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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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리',  '쏘리'          ㅡ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61017) 

 

                                                                                                                                                                   채영선

은행나무도 아닌 것이 은행나무 흉내를 내느라 분주합니다. 이른 봄 이슬처럼 송글송글 맺히던 꽃나무가 정원 가득 노랑 팔락 종이를 뿌려주었습니다. 현관문을 열어주면 뛰어 들어올 기세입니다. 아침에 한바탕 쓸어냈건만... 이쁘다고 칭찬해준 것도 봄 한 때, 무엇을 그리 못 잊어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할까요. 어쩌면 하늘하늘 매달려 있는 동안 집안이 궁금했었는지도 모르지요.

 

토끼도 궁금해서 기웃거리고 다람쥐도 궁금해서 기웃거리고 앞 이빨이 커다란 마못도 두 발로 서서 들여다보던 걸 생각하면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오랜 친구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복사지를 오려서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하던 손자가 만들어놓은 것이 두 개 남아있습니다.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들었는지 학교에서 보관하던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종이로 만든 해피의 머리 모습과 하얀 점토로 구워 유약을 바른 눈사람입니다. 손자가 만든 것이라 유리 장 안에 넣어두고 가끔 들여다봅니다. 들여다볼수록 정감이 갑니다. 해피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내용과 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지에 모든 감각은 동원이 되나봅니다. 손자가 보이는 것 같아서 강아지가 보이는 것 같아서 즐거움을 느끼는 세포가 모두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도 만드시는 걸 좋아하시나봅니다. 오랜 세월, 우리의 머리로는 가감이 오지 않는 시간 동안 혼자이셨던 하나님께서는 친구가 있었으면 생각이 나셨는지도 모르지요. 하나님도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는 걸 좋아하실 테니까요. 하나님이 쓸쓸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저는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고독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에는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있어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드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외로우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여튼 친구가 필요하셨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비슷한 용모의 사람을 만들기로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장차 살아가야할 지구도 만드셨겠지요.

 

해와 달과 별도 만들어 무한한 우주 공간에 조명을 비추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적당한 별을 하나 골라 살기 좋은 세상, 지구로 만드시고 첫 사람 아담을 만드셨겠지요. 친구로 삼으려고 만들은 아담을 보니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여자 친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느끼셨나봅니다. 그래서 이브를 만들어주시고 나니, 점차 문제는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공상과학의 면에서 만들은 영화 노아를 잠시 보게 되었습니다. 공상 과학의 면이었지만 이제까지 간과한 면을 보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던 하나님이 친구로 여기려던 인간을 물로 멸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심을 하셨을까요. 숫자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유독 인간은 왜 하나님께 대적하려는 마음을 품게 될까요.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름을 크게 떨치던 나라들이 천하를 통일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핍박을 하며 그들의 가정과 자녀와 마을과 나라를 유린하는 것을 봅니다. 다행히도 다른 나라를 괴롭힌 적이 없다고 장담해오는 우리나라조차도 그 작은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핏줄의 사람들을 서로 괴롭힌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과 살상은 남의 것을 탐내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작게는 이웃에게 크게는 다른 나라에게. 예수님은 사람이 지킬 수 없는 십계명을 비롯한 육백여 가지의 율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새 계명을 주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 몸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전혀 남을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남의 것을 빼앗을 수는 더욱 없는 일입니다.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모릅니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있을까요.

 

점심에 외식을 하고 음식점을 나오려고 하는데 들어오는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저를 보고 쏘리.’ 남편에게 쏘리.’ 가만히 서있는 우리가 자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오후 내내 머리 안에 오고갑니다. 혹시 나는 누구의 길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을까, 누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