐나와 살던 이들 긴 산 그림자 속으로 속속 돌아갔습니다 내가 숲으로 돌아가고 싶듯 숲 속의 그들도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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