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편 / 석정희

2006.01.10 00:48

석정희 조회 수:721 추천:208

어떤남편 / 석정희



   “야, 그건 정말 히트 깜이다”라며 나는 허리를 쥐었다.  오래 만에 만난 친구 J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해 깔깔거리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세상에 어떤 남편이 호텔방에 자기 마누라만 달랑 내버려두고 나가서 혼자서만 저녁을 사먹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오랜 친구인 J와 그녀의 남편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부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여러 시간을 운전을 하여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것은 저녁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피곤도 하고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말았기 때문에 몹시 시장하기도 했었다.  
J는 샤워를 하면 피로가 다소 풀릴 것 같아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샤워 룸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한 다음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생각을 하니 즐거워지는 마음에 장거리 여행 끝의 피로 같은 것은 싹 가실 것 같았다.  이날은 와인 한잔을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을 참지 못해 카지노장을 서성거리고 있으려니 생각했었다.
   “어데 갔다 오는 거야.”하고 한참 뒤에 돌아온 남편에게 물으니 “저녁 먹으러 갔었지 뭐.”  남편의 대답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자기 혼자서?”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저런 것도 남편인가?” 생각하며 “잘했어”라고 얼버무렸다.  J는 그날 저녁 굶은 채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하니 아침도 혼자서만 먹고 오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혼자서 뷔페를 먹고 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는 도중 간식거리로 가지고 온 과일쪼가리 두어 쪽으로 어제저녁과 아침식사를 대신해야 했다고 한다.
   “너 혹시 남편하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 하고 물어봤다.  “문제는 무슨 문제?,  문제가 있다면 라스베가스까지 함께 놀러 다닐까봐?”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 부부의 평상시의 모습이 이런 것일까.  즉 그들만의 잣대로 보면 이것이 그들만의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란 말인가.  부부가 함께 식사도 하고 즐기며 관광을 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여행의 모습이 아닐까.  좀 특이한 모습의 부부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J는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털어놓겠다며 신혼 초 때의 이야기부터 지내온 일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혼 후 집안에서 식사준비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음식 모두를 한꺼번에 준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반찬준비도 하게 된다.  밥이며 반찬들이 준비 되는대로 식탁에 올려놓게 된다.  계획했던 것들이 대충 되었다 싶어 J도 함께 식사를 하려고 가보면 식탁에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식탁에 올려놓는 대로 모두다 먹어치운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은 아예 당초부터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보다.  이런 일은 결혼을 한지 삼십년이 돼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 식사문제 하나만으로 그 집안의 풍속도를 그려본다는 것은 옳지 않을지 모르나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간혹 “같이 뭣 좀 먹으러 가자”고 물어오기도 한다고 한다.  이럴 때면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 라거나 “별로 생각이 없어”라고 말하면 “알았어.”라며 혼자 나가 먹고 오는 일이 이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듯하다.  J는 절약을 하고 가급적이면 지출을 줄이려는 마음에서 인 것을 남편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좀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깔깔거리며 허리를 쥐고 나뒹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누라를 남겨두고 나가서 혼자 먹는 프라임 립의 맛이, 뷔페식사의 맛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J의 남편 말고도 이런 남편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삶을 살면서도 재미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을까.  행복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있을까.  가끔 TV 같은데서 동물의 세계를 그린 다큐멘터리에서 먹이로 잡은 사슴을 동물의 왕이며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사자 여러 마리가 서로 먹기 위해 다투지도 않으며 나누어 먹고 있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기 마누라에게까지도 그럴진대 이런 사람이 다른 이웃을 위해 무엇이든 간에 베풀 수 있는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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