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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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삶과 글과 믿음의 합주

-채영선 수필집 영혼의 닻

 

 

김 종 회

문학평론가 한국평론가협회장 경희대교수

 

 

   채영선은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에서 글을 쓴다. 한국에서 익힌 모국어와 

문학에의 열정을 안고 8만 리 태평양의 푸른 물결을 건너 간 이민자다.

이오와에서 부군을 도와 영혼 구원의 목회를 감당하며 쓴 글이니, 그 바탕

에 절대자를 향한 신앙의 결정 들이 응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

로 그의 산문들은 맑고, 싱그럽고, 또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사람의 일

생이 유한하고 우리가 붙들고 있는 일상이 한정적인 까닭에, 그와 같이 따로 

매설된 정신과 영역을 가진 이의 세상은 뭔가 좀 다를 것이 분명하다.

   채영선의 수필집 영혼의 닻은 모두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통독

하고 되돌아보니, 그의 작품세계는 삶과 글과 신앙이 같은 동선(動線)위에 

병렬되어 있고, 그 세계를 부양하는 힘은 절대자를 향한 순적한 방향성에 있

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단순히심중에 충일한 신앙고백으로 그쳤다면, 그의 

문학은 별반 의미가 없다. 오랜 글쓰기의 경험을 가진 작가는, 이 창작의 문

법을 잘 알아차리고 있는 듯하다. 다양하고 세미한삶의 경험, 이를 솜씨 있게

가다듬고 표현의 묘미를 더하여 작품으로 변환하는 글쓰기,그리고 그 잘 보

이지 않는 내면에 명료하게 저장하고 있는 믿음의 세 요소가 손을 맞잡

고 있는 형국이다.

   1부는 그의 삶이 오랜 터전을 마련한 아이오와 풍광과, 거기서 만나고 대

화하고 동행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작가의 심경을 드러낸 문면 

가운데 이 지역의 환경 조건에 대한 불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그 땅의 이름을 부드럽고 고운 말로 인식하고, 원래 주

인이던 인디언의 말로 아름다운 땅이란 뜻이라고 해명하는 작가는, 자연

적이든 작위적이든 이곳에 대한 호의를 익혔다. 언젠가 미국 서부 캘리포니

아로 강연을 갔을 때, 거기서 작가 한 분이 그 사막 지역의 경물을 사랑하고 

친숙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 작가는 그런 자기 강박의 수고를 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다. 아이

오와의 자연이 당초에 사막을 안고 있는 캘리포니아와 다르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이 책의 전반을 관류하는, 다음과 같은 작가의 생각에서 말

미암는다. 오랜 옛날 신앙의 자유가 어렵던 시절에 믿음의 선배들이 마음

속에 묻어두고 잘 표출하지 못하던 숨겨진 보화같은것이다.

 

   살아있기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있기에 감사하고, 또 이렇게 감사의 말을 나눌 

수 있기에 감사한 것 아닐까요. 사도 바울은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제 남은 삶의 소중한 시간을 내게 주신 은혜를 나누는 것

이야말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며 가장 귀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름다운 땅 아이오와에서> 중에서

 

   이민 생활과 정착, 목회와 글쓰기, 그리고 머리 수술을 받아야 했던 절체

절명의 순간들을 모두 포괄하여, 만만치 않은 인생행로를 걸어온 작가다

그리고 이제 원숙한 세계관의 노경을 바라보는 연륜에, 사유의 깊이가 없

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유의미한 시기에 작가가 끌어안고 있는 것이 문학과 

신앙이며, 그 결과로 이와 같은 수필집을 상재할 수 있다면 그는 복 받은 자

. 그러기에 집 주변에 출몰하는 토끼나 오래 전에 천국으로 보낸 강아지 

잭크나, 특별한 모양의 새 카디널이나, 새로운 세대를 이어갈 손자까지,

함께영원한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길벗이 되는 터이다.

   2부는 그처럼 삶과 신앙의 화해로운 악수가 어떻게 구체적인 형용을 보

이고 있는가를 발화하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교회의 개척, 미국의 영어권 

문화 가운데서 이중언어로 살기와 같은 큰 범주의 일들이 있는가 하면,

마당의 꽃과 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언제나 그곳에 있는 소망과 같

은 내밀한 자리의 일들도 있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겠지 해도 내일을 향한 길과 그 길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지워지지 않는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의 이름으로 이른 아침 커튼을 열고 소망의 

이름으로 창가에 따뜻한 황금빛 등불을 켭니다. 그 등불이 햇빛을 대신할 수 없는 

작은 빛이라 할지라도 노을이 잠드는 저녁마다 소망의 등불을 켜겠습니다.

                                                                         -< 재가 된다 할지라도 > 중에서

 

     채영선 수필을 관통하는 주요한 키워드는 이 인용문에 등장하는 소망이 

아닐까 한. 소망은 희망과 다르다. 성경에서는 굳이 소망이라는 말을 쓴다

바라는 바, 곧 목표가 분명한 것이 소망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삶의 울타리

를 넘어 언젠가 돌아갈 저 높고 먼 곳을 향하는 마음이 이 작가의 소망이다

그것이 있기에 그의 글에 펼쳐지는 현실은, 비록 고달프고 신산한 것이라 할

지라도 하나의 경과 과정으로 존재할 뿐 불가역적 장벽이 아니다. 기실 이것

은 신앙적 삶의 모범 답안이지도 모른다. 겉으로 답답하고 융통성이 덜하게 

느껴지더라도, 결과에 있어서는 이 우등생의 답안을 밀고 나가는자를 당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작가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고 모든 

상황의 귀결은 감사이며, 이 내포적 충일과 대결하여 극심한 병마나 신은 

죽었다는 극단적인 논리조차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데 참으로 재

미있게도, 작가는 저 고색창연한 니체의 철학적 발언을 매우 간단한 몇 마디

로 제압했다. 신이 죽었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와 이 땅에서 죽

음으로써 부활과 구원을 예비한 그 죽음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에 덧붙여 죽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에 사실 수도 있는 것이라고언표

했다.

     3부의 첫 글에서 작가는 아주 의미심장한 개념 하나를 던졌다. ‘사람은 무

엇으로 사는라는 화두다. 일찍이 이 이름으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단편소설을 쓴 바 있으며, 모든 문학가와 사상가들이 끊임없이 탐색하고 또 

답변한 질문이다. 그렇게 3부에 수록 된 글들은 지상에 발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 다기한 면모에 중점을 두었다.그런데 그 여러 사례들의 종착

점은 역시 신앙 원론이다. 이 수필집 전체를 신앙에세이라 호명할 수 있는 이

유다.

 

    자기가 죽으면 관 밖으로 내놓게 하라고 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서른셋의 혈기 

왕성한 나이, 제자들을 키우시고 허물이 많은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다 이

루었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3년 동안 생활을 함께 하며 보고 배운 제자들로 

인하여 로마는 기독교 국가로 정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말도 많은 현

재 교회의 모습으로 사도행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선물> 중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두 손, 곧 죽음 앞의 빈손은 인간의 유한함을 상징한다

인간들의 교회는 말도 많은 현재로 이어져왔다. 이 세상의 모습과 인간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없이 참다운 신앙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순례자의 여

정처럼 그렇게 멀고도 곤고한 길 찾기가 이 작가의 글이라면, 순례 길 위의 

작가는 심정적으로 많이 행복한 사람이다. 교통사고 현장을 증언해준 고마운 

백인, 시간의 순환을 따라 찾아 오는 성탄의 계절, 심지어 사람과 사람을 갈

라놓는 문명의 이기까지, 그 행복한 신앙의 눈으로 보면 감당하지 못할 바가 

없다

   4부로 이어지는 글들에서도 작가는 삶의 다채로운 환경과 신앙에 대해, 그 

바탕의 견고함에 대해 말한다. 그 중에는 성경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새

까마귀도 있다.

 

     어느 곳에서는 불길한 새인데 미국의 까마귀는 길조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극심한 생각의 대조를 보여줄까요. 서부극을 좋아하는 저는 생각을 해봅니다

개척자 시대의 미국 땅에서는 사람의 모습이 귀했을 것입니다. 말 타고 길을 떠나면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던 곳이 바로 미국 땅이었지요. 집을 나간 가족에게서 

소식이 없을 때 막막한 넓은 황야에서 사람이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오직 까마

귀 아니었을까요. 더구나 강도를 만나 몸이 상한 경우가 많은 그 시대에 애절한 가족

의 마음을 달래주는 귀한 새였으리라 생각해봅니다골목에서 이리저리 비켜서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텃세를 하며 동네를 지키는 길조가 있음도 감사할 뿐입니다.

                                                                                         -< 왜 길조인가 > 중에서

 

    한국의 까마귀는 흉조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대개 길조로 통한

. 문화적 전통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실제로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있어서도 

그렇다고 한다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까마귀야말로 

도망 중에 생명이 경각에 놓인 선지자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을 공급한 하나님의 전령사다. 은유적 대비의 구도에 있어 미네르바의 부

엉이가 인본주의를 대변한다면, 엘리야의 까마귀는 신본주의를 대변한다.

막한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이 성경적 의미의 새는, 신본주의를 푯대로 살아

가려는 작가에게 소중한 객관적 상관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부에 이르면 작가의 언술들이 다시 하나님을 향해 웅숭깊은 고백과 토

로의 외형을 나타낸다. 필자의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

에게 하나님을 설명하기에 가장 어려운 대목이 있다. 네가 믿고 있는 하나님

을 내가 감각할 수 있도록 보여 달라고 할 때이다. 히브리서 11, ‘믿음 장

의 문면으로 설득하기도 어렵다. 논리의 신앙과 체험의 신앙이 노정하고 있

는 간극이 너무 넓고 크기 때문이다. 다만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것은 눈에 보

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도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기의 십자

가를 지고 가는 사람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포기와 순종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자기

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인 것

입니다.

                                                                                  -< 작아서 좋아요 > 중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 하나님 중심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이 작가에

게 어떤 상황인가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부분이다. 이는 어쩌면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를 만난 사람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실존주의 철학자는 신 앞에 일대 일의 단독자로 서지만, 하나님 앞에 순복한 

신앙인은 그 대립적 지위 자체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 또

한 자신의 실존을 염두에 둔 주체적 글쓰기보다, 영혼의 소유주에게 귀환한 

포기와 순종의 미덕을  더 높이 사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 6부로 가면 그와 

같은 정신적 승급의 단계가 일상의 여러 영역에 두루 편만하여, 보편적인 삶

의 형식 가운데서 발현되는 신앙인의 모습에 도달한다.

 

      대학생 시절 기독학생회에서 주관한 종교가 아닌 사실이라는 주제의 세미나

에서 큰 은혜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기독학생회 임원의 대부분

은 목회자 또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여학생들도 대부분 목회자나 목회자의 아내

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잠잠할 수 없게 됩니다.

상할 수 없는 사실이 사실로서 자신에게만  다가온 특별한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종교가 아닌 사실 > 중에서

 

      참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이 작가의 태생적 근원, 발생론적 구조

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비단 특별한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삼라만상을 그처럼 특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전인격적인 세계관

의 형성이 거기에 결부되어 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 긴 겨울을 지낸 

뜰의 식물들이 짓는 표정피아노 위의 작은 정원인 화분들, 작가 마크 트웨인의 

예화, 미국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생각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이 작가만큼 복 받은 문필가도 없을 것이다. 삶과 글과 신앙

이 하나로 연합한 작은 축제의 자리에이 수필집이 놓여 있다. 바라기로는 그의 

생애가 글과 믿음과 더불어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빛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