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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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언제나 배워야지요

2016.11.16 02:30

채영선 조회 수:34

언제나 배워야지요


소담 채영선


시인이며 수필가인 유 교수님은 말씀하셨지요.

손자는 온 세상보다 귀한 거라고. 여름 문학 세미나 시간에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커다란 풍선이 가슴 속에서 붕붕 불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맞아, 내게 그런 손자가 있어. 온 세상보다 귀한 손자.’

 

자식은 태의 열매이고 상급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처럼 안팎으로 뛰어야 따라갈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두 시간 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면 목도 목이지만 평지에서도 잘 넘어지는 저는 퉁퉁 부은 종아리를 주무르며 꼼짝할 수가 없었지요. 결국 2년도 못 채우고 결혼하기 전 교사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체력이 따르지 않으니 후회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강아지를 딸 삼아 키우며 둘이 지내다가 어린이 날, 어머니날을 핑계로 딸네 집으로 갑니다. 겨우내 잠자던 대지는 기운을 북돋아 새 일을 맡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있습니다. 콩 심은 자리에 옥수수를 심고 폭 삭은 옥수숫대로부터 영양을 섭취한 땅에 다시 콩을 심어 놓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옥토인 것을 알 수 있는 검은 땅에서 파란 싹이 눈짓을 하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도록 튼실한 손자는 모임을 마치고 늦은 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셔널 체스 대회에도 나갔었다는 손자는 도무지 따라하지 못할 게임을 하자고 합니다. 호젓한 틈새를 타서 딸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며 말끝에 고민거리를 털어놓습니다. 기계치인 저는 소소한 일도 도대체 방법을 모르니까요. 딸은 간단하게 처방을 해줍니다. 이러면 이렇게 하고 저러면 저렇게 하고, ‘그렇게 쉬운 걸 왜 오래 끙끙했을까.’

 

이젠 무엇이든지 딸에게 물어보아야겠습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으로 판단력은 물론 대처법도 까마득하니 학생으로 돌아가 민첩한 젊은이의 생각을 따르는 게 좋다는 확신이 듭니다. 자식은 어른이 되면 자식이 아니라 어쩌면 선생님 아닐까요. 홀로 묵상을 하며 신실한 신앙을 지켜나가는 딸이 모습은 저를 꼭 닮았다고들 했는데 왜 저는 팔딱팔딱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자가 한글로 쓴 할아버지 생일카드를 보며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저렇게 의젓하고, 한국말도 제법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손자, 다른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착한 아이가 우리 손자야.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고 즉시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주는 근사한 딸이 하나님이 주신 우리 상급이야,’ 묵은 체증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실버가 되었다고 헛기침하지 말고 자식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해 보세요. 고민도 부끄러운 것도 내놓고 상담해 보세요. 아마 더욱 가까이 다가와 보듬어주고 위로해줄 것입니다. 때로는 젊은 사람이 더 지혜롭고 판단력이 정확하다는 것을 믿어보세요. 사춘기 이후 조금은 소원해졌던 자식이 친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어쩌면 성경말씀대로 자식을 노엽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관심과 사랑을 다시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