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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그리움을 찾아

2004.01.26 22:36

박정순 조회 수:583 추천:49

겨울 여행 1.

북미의 큰 등뼈를 이루고 있는 겨울 산들이 어우러져 있는 록키 산맥을 지나가기로 했다. 세상에…. 계획에도 없었던 겨울산이라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희열… 록키를 보지 않고서는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더니… 언감생심, 왠 록키까지 본단 말인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기쁨을 외투속으로 꼭꼭 숨기고 우리는 비행기를 탔다.

남편의 직장에서 갑자기 떨어진 휴가 명령은 2주를 집안에서 있느니 미국의 시애틀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황금 기간인 12월은 비행기표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5명의 좌석을 같은 시간대로 맞추려니 더욱 그랬다. 하여, 차선으로 선택한 곳이 캘거리에서 렌트카를 이용하여 벤쿠버를 거쳐 타코마까지 가기로 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의 섬뜩함, 약간은 요동을 치며 귓속까지 멍해져 오는 그 아찔함이 나는 좋다. 이대로 먼 행성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니 첫 키스의 감미로움 같은 아찔함을 즐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내에서 식사가 제공되고 포도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5불을 지불해야 했다. 한잔의 포도주가 가져다주는 나른함, 예민한 촉각들이 스물스물 빠져나간 듯한 취기가 느껴지는 한잔에서 창공을 가르는 흰 구름과 어우러진 눈덮힌 산들이… 그저 하나의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비행기는 토론토 피어슨 공항을 출발한 후 약 4시간 정도 비행을 마치고 캘거리 공항에 이륙했다. 보석처럼 빛나는 불빛속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듯 비행기는 그렇게 우리를 지상에 내려 놓았다. 캘거리는 알버타주의 중심 도시로서 가깝게는 록키 산맥으로 인해 관광자원을 끌어들이고 있는 도시이다. 또 알버타주는 캐나다에서 온타리오주 다음으로 연방정부에다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주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석유 매장량으로 엄청난 수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세를 받지 않는 곳이 또 이곳이라고 한다.

벤쿠버까지 11시간 정도 주행해야하는 먼 목적지를 감안한다면 한 걸음이라도 달려가야 했다. 렌트카를 타고 떠나는 여행의 기쁨은 말할 수 없는 내 안의 희열들이 나를 깨어있게 하였다. 산다는것이 힘들고 지칠때, 아니 외롭고 피곤할때 여행은 삶의 피로를 덜어주는 회복제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9시가 넘은 캘거리의 야경은 도회적이며 작고 아담한 느낌을 가져다 줬다. 캘거리 시를 벗어나자 고속도로위는 칠흑같은 어둠속이었다.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운전하자니 남편은 내게 확인을 했다. “벤프에 가면 호텔있는것 확실해?” “있다니까요.” “호텔도 무척 많던데… 운전대를 잡지 않은 자유로움이 그저 겨울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상상은 오선지위의 음표처럼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뜨거움 피 돌음도 남편의 불안한 잠자리 걱정으로 벤프까지 강행을 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주유소가 보이는 곳에 있는 모텔의 문을 두드려야했다. 습하고 눅눅한 냄새와 함께 문을 연 인도계 할머니가 나왔다. 아무리 저렴한 가격이라고 해도 하룻밤을 자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조금 더 가다 다른 곳에서 잠자리를 정하자는 나의 말에 남편은 다시 시동을 켰고 고속도로를 진입하기 위해 돌아선 모텔 뒤에 또 다른 모텔을 발견했다.

그린 에이크즈 모텔이라고 네들란드 풍차가 돌아가는 표시가 아까 보다 조금 나을려나? 입구에 들어서니… 사무실은 작고 초라했다. 그러나 주위 불빛으로 어슴프레 보이는 경관은 그리 나쁘지 않아 다시 문을 두드렸다. “헬로.” 하고 들어선 내 목소리를 듣고 나온 주인은 동양인, 순간, “한국분이세요?” 반가움에 손이라도 땅 마주치고 싶음이다. 이 외진곳에서 모텔업을 하고 있는 한국분이 있다는것이 신기하리만치… 덕분에 특실에 저렴한 가격으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주인부부는 잠이 오지 않으면 차라도 한잔 하러 오라고 했지만 갈길이 먼 우리는… 자는것이 남는것이다. 이 여행을 위하여 우리 모두 잠을 자야할 것이므로… 처음부터 너무 긴장하여 잠을놓쳐버리면 피곤이 겹으로 쌓이게 되니… 이 모텔이 있는 곳은 캔모아(canmore, 피존 마운틴)이라고 되어있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콘도미니엄처럼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침실도 분리되어 있어 다른 식구들끼리 합숙을 해도 좋을 듯 했다.

밤하늘의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내렸다. 불빛을 벗어난 하늘가에 저리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을…누군가 저 별을 바라보며 그의 가슴속에 박혀 있는 별하나를 꺼내보는 일, 나는 지금 누구의 별이 되어 있기라도 하는것일까? 아니 내게도 늘 별로 반짝이는 시의 그림자를 꺼내야 하지 않을련지… 산속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