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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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60524) 채영선

 

< 하나님이 찡-하실까 >

 

향긋한 냄새로 유혹을 하는 야생풀이 꼭 산나물처럼 보이는 5월입니다. 앞 뒷마당에 소복하게 올라온 연둣빛 풀을 놓아두고 심술궂은 사슴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달콤한 백합 꽃망울 냄새에 코가 근지러워서 다가왔다가 건들거리는 철망 울타리에 화가 났나봅니다.

 

편식이 심한 어린 사슴인지 백합꽃 대신에 마당 건너편에 보라색 움을 부끄럽게 티우고 있는 붓꽃을 겨냥해서 분풀이를 한 것입니다. 가여운 꽃, 가느다란 목을 길게 뽑아 5월이 오기를 기다린 몽우리가 하도 예뻐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사진에 박아둔 것이 다행이네요.

 

키가 큰 나머지 바람만 불면 조금씩 흔들거리는 아카시아 나무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몇 년 동안 말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 너무 가깝고 살아있는 가지도 꼭대기에 있을 뿐 잎새도 얼마 안 되는 나무니까 이젠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남편은 중간에 있는 옹이구멍에 다람쥐 가족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나무를 자르느냐고 반대를 하는 것이지요.

 

듣고 보면 그럴 듯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람쥐 가족은 자꾸만 늘어만 갑니다. 하얗고 까맣고 갈색으로 태어난 다람쥐들이 의도 좋게 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저절로 즐겁기만 합니다.

 

아이오와에서 시골 생활을 마음껏 즐긴 손자가 다시 시카고로 돌아갑니다. 해피와 헤어지는 게 서운해 하는 손자에게 거북이를 사주려고 애완동물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신이 나서 조잘대는 손자와 거북이가 머리를 맞대고 웅크리고 있는 곳에서 서성거려도 안내원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안내원을 불러서 거북이를 사겠다고 하니 무조건 40갤런 직방형 두꺼운 유리의 물탱크를 같이 사야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손바닥보다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위하여 그런 유리 어항을 준비해야 하느냐고 좀 작은 것을 사고, 자란 후에 더 큰 것을 사겠다고 하여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물어도 그 대답,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그 대답, 서로 전화로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안 된다고 하나같이 말하는 것이었지요.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약속한 것을 사주지 못해 어깨가 축 늘어진 아이를 데리고 나오고 말았지요.

 

우리가 중국 사람인 줄 아나 봐요.’

중국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날 거북이 국을 끓여 먹는대요.’

아하, 어쩐지...’

 

동물 애호가들이 일을 하는 곳이니 짐작이 갑니다. 우리가 얼마나 야만적으로 보였을까요. 버선처럼 속을 뒤집어 보이지도 못하고 오해를 받는 것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를 어떻게 하나 다시 고민입니다. 옆집 레니는 집 주위 가까이 있는 큰 나무는 다 잘라냈는데 우리 집 주위에는 키가 큰 고목이 열 손가락도 넘습니다.

 

시카고에 가면 대처 사람들은 다를 거야. 고집만 부리지 않고 오해도 덜하고. 손자를 살살 구슬러 달래며 오는 길, 하늘에는 햇볕이 쨍쨍한데 유리창에 빗방울이 후둑후둑 맺힙니다. 다람쥐도 거북이도 만드신 하나님이 찡하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