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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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60810)

2016.08.11 13:19

채영선 조회 수:86

여름과 헤어지기 싫은 대지는 닳아 오른 열기로 여름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살그머니 밤에만 부시럭부시럭 찾아오는 빗발이 그만 좀 하라고 달래주지만 만만히 고집을 꺾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골목을 스쳐간 스톰인지 토네이도인지 때문에 옆집 마당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벌렁 누워있는 아름드리 통나무를 누가 데려갈지 막막하기만 한데 두어 달을 비운 옆집 여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현관 앞의 일그러진 처마를 고치느라 바빠 보입니다.

 

우리보다 한 해 늦게 이사 온 후로 이십여 년을 함께 사는 이웃이 오랫동안 안보이니 참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서 그저 기도만 드리던 중에 돌아오니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닙니다. 이젠 은퇴하신 간호사인 그분에게 남은 생애가 잔잔하고 평온하기만을 바랄 뿐이지요.

 

남의 마당에 누운 통나무만 바라보고 걱정을 하다가 요새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지붕에 고목나무에서 바람이 떼어낸 큰 가지가 떨어져 누워있는 것을 말이지요. 앞에서는 1층 옆에서는 2층 꼭대기인 지붕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알미늄 사다리를 놓고 남편은 끄트머리에 올라섭니다. 평평하지 않은 곳에서 끄떡거리는 사다리, 보기만 해도 아찔합니다.

 

무얼 믿고 저러는지 몰라하려다가 입을 다물었지만 하여튼 올라가는 거라면 벌벌 떠는 나와는 달리 나무에도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 먼저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까지 큰 고생 안하고 하나님 은혜로 그럭저럭 지내왔는데 나이가 얼마인데 겁 없이 올라서는 걸까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합니다.

 

1층 높이 쪽에서 아무리 꾀를 내어 시도를 해봐도 나뭇가지 굵은 쪽이 높은 쪽 지붕으로 넘어가 있는지 꼼짝도 안 합니다. 이파리도 무성한 나뭇가지는 말이 가지지 보기에도 들기 어려운 무게입니다. ‘제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무조건 사람을 불러요,’ 말은 해두지만 하루 이틀 날은 빨리도 지나갑니다.

 

잔디 깎는 사람에게 해보라고 할까. 잔디 깎는 사람은 위스칸신에서 방학이라 집에 다니러 와서 알바로 일하는 대학 청년입니다. ‘그 애가 무슨 연장이 있을 라구, 그 학생 아버지도 진디 깎는 일을 하는데.’ ‘그럼 나무 자르는 일을 하는 사람을 불러요,’ 이야기한 것이 벌써 두어 주가 지나갑니다.

 

마침 옆집 마당에 누운 나무를 치우러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이들한테 부탁을 해 볼까 남편은 엉거주춤 일어납니다. 그 사람들은 재빠르게 자기 할 일만 하고 자동차를 타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떠난 자리에 보니 제일 굵은 통나무 둥치는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너무 무겁고 커서 처리를 못하고 잔가지만 잘게 부수어 치우고 간 것입니다.

 

짧은 영어에 사람을 부르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둘 다 두통이 생깁니다. 60년 되어가는 집을 리모델링하는 일을 시작했다가 소화불량까지 생긴 후로는 사람을 쓰는 일은 무조건 피하고만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지붕 위에 떨어진 나무, 어떻게 하지.’ 말이 없이 혼자 속으로만 애를 태우는 남편은 며칠 잠을 설친 것이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삼일 전인가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꼐서 시키셨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 제목을 들어주시려면 먼저 기도를 시키십니다. 천국에 가신 친정 어머니꼐서는 말씀하셨지요. 억지로가 아닌 진실한 눈물로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되면 분명히 이루어주신다는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꼐서는 유난히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다음 날 오전 정원에 나갔던 남편은 싱글벙글하는 얼굴로 들어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붕 위에 있던 큰 나뭇가지가 깜 쪽 같이 사라졌어.’ 아무리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봐도 그 큰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보내버리신 걸까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이 여름 숲이 하도 무성해서 무리로 피어있는 원추리 꽃을 사슴이 와서 다 따먹고 가도 잘 모르고 있지만, 수도꼭지를 고치는 바람에 앞 정원에 새들이 덜 찾아오지만 하나님꼐서는 또 다른 선물을 주셨습니다. ‘다 내게 맡기려무나. 염려하지 말고.’ 조곤조곤 일러주시는 우리 주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믿지도 못하고 끝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끝까지 맡기지도 못하고...

부끄러운 나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