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 석정희

2006.06.14 02:56

석정희 조회 수:744 추천:227

        뒷 모 습

                                        석 정 희

   시간은 어느새 이렇게 훌쩍 지나쳐버렸는지 모르겠다.  이 아이가 초중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그 아이가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배울 때의 모습이라든가 간단한 단어 한마디씩을 익히며 옹알대던 모습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쯤엔 오누이 같기도 했고 친한 친구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어 오기도 했었다.  더러는 나의 고충을 달래주고 다독여주는 상담역까지 돼주던 바로 그 아이.  보호자처럼 마음을 기대기도 했던 바로 그 아이가 이제 나의 곁을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입장을 하는 모습을 바라다보며 행복에 겨운 기쁨만이 넘치고 있어야 할 그 시간에 나는 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감추려 애를 쓰고 있어야 했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이는 눈물을 감추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자리가 무엇을 하는 자리였나를 생각해보면 나의 이러한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이 복되고 성스러운 자리가 마치 이별의 마지막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무대이기나 한 것처럼 마음은 왜 그리도 아려오고 있던지.  진행의 순서나 목사님의 주례사 같은 것은 내 눈과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어떤 방법으로든 시간을 붙들어 매어놓을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옆에 앉아있는 남편의 얼굴을 힐끔 바라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모습도 그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나보다 더 많은 흐느낌을 참느라고 애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가 앞으로 몇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곁을 훌쩍 떠나 버리고 말게 될 터이니 그 마음인들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고.  어느 부모인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이 딸아이에게는 유난했던 아빠이기도 했다.  마치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정성을 쏟는 일 외에는 아빠로서 딸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다른 일은 아무것도 없기나 하다는 것처럼.  나 자신도 아이와의 헤어짐이 못내 아쉽고 서운하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훌쩍거리고 있던 차에 남편의 이러한 안쓰러운 모습을 바라다보니 더더욱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객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그렇지만 우선 부모로서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바람직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떠나야할 그들의 허니문 분위기를 망가트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고 다짐을 거듭해 봤지만 결국은 떠나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는 나의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이제까지 정과 성을 모두 쏟아 키워오며 쌓아온 정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할 시점에 와 있는 같은 생각에서였을까.  빨리 이러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렇게 무겁게 갈아 앉은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팔짱을 끼고 행진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또다시 눈물이 난다.  그러나 이번엔 기쁨의 눈물이었을 게다.  서운하고 아쉽기만 하던 것이 어느새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바뀐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이 마당이 이별의 무대로만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뉘우쳐지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부모로서의 당연한 마음이기나 한 것처럼 행여나 다칠세라 마음만 조려왔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철부지 어린 것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독립된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는데 대한 축복을 빌기는커녕 눈물만 짜고 있었으니 정작 철이 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해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독립된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일 년, 이년, 십년, 이십년, 나이가 들고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름대로의 성숙되고 독립된 격을 갖추게 되기 마련이다.  독립된 가정을 일구어 나가는 것도 자연의 법칙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단순한 분리가 아니고 또 하나의 새로운 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생각해본다.  그러니 이제 이 아이의 떠남을 아쉬워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이룸에 대한 축복을 빌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나의 무절제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오히려 그들이 나가고 있는 앞길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앞쪽을 향해 걷고 있는 발걸음이 대견스럽고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내가 그 아이의 부모로서의 지나온 길보다는 훨씬 힘차고 보람찬 미래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훨씬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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