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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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60522) 채영선

 

< 10달러쯤... >

 

한국을 다녀 온 후 처음 마트 나들이 길입니다. 돌아온 지 3주도 안 되는 동안 시카고에 세 번 다녀오고 나니 옥수수 알맹이 빼어먹은 것처럼 숭숭 구멍이 난 채로 시간이 달려갑니다. 자세히 보니 요즈음 나온 차에는 cd조차 넣을 자리가 없습니다. 이상한 일도 있다 했더니 usb를 사용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전화기는 이전 스타일로 바꾸어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자동차를 바꿀 수도 없고 할 수없이 지프차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따라서 usb에 좋아하는 음악을 넣어볼 생각을 합니다. 아무래도 용량이 조금 큰 usb를 준비할 생각으로 마트로 갑니다.

 

자꾸 잊어버리는 기억으로 젊은이들을 따라서 사는 일이 힘이 들지만 자동차가 신발인 미국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나이 먹은 차를 몰다가 고속도로에서 연기를 뿜으며 서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분명히 마트로 갈 때는 우회전하는 커브 길이 한산했었는데 40분 만에 돌아오는 길이 스산해 보입니다. 땡볕이 인정 없이 내리쪼이는 큰 길 모퉁이에 고장 난 우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구르마, 아니 유모차 비슷한 것과 보퉁이...

 

보나마나 홈리스겠지, 이 뜨거운 날에 우산이라니, 목이라도 축이라고 해야지.’

2달러를 꺼냈습니다. ‘내 수준에는 이 정도밖에 줄 수가 없어, 미안하지만.’

 

다행히도 빨간 불이 들어옵니다. 가까이 보니 때가 잔뜩 오른 얼룩무늬의 강아지 시추가 우산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줄에도 묶이지 않은 개는 큰 길에서 마트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 가운데 좁은 모서리에서 오가는 차를 바라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삐딱거리는 우산을 고정해주느라 분주한 그 사람은 자나가는 차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강아지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습니다. 신호등 시간이 다 지나가는데 돌아보지도 않는 사람을 할 수 없이 불렀습니다. 2달러를 넘겨주면서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강아지 밥 살 돈이 필요할 텐데요, 다음엔 적어도 10달러쯤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자동차 문을 닫고 떠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떠나지 않을 그 강아지를 그 사람은 절대로 떼어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문 닫고 들어갈 집도 자동차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을 쉘터에서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받아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늦게 일어난 오늘 아침 선물을 받았습니다. 골짜기 숲으로 난 시원하게 큰 창문 앞에 앉아마자 빨간 새가 포르르 날아올랐습니다. 사르비아 꽃처럼 빛이 나는 붉은 가슴의 수컷 카디널이 마음껏 뻗어간 뽕나무 가지 끝으로 다가가기 무섭게 이파리에 살짝 가려진 가지 위에서 암컷 카디널이 뾰족하게 입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햇볕 속에서 익어가는 그들의 행각은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텃새들은 유난히 부지런해서 동이 틀쯤부터 조잘대는 소리가 유리창을 간지럽게 합니다. 몸살이 난 암컷이 아직 아침밥도 못 먹은 건지, 게으름을 피우면서 어린양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수컷 카디널은 입을 맞출 뿐 아니라 무언가를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언젠가도 남편은 현관 앞 크랩애플 나무 가지에서 똑같은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카디널은 대부분 그렇게 서로를 아끼며 정을 나누는 습관이 있나봅니다.

 

성경 말씀 중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여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디에나 강한 자와 약한 자는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요, 자연입니다. 동물들이 약육강식의 논리로 살아간다고 믿고, 인간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