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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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기억의 이름

2013.05.18 12:09

채영선 조회 수:346 추천:116

시, 기억의 이름





바구니에 가득한 자투리 실 덩어리

고운 색이 아니어도

섞여 있어 아롱진 크고 작은 뭉치들

어느 가랑비 오는 날 손을 넣으면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끄나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일렁이는 속삭임이 아닌지



나뭇잎 날리는 추억의 툇마루에서

빛바랜 이야기를 꺼내어

한 담 한 땀 다시 뜨는

먼지나는 길가 토담집 여인네 숨결처럼

어느 날 기억이 촛불처럼 꺼져갈 때

시도 사라져야 할 운명은 아닌지



다행히도 사람의 기억이 오래 지날수록 선명해져

실뭉치들은 새끼쳐 늘어나고

커져가는 바꾸니에 지쳐버린 시인은

아무도 모르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것은 아닌지






시집 '사랑한다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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