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해양학자

2007.10.12 10:54

임혜신 조회 수:66





                ...그의 손이 닿으면 조개는 말해주었다
                                  바다가 그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달빛만 하얗게 쏟아지는 
크레센비치*에 밀려와 죽어버린 조개
모래에 반쯤 묻힌 채
작고 고요한 
죽은 지도 꽤 오래된 그것들을 보면 
눈 먼 남자가 생각난다

그의 손이 닿으면 
환하게 드러나던 조개들의 일 
상처별로 나누어 담긴 서랍을 열면 
흘러나오던 바다의 슬픈 
역사가 생각난다

빛 없는 방
물풀만 싸늘하게 감겨오는 고독을
끝이라 돌아서지 않던 그는 
더 어두운 해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물리고 먹혔던 자리에서 
태어나는 시간의 싹을 따라

빛이 다가오고
빛이 사라질 때까지  
드넓은 어둠을 유영하는
외롭고 감미로운 사람의 손가락 
죽은 조개의 입술에 닿아 
발아하는 나는 하프소리를 듣는다
달빛에 누운 바다
끊어진 다리와 팔들을 보면 

그러므로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플로리다 동부 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해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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