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y Song의 시 9편

2004.04.13 04:59

김혜령 조회 수:761 추천:28

건드리지 않은 여객의 사진

그의 머리카락은 광택이 난다.
에나멜 가죽처럼
까맣고 윤이 난다.

스물 이상은 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뺨은 통통하고
그의 얼굴은 아기처럼 매끄럽다.
비록 마마자국은
오른쪽 관자놀이 위에
쌀알 크기로
알아볼 만 하지만.
그의 입은
아몬드 모양의 무엇으로 구부러진 듯 하다.
아마, 그는 단 자두를 빨고 있나보다.

그의 양복은
솔기에 주름이 잡혀 있다.
어깨는 너무 좁고,
잘 맞지 않는다.
아마 뒷골목에 흔한
초라한 양복점에서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넥타이는
생사(生絲)의 느낌을 더한다.
그 덧붙인 터치는

이것이 심각한 사진으로 찍혀졌음을
뜻한다.
그가 난생 처음으로 찍은 중요한 사진.
그것은 그가 망해 가는 마을을
떠나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는 그것을 간직했다가
그의 손주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마치 벌써 그들을 상상하는 듯,

그의 눈은 빛난다.
어두운 방에서
검은 벨벳 천 밑에 구부린 사진사 너머,
마늘과 군밤냄새로 얼얼한
시끄럽고 소란스런 거리 너머,
그는 앞을 보고 있다.

그의 눈을 헹구고
그의 주위에 온통 녹고 있는 것은
물 위의 햇빛이다.


사진 신부

나보다도 한 살 적으셨지
스물 셋, 내 할머니가
한국을 떠났을 때.
할머니는 그냥
친정집 대문을 닫고
걸어갔을까. 그리고
부산의 양복점들을 지나
이름을 들은 지도
얼마 안 되는
섬으로,
와이아루아 사탕수수 공장
막사 바깥에
불이 켜지고
사탕수수 줄기에서 날아든
나방이들의 날개로
방안이 점점 밝아 질 때면
그녀의 사진을 불빛에 비추어 보는
남자가 기다리는
해변으로,
그녀를 태우고 갈 배가
기다리는 부두까지는
먼길이었을까?
할머니는 무얼
가져오셨을까? 그리고
마침내 열세 살이나 더 많은,
낯선 신랑 얼굴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녀는 얌전히 저고리의 명주고름과,
사내들이 사탕수수를 태우던
벌판에서 불어온 마른 바람 가득 찬
천막 같은 치마를 풀었을까?


막내 딸

하늘은 여러 해
어둡다.
내 살결은 촉촉하고
종이처럼 하얘졌고
들판의 따가운 햇살에
그슬리기 전의
엄마 살결 같다.

요즘엔, 내 눈꺼풀을 만지면
내 손은
타오를 듯 뜨거운 것을 만진 듯
움찔한다.
내 피부는, 아스피린 색깔이 되어서,
편두통으로 따끔거린다. 엄마는
내 왼편 얼굴을 마사지 해준다.
통증이 타오르는 저녁이면 더욱

오늘 아침
내가 그녀를 욕조로 밀고 갔을 때
그녀의 숨결은 거칠었고
목소리 또한 사랑으로 쉬어있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두 마리의 해마처럼
우윳빛 물에 떠 있는,
늘어지고 젖꼭지엔 수염이 나있는
자신의 커다란 젖가슴에 대해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나는 입안에 신맛을 느끼면서
그것들을 닦으며 생각했다.
여섯 명의 아이들과 노인 하나가
이 갈색 젖꼭지를 빨았던 것이다.

그녀의 몸에 점점이 뿌려진
푸른 멍 자국에 이르렀을 때
나는 거의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가 삼십 년 동안
인슐린을 찔러 넣었던 자리들.
나는 천천히 비누칠을 했고,
그녀는 눈을 감을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이랬던 것 같다. 우리 둘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목욕물을 철벅거리면서.

푹 쉬고 난 오후면
그녀는 밥과 차의 의식을 준비한다.
생강에 절인 생선조각과
내 하얀 몸을 기념하는
절인 순무 조각을 곁들여서.
우리는 익숙한 침묵 속에 먹는다.
그녀는 바로 나의 탈출을 계획하는 이 순간에도
나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녀가 따라준 차로
그녀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들 때,
창문에 드리운 천 마리 학의 커튼이
갑작스런 바람에 날아오른다.


부활절 - 와히아와 1959

1.
오후 한나절 비가 그쳤다.
아버지는 무비 카메라를
꺼내 오셨고, 몇 시간 동안 우리는
빨래집게로 헐겁게 고정시킨
그물침대 같이
빗줄기를 지구상 바로 그 곳으로부터
차단시켜주는
얇은 막 아래 모두 함께였다.

할머니는 그 참에
빨래를 걸었고,
엄마와 고모들은
푸른 물감들인 달걀들을 싣고
칠부바지에 짧은 푸들머리를 하고
줄지어 집을 나섰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문간에 몰아 두었다.
우리가 엿보려고 할 때마다
엉터리 영어로 꼬꼬댁거리면서.
할아버지 청회색 수염에는
빵 부스러기가 묻어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달걀 흰자의 막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폭풍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엄마가 질척한 마당에
달걀을 숨기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할아버지를 뿌리치고
뛰쳐나갔다.
할아버지는
뻣뻣하지만 건장한 다리로
우리를 좇아 왔다.
우리는 재빨리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보물을 찾아서,
할머니가 아침 내내
식초와 푸른 물감으로 끓여낸
삶은 달걀을 찾아서.

2.
할아버지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한국에서,
강둑까지는 한참 걸어야 했다.
재수가 좋으면
메추리 알 한둘
커다란 진주처럼
진흙 속에 빛날 때가 있었다.
그건 아무리 먹어도 진력이 나지 않았다.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에서도
한참 걸어야 했다.
거기서 그는 십팔 년 동안
마체이테이 칼로
단 줄기들을 잘라냈다. 그의 오른 팔은
몸의 다른 부위에 비해
불균형하게 커져 버렸다.
그 팔로 손주 셋을
안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쓰러뜨린 수수 줄기 하나 하나가
그를 조금 더
그 개간지로,
마침내 그가 광주리 가득한 오렌지와
바구니 가득 하늘빛 물들인 달걀을 사줄 수 있었던,
그날 그의 주위에서 자리다툼하는
손주들에게 둘러싸였던,
문간으로부터 치자꽃 울타리까지
눈에 선한 그 벌판으로
가깝게 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날 달걀 세 개를 찾아냈다.
저녁이 되면서 빗줄기가 퍼부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저녁을 건너뛰었다.
대신, 문간에 앉아서
나는 할아버지가 까서 닦아주는
달걀을 먹었다.
할아버지 무릎에 흩어진
푸르고 얇은 껍질들은
비온 뒤 바다가 해변에 주는
그런 무엇 같았다.


당신이 태어난 날

공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의 엄마가
당신의 존재를 알아챘던 밤,
그녀는 겨우 엄지손톱 만한
깜빡이는 생의 슬픔이
그녀의 몸 속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당신이 그녀의 마지막 아이라는 것을,
콩깍지가, 불구의 손처럼,
시들어 버리기 전,
마지막 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몸은 침묵하고,
알들은 성숙하고 익어,
캐비아처럼 시고 짜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당신의 존재를
알았던 밤, 작은 마을은
유칼립투스와 난초의
검푸른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느린 동그라미들을 그리며
구불구불 돌아올 길을
밝힐 달은 없었다.
그의 양복점 열쇠를
십자가처럼 목에 걸고.
그것과 그에 맞는 표정을,
이민자의 슬픈 마스크를
그는 항상 지니고 다녔다.

만약, 돌아와서
그가 도둑처럼 신발을 들고
그녀의 문을 지나치는 대신
그녀가 자는 방에 들어갔다면
그녀가 당신,
그의 셋째 아들, 다섯째 자식을 위해
느끼는 슬픔 같은 것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왼손으로 낡은 다리난간을 잡고
밤에 강을 건너면서
착륙지를 꿈꾸는 소년.
그것을 따라
탐조등 밝은 하늘에 폭탄이 터지는
벌판으로 가면서
그는 그 고르지 못한 표면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벌판에서 당신은
비행기들이 엔진소리와
천천히 집으로 돌아서는 소년을
남기고 사라진 뒤
전보로 받은 이름들의 운명을
꿈꾸었다.

그들은 당신을
후방의 가냘픈 병사라 부를 것이었다.
그곳에 남아 당신은
이미 늙어버린 아버지에게
전쟁소식을 통역해 줄 것이다.
당신이 곤충 다리만큼이나 복잡한
섬들의 이름을 지도에 표시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신문으로
파리를 쫓고 있는 당신의 아버지를
당신은 언제나 늙었다고 여길 것이다.
당신의 두 형들은
그 섬들에서
집 생각나는 검푸른 어둠 속을
기고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가 풀먹인 흰 셔츠를
그녀의 가냘픈 병사에게 입히는 동안
불공평한 사랑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매일 밤 그녀는
하얗고 깨끗한 칼라를 증기로 다렸다.
쉭쉭 다리미 소리, 천식의 압박은
당신의 심장에 구멍을 지지는 듯 하고,
당신이 학교 마당의 닭똥 위에
아픈 천사처럼 쓰러졌을 때의 벌과 같다.
아침마다 순결한 모습으로 문 앞에 돌아와 서 있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감동 받아
선생은 당신을 정오 휴식시간 동안
책상에 잡아 두었다. 당신이 그린 지도들은
당신의 손에서 자유롭게 피어났다. 당신은 당신의 출발을
무명의 넝마 속에 편안한
떼거리 아이들이 흩어지기까지
미루어 두었다.

당신의 아버지는 평온히 돌아가시겠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문간에 올라앉아서
무릎 위에 바느질감을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늦은 오후 햇살에
가죽 가방을, 마치
그로부터 그의 그림자가
크고 청명하게 솟아오를
닻인 양 뒤에 끌며
집으로 걸어올 소년을.
당신이 태어나는 날
바람은 달걀껍질 소리를 내며 분다.


연도(連禱)

그녀는 당신에게 사물들의 이름을,
낱말마다 당신과 어둠 사이를 밝힐
촛불을 주었다.
잠들기 전의 묵주신공 같은
알파벳의 연도.
그러면 벽 위의 그림자는
낯익은
얘기책 속의 코끼리 모양이 되었다.

아침이면 그녀는
남자처럼 소매를 걷어붙이고
팔을 비눗물에 담근 채 빨래를 했다.
그녀는 노래할 일이 없었다.
그녀가 한 일들은 모두
당신,
그녀의 마지막 이뤄진 소망 때문이었다.
자정의 탄생,
그녀의 숨결만으로 태어난 소년.

당신은 그녀의 민첩한 동작의 중심,
문간과 나무 사이의 점,
가장 작은 색깔의 주장이었다.
당신의 작은 몸체는, 해시계처럼
멀고, 그림자 없이 온순한 정오였다.
풀먹인 침묵의 하얀 셔츠 속에서
당신은 강을 그리워했다.
지팡이와 개를 가진 소년.

도랑의 초록물 옆으로
키 큰 풀들은 하얀 밀랍꽃들을 가리고 있었다.
밤은 서늘하고 그 냄새로 가득했다.
밀의 약속이었던
빵 부스러기를 뿌리며
당신이 바람을 시험하듯 몸을 밖으로 기울인 밤들.
하지만 바람은 언제나 적당하지 않았다.

도랑에
딱딱한 베개를 베고 누워서
그녀가 일하는 소리를 듣는 것,
그녀가 밤에 꿰매놓는 타오르는 구멍,
그녀 창의 고집스런 빛을 보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신이 바로 그녀가 앤드류라 부르는
잘 생기고 진실한,
그녀가 저녁때면 집으로 부르는,
과일과 꽃의 향연에
신발을 닦아주는 그 소년이었다.
사진에서 그녀 옆에
천사의 날개 칼라를 달고,
손으로는 그녀의 소매를 잡고
등 곧은 의자 옆에 매달려
서 있는 이.

죄는 침묵의 후광,
당신이 입은 하얗고 깨끗한 셔츠.

당신이 바로 그녀 옆에 선 소년,
결코 떠나지 않을 사람이다.


창과 들

섬에는 말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수수밭의 붉은 흙길 뿐.
당신 아버지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끝난 저녁이면
아버지는 신발에 광을 냈다.
여자는 함께 춤추며 돌았던
물방울무늬 옷의 처녀가 아니었다.
붉은 흙이나 수수밭이 아닌 것은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냘픈 어깨,
조개껍질로 소리 없이 불 밝힌
주위의 산호초 마냥 먼
분홍빛 호텔의 불빛들

삼십 년은 내가 되돌아가기에는
긴 시간이다.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채, 조용히
지하실에서 아껴두었던 그녀의 입맞춤을 본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당신은 별 아래 멈춰 섰다.
바다는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의미 있는 것은 차라리 하늘,
푸른 들에 난
끝나지 않는 길이었다.

당신의 아버지는 가만히
어땠느냐고 물었다.
당신은 깨끗한 손을,
식탁보 위 날개의 무언극을 보여줬다.
버려진 들판에서
스스로 비행을 배웠던
밤들의 이야기.
그는 눈을 들었다가
지그시 내렸다.
자신을 아버지라 부를 처녀를 믿지 못한 채
황량한 접시 위 당신의 처녀비행을 믿지 못한 채
그는 그대로 있었다.

당신은 수십 년을 말한다.
신발에 광을 내면서,
마치 바로 어제 당신이
젊은 신부를 안고 가족들의 문으로 들어선 것 같이.
그녀의 기억은 다르다.
붉은 흙과 구름
그리고 그녀를 향해 절룩거리며 달려오던 붉은 개.
그녀가 손을 흔들었지만 당신은 이미 길 아래에서
제멋대로 날리는 먼지의 베일을 잣고 있었다.
그때는 나무 사이로, 네 시였다.
수수줄기 사이로 달아오른 강이 아른아른 빛났다.

나는 그 뒤섞인 축복의 일부다.
지친 어깨 위에 뿌려진
조금의 소금.
당신이 만약 뒷거울을 봤다면
그것을 보았을 지 모른다. 하얀 깃발처럼
흔드는 흰 장갑 낀 손.
그녀가 천천히 집으로 돌아선 날
당신은 빌린 비행기로 돌아갔다.
거센 바람 속에 세 번 급강하하면서.
빨래가 펄럭였다.
닭들은 닭장으로 꼬꼬댁거리며 달려갔다.
그녀는 검은 옷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
아버지라 부르며 문을 열었다.
그는 의자 깊숙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모자의 핀을 뽑고, 하얀 꽃잎을 가르듯
장갑을 벗었다.
무릎 위의 치자꽃,
각각 그녀가 당신에게 줄 딸들을 위한
쌍둥이 꽃.
참을성 있는 하나와 유순한 또 하나
창과 들 옆에
이미 갈라진 자아.


낙원의 새들

아저씨들은 부엌의자들을 나르고 있다.
할머니는 욕조 속에 배추를 밤새 담가 두고,
소금에 절인 잎들을
마늘과 고추에 절여서
커다란 항아리에 일주일 분의 김치를 담가
며느리를 친정에 보낼 것이다.

그들은 그림의 오후
햇빛 속으로 의자를 나른다.
나는 이 그림을 평생 보아 왔다.
마치 이 영상들이 떠도는 유리표면이
고요한 수면에 비친 하늘 조각,
연금술에 홀린 어린애 눈에 비친
햇살의 화현,
할머니 장롱의 초록색
병에 비친 음악,
비누같이 부드러운 손잡이가 달린 솔로 구부린
긴 수염 같은 하아프 현 머리카락을
반사하듯.


실패는 돈처럼 푸르지 않았다.
이십대 남자들의 벼락부자 꿈
여자들이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저녁이면
내 친가의 남자들이 주고받던 말들,
그리고 나는
사진사가
유리 위의 입김처럼 쉽게 사라지는
행복의 인상을 인화하기 위해
스튜디오로 돌아가듯
그 그림 속을 헤매 들어갔다.

실패는 회색이었다.
가는 지렁이 모양의 재로 타는
켄트나 바이스로이 담배의 진한 연기처럼.
그것은 식탁 위의 웃음소리처럼,
할머니가 프라이팬에 깨뜨려
아들들의 밥그릇마다 담아내는 완벽한 노른자의
달걀 속에 지글거리는
허풍스런 형제들의 서열처럼
비웃을 만한 것이었다.

내가 수년 동안 보고들은 것은
자신들의 미완의 현대판을 향해 움직이는 인물들,
무분별하게 현재의 모양으로 합류하는 모습이었다.
실패와 그 잔재가 침식하는
밝게 윤을 낸 표면,
암처럼 쉬 쉬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서 주무시고
텔레비전은 어항처럼 조용히 깜빡였다.

사진이 찍히기 몇 분 전
진짜 동작들이 모였다--
아줌마들이 파마머리를 실핀으로 꽂아 넘기려고
문간에 멈춰 선다. 실핀은
은행알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크게 열린다.
멋 내는 일엔 관심 없는 아줌마는
아이를 들어 안고
남편이 햇빛 속으로 날라 온
의자에 앉기 전
돌아서서 블라우스를 집어넣고
나비 모양의 어깨를
마치 책장 사이의 이파리처럼
그 순간에 찍는다.

광기는 이 순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미 그녀의 슬픈 눈 속에 들어 있다.
수년의 세월이 그녀를 어두운 물처럼 기다리고 있고
그녀의 눈은 그 물 속에 가라앉는 돌멩이처럼 미끄러진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집의
커튼을 내릴 것이다.
나는 우리의 과거를 지나
우리의 문간과
나의 사촌들이 풀밭에서 재주넘기를 하는
정돈된 낙원의 새 마당을 지나가는
사진사에게 손을 흔든다.
유칼립투스 나무들은 갈라지는 길목에
마치 얘기책의 페이지처럼
구름과 연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미 그녀가 구구 하는 소리와
창에서 돌아오라고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물가에 살기

그는 거의 평생을
물가에서 살았기에
그에게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그의 몸은 부드러운 청회색 털로 덮여
털북숭이가 되었다.
그의 맨발은 풀에 뿌리를 박고
발톱은 칠흑의 달팽이 껍질로 두꺼워진 듯 했다.
그의 정원의자에서, 그는
선사시대의 매머드 같이 보였다.

그가 죽기 전날
우리는 마당에서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맑은 날이 저물고 있었고
마치 파도가 바로 해변에서 끓고 있는 듯
우리는 물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 사이로 소금이 타는 듯한,
무언가 나른한 향신료 냄새가 났다.
라디오가 켜져 있었고
다이얼은 두 개의 채널 사이에 엉성하게 놓여 있었다.
그는 마치 듣는 순간
알아들을 메시지를
해독하려고 기다리는 듯
잡음을 듣고 있었다.
그의 귓속의 작은 털들이, 벌레처럼,
미세한 음악을 새기고 있었다.
오른 손에는
그가 쉬다가 가끔
지휘봉처럼 흔드는
파리채가 들려 있었다.
그 순간들은
마치 적도의 여름빛처럼
길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몸을 꼬았다. 모기들은
이파리 밑으로 쉬러 갔다.

가만히 저 만치서,
그는 거대한 신비를 담고 있었다.
그의 굳은 눈은
불로 뒤바뀐 세상을 보았다--
타는 나무들 옆에서
어린 소년에게 찢은 고기조각을 주려고
몸을 굽힌 병사들.
그의 아들이 그를 살며시 깨워
달에서 재주넘는 우주인들을 보게 했던 밤.
그리고 그의 홍채 속 푸른 점에는
문진(文鎭) 속에 쏟아지는 눈처럼
그가 젊은 눈으로
가혹한 인생 앞에 절을 하던
배에 가득한 신부들을 훑어보던 날이 들어 있다.
그녀들은 일꾼들의 슬픈 손에
오렌지꽃처럼 잡힌
자신들의 얼굴을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날 모인 우리들은
그 순간의 회한으로부터 왔다.
할머니는 자신의 얼굴이
자신을 내주는 마지막임을 인정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피곤했다.
그는 자신의 맞지 않는 옷과 빌린 신발에
그녀가 눈길을 떨군 날부터
침묵 속에 여행해 왔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모든 것을 내주었다.
그는 너무 오래 침묵 속에 여행했기에
그가 마침내 돌아보고
빨간 얼굴의 막내를 안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한다" 라고 말했을 때
그는 라디오를 끄고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돌멩이를 혀 위에 얹고 다녔기에
목이 말라서
물을 향해 몸을 뻗쳤다.
나는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 입에 컵을 가져가는 것을,
어떻게 아들의 손이 떨리는가를 보았다.
아이들은 잠을 잤고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 아버지는
따뜻한 바람이 그를 빠져나간 한참 후까지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 각자의 속에서
바다 냄새가 흘러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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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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