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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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머니의 선물

2016.07.25 07:48

채영선 조회 수:66

어머니의 선물

 

기온이 싸늘하게 내려가는 밤 동안 몰래 크는지, 따사로운 햇볕이 노곤한 잠을 실어오는 낮 동안 자라는지 옥잠화 사이에 자리 잡은 이름 모를 야생화의 꽃대는 두어 자가 넘게 자랐습니다. 눈 코 뜰 새 없이 종종거리며 다녀온 한국 나들이에 아직도 종아리에는 달걀보다 큰 알맹이가 손에 잡히고 밤낮이 바뀌어 보채는 아기처럼 새벽을 깨우는 등, 옆 사람에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닙니다.

 

이틀이 자나서야 나가본 뒤뜰에는 벌써 함박꽃 몽우리가 보입니다. 금낭화 주머니 안에서 은화가 하나 둘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마른 가지만 서글프던 사철 붉은 단풍나무가 겨우내 뿌리를 단단히 내린 듯 기지개를 키고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자리비운 사이에 작은 꽃 순들이 봉긋 고개를 내밀고 무대 위의 군무를 펼치고 있네요.

 

모두 땅속에서 보낸 시간이 허튼 시간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봄에는 봄의 색깔로 여름에는 여름의 색깔로 가을에는 가을의 색깔로 겨울은 겨울대로 자기만의 색깔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보여주는 자연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사계절이 있는 곳에 사는 축복을 누리게 해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장 고운 연둣빛 색깔을 고르신 어머니는 화창한 날씨도 고르신 듯 일부러 주일도 피하신 듯 남겨진 사람들을 위하여 선택을 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고백해야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병원에서 한 주간 계시며 손을 흔드시고 깊은 잠 속에서 자는 듯 평안한 임종을 하셨습니다.

 

한 손 외의 모든 부분이 마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드라와진 몸과 환하신 얼굴에 입을 맞추고 엄마 이제 날아가세요인사를 한 이후 마음을 누르던 슬픔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날아가신 것입니다. 평안과 안식의 처소로 가장 아름다운 길을 떠나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주님은 말씀하셨지요.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서른셋에 막내인 저를 낳으신 어머니가 구순이 지나 여섯이시니 막내인 저도 어르신이라고 쑥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정하신 때에 뵈옵게 될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하필이면 어머니의 이름을 내려 받았으니 어머니의 생각은 헤아리기 어렵지만 모습은 흉내라도 내야할 텐데 걱정이 됩니다.

 

훈장이셨던 할아버지께서는 한글도 사랑하신 듯 삼촌과 이모의 이름을 상기’ ‘보배’ ‘매몰이라고 지으셨다 합니다. 어머니의 함자도 소담한자로는 昭潭이니 그 뜻도 깊기 그지 없습니다. 글짓기의 소질이 탁월하여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았고 늘 전교생 앞에서 읽어주었다는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할머니는 각설 이때에로 시작하는 소설을 하나 쓰라고 하셨답니다.

 

증조할머니께서는 사람을 불러서 밤새 이야기책을 읽게 하실 만큼 소설을 좋아하셨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지요. 일찍 어머니를 여읜 어머니 형제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셨는데 그 증조할머니는 신주단지를 깨버리고 기독교로 귀의 하셨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을 통하여 공부하러 미국에 가기로 되어있던 어머니는 가장인 큰 외삼촌이 천국 가신 후 믿지 않는 집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고 홀로 믿음을 지키다가 서울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살얼음이 떠다니는 임진강을 아기를 업고 물이 깊어 건널 수 없을 때 어디서 키가 큰 사람이 다가와 업히라고 하더니 어머니와 아기를 같이 업어 건네주고 사라졌다고, 어머니는 천사를 만났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아끼는 마음으로 누구를 위해서나 중보의 기도하는 사명을 마지막 순간까지 감당하신 어머니, 천국가시기 전 주일에도 노인들을 모아놓고 오후 예배 전 기도회를 인도하셨습니다. 하루 세 시간 기도드리기로 하나님께 약속했다고 그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기도를 요청한 사람들의 명단을 놓고 하나하나 기도하시던 분이었지요.

 

언제나 환하고 웃으시던 모습, 힘이 넘치는 음성이 전화 속에서 울려오면 저는 어린 아기가 되어 사소한 일이 생겨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런 제가 어머니의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소담하기도 어렵고 아담하기도 어렵습니다. 밝은 연못이 되려면 햇볕이 비치는 곳에 맑은 물이어야 하고 언제나 잔잔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새로운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또다시 청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