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 석정희

2007.02.12 15:09

석정희 조회 수:808 추천:242

(꽁트)  새끼손가락 / 석정희



동석이 콧구멍 후비던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자 윤희는 기어이 참고 있던 헛구역질을 왝,하며 내뱉고 말았다.
"왜 그래?"
입에 물었던 새끼손가락을 얼른 뺀 동석이 윤희를 돌아보며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때 마침 후리웨이를 내리기 위해 차선을 바꾸던 BMW밴이 휘청 흔들렸다. 순간 윤희의 눈꼬리가 힐끗 치켜 올라갔다.
"그렇게 안절부절 할 게 뭐있어요, 그냥 읽으면 되지. 꼭 원고 없는 기도를 해야 은혜가 되는거 아니잖아요? 지난주에 보니까 김 장로님도 써가지고 와서 줄줄 읽던데 뭘."
콧구멍을 꼭 오른 손으로 쑤셔야 돼? 오른 손은 핸들을 꽉 잡아야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 말을 억지로 참으며 윤희는 치켜 올라간 눈 꼬리를 살랑 내리고 말했다. 불같은 동석의 성질을 건드려 일을 망친 게 결혼생활 20년에 팔로스버디스 절벽 밑의 돌조각보다도 많았다. 공연히 비위를 긁어 은혜스러워야 할 주일 예배를 거스릴 필요가 없는 것을......
"틀렸어, 기도문을 집에 두고 왔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습관처럼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또 콧구멍에 가져가던 동석이, 윤희의 쪼그라진 이마를 보더니 흠-흠,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운전대 위로 손을 내렸다.
동석은 초조해지면 콧구멍을 후빈다. 처음에는 주위를 의식해서 콧구멍 두 번 쑤시고 콧등한 번 쓸고 하는 동작을 반복 한다. 그러다 차차 문제에 몰입하면 콧등 쓰는 것은 생략하고 냅다 콧구멍만 쑤셔대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동석이 그 콧구멍 쑤시던 새끼손가락을 급기야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초조함이 극에 달하면 이제는 손톱을 물어뜯는 것이었다. 콧구멍 쑤시는 것까지는 잘 참아내던 윤희도 이쯤에서는 인내심을 잃고 만다. 손톱 끝에 묻어난 코딱지가 입속에서 어찌 되었을까를 상상 하기도 전에 구역질이 먼저 나  우-웩, 하고 치솟는다.
"기도문이 있으면 읽을꺼야?"
윤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동석이 힐긋 돌아보더니 커다란 눈 바퀴를 뒤룩뒤룩 굴린다.
이 마누라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며 진의를 가늠해 보는 표정이다. 잠시 후 동석의 낯빛이 슬며시 밝아지더니 은근하게 묻는다.
"가져왔어?"
"그럼, 안수집사 마누라가 그런 재치 하나 없을까?"
윤희는 '짠', 하며 성경책 갈피 속에서 기도문을 빼어 들었다. 지난밤을 새우며 동석이 끙끙 거리고 작성한 기도문이 틀림없었다.
동석은 멋쩍은 웃음을 피식 날리며 오른손을 들더니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두 번 퍽퍽 쑤신 후 여유 있게 콧등을 한 번 쓰윽 쓸었다. 이상,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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