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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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칼럼 보관

2007.03.21 08:13

오연희 조회 수:208 추천:50

아침편지

매일아침 두통의 이 메일을 받는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와 ‘사색의 향기’이다.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받기 시작했는데 혼자보기가 아까워 내가 좋아하는 분들을 추천하기도 한다. 몇 해 읽다 보니 짧은 시간투자에 비해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져 즐거운 마음으로 크릭을 한다. 고르고 골라 뽑은 글들이라 대부분 감동과 기쁨과 희망을 안겨 준다.
일주일에 한번씩 딸과 아들에게 이 메일을 보내고 있는데 더러 아침편지의 글을 인용한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어 너희에게 소개한다’ 로 운을 뗀 후 평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슬쩍 넣는다. 하지만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너무 길거나 훈계성 글은 끝까지 읽지 않는 것 같다.
엄마가 쓴 시를 보내기도 하는데 낯선 단어가 나오면 앞뒤 문장의 흐름을 보고 감을 잡는다고 한다.  “엄마 시 좋아요” 별생각 없이 뱉은 아이의 한마디에 종일 기분이 좋다. 가끔 영시를 한글로 번역한 것과 함께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평소 내가 좋아하던 칼릴지브란의 ‘당신의 아이들은’이라는 시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온 것이 있길래 얼른 애들한테 보냈다. 반응이 무지 빨랐다. 영어로 된 시를 읽으니 역시 이해가 빠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시의 내용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 시의 전문이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을 거쳐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육체의 집은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의 집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은 그 집을
결코, 꿈속에서도 찾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삶이란 뒷걸음쳐 가는 법이 없으며,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중에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가짐을 위해서는 좋은 시 이지만 아무래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야호!”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딸이 어른이나 된 것처럼 굴어 기가 찼다. 친구에게 사연을 전했더니 ‘글쎄 애들이 그렇다니까.’ 하면서 깔깔 웃는다.
나의 한 이웃은 대학 다니는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지갑에 넣고 다니며 기회만 있으면 슬며시 꺼낸다. 미국서 태어나 성장한 자녀가 또박또박 한글로 쓴 편지이다. 단어 받침이 하도 우스워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인지 한참 헤매야 하지만 아이 엄마는 술술 잘도 읽는다. 세상에 저렇게 행복한 표정이 있을까. 저 뿌듯한 엄마의 심정 엄마들은 다 안다. 편지 쓰느라 끙끙댔을 기특한 그 댁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명문대학을 다닌다는 사실보다 더 부러운 일이다.
  ‘나 편지 받았어’ 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늘 좋은 이야기만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하는 것보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이 메일로 받았거나 우편으로 받았거나 편지는 오래 남는다. 부모님께 혹은 자녀에게 받은 편지를 평생 보물처럼 간직하는 사람도 있다. 아쉽게도 나는 주로 보내는 편이지만, 편지를 주고 받는 부모 자녀간은 아름답다.
최근에 받은 ‘아침편지’중에 눈을 지긋이 감고 싶은 글이 하나 있어 아이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제목은 <행복이란>이다

행복이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나태주의 '행복' 중에서–

아이들이 이런 행복을 이해나 할까? 앞뒤 생각 없이 후딱 보내놓고 ‘아차’ 싶은 일이 더러 있어 생각 좀 해봐야겠다.

ohyeonh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