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1 14:14
어스름의 기분
전희진
세탁소 앞
마가목 이파리들이 일제히 손을 흔드는 동안
그녀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시내버스를 세고 있다 가고 또 가고
가기 때문에 오는 버스들
2월이 마지막 바람을 부풀리고 있다
잔디밭 가로지르는 아이의 등에 노을이 불탄다
아이보다 덩치 큰 그림자가 아이를 어디론가 끌고 가고
먹구름과 먹구름 사이에 끼어서
수평으로 쏟아지는 노을
클리너스, 거꾸로 씌어진 알파벳을 읽으면서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찰강찰강 크리스마스 장식 방울이 금속성의 소리를 뱉어낸다
잠깐 걸려온 전화벨 소리가 2분의 기분을 먹어치우고
한 사내가 노란 깃발처럼 우뚝 서 있다
버스가 떠나도 길가에 그대로 서 있다
이미 거리는 헤드라이트 불빛과 테일게이트 빨간 불빛들로 출렁이고
그는 어둠의 마지막 증인이 되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숲처럼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돌아가는 와이셔츠와 양복들이
유리창 밖을 일제히 바라다본다
어디로 내달을지 모르는 내일을 향해 그러나
옷걸이에 전시된 기분으로
어둠을 꿰뚫어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형광물질에 반사된 자신들의 민얼굴을 읽어낼 뿐이다
⸺시집 『우울과 달빛과 나란히 눕다』(201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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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 서울 출생. 1973년 미국으로 이민. UC Santa Barbara에서 Fine Art로 졸업. FIDM에서 Fashion Design 으로 졸업. 2011년 《시와 정신》에서 시로 등단. 시집 『로사네 집의 내력』『우울과 달빛과 나란히 눕다』가 있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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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스름의 기분(퍼온 글) [1] | 정국희 | 2019.01.11 | 382 |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