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의 변명 / 석정희

2009.08.02 16:28

석정희 조회 수:1026 추천:256

노숙자의 변명 / 석정희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살기 좋은 곳 엘에이는 누구나 한번 살아 보는 게 꿈인 브로드웨이가 있는 거리이다. 섬세한 건물 양식과 고풍과 현대미가 어우러져 젊은이들이 나래를 펴고 질주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런 곳에 밤이면 노숙자가 길거리에서 신문지 몇 장을 깔고 슬림핑 백을 펴고 변변치 않은 잠자리를 만들고 깊은 잠을 청한다. 차 소리 발자국 소리, 하등에 관계없이 질질 끌고 다녔던 샤핑카 운전에 심신이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허기진 배는 물로 채우고 몸에 배인 때는 생각으로만 사워를 하고 인생의 밑바닥을 송두리제 깔아 뭉게고 있다.
  
지나던 사람이 한 마디 한다. 저 사람은 의사였데요. 넉넉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  부를 누리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당당히 따낸 라이센스를 들고 환희와 꿈의 노래를 부르던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노숙자가 되어 길거리를 베회하는 거지가 웬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의사로서의 스트레스를 술로 잠재우다 그것도 모자라 마약에 손을 댔고, 결국 마약의 포로가 되어 마약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 다 잃고 노숙자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고 가엽고 안스러웠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병들고 나약한 환자에게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명성 최고의 지성 속에도 파고들어 허물내고 망가지게 한다. 결국은 파산에 이르고 자신 즉 나도 어쩔 도리가 없이 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세상 근심 다 집어쓰고 매달고 거리를 침대 삼고 노숙자가 되어야 했던 과정은 살펴보면 누구를 위한 종소리며 누구를 위한 바벨탑인가 말이다.  참으로 허망한 인생이다.
  
잠을 깨워 헴버거를 건네 주었다.  

먹어요?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햄버거를 받아들고 게눈감추듯  단숨에 먹어 치운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렇게 맛나게 먹을까? 생각하니 더욱 처량해 보인다.

"아저씨 왜 이러고 있어요? 미국에 얼마나 좋은 시스템이 많은데 이러세요?"
"나요? 이제는 이 생활이 나에게 제일 편합니다. 돈벌 궁리도 안해도 되지요. 페이먼트 없죠. 낼 세금도 없죠. 이보다 더 행복은 없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옛날이 생각나는 거지요. 그 괴로움만 빼면 부족함이 없어요."

당장 보아도 부족한 것이 태반인데 본인은 정작 부족한 것이 없단다. 부족함이 없다는 게 정상적인가? 부족함 투성이로 보이는 게 정상적인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너는 너 대로 살아라 나는 나대로 살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나는 너의 도우미로 살고 싶다.
  
많다고 다 부자는 아닌가 싶다. 진짜 넉넉한 부자는 귀천을 알고 최소한의 지성과 인격을 가지고 길거리를 배회하지는 말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최고의 인생길에 환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행복의 터널로 입성해야 한다. 영생포구에 이르는 순풍을 타면서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노숙자처럼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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