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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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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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05:48

이민의 삶이 어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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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웃으로 살았던 은혜네 가족이 미국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연락을 해 왔다. 넓고 넓은 미국 땅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우리 가족이 사는 서부 쪽을 택했다고 한다. 내 가족이 2년 동안 살았던 영국, 그곳을 떠나 온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다시 만난다는 것이 꿈만 같아 이만저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니언을 먼저 돈 뒤 LA에는 사흘 동안 머물며 명소를 둘러보겠다고 했다.

당연히 내 집에 머물 줄 알고 방은 충분하니 염려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미 우리 집 근처에 호텔을 예약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더니 너무도 빡빡한 이민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폐를 끼칠 수 없다며 나보다 더 펄펄 뛴다. ‘빡빡한 이민의 삶’이라는 말에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되었다. 영국에 정착하기까지의 그들의 삶을 가늠케 하는 말이었다. 정말 은혜네 부부의 만남부터 최근의 삶에 이르기까지 글로 쓰자면 몇 권짜리 소설은 족히 될 것이다.

은혜 아빠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선교하는 선교사로 영국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신학교 한국인 첫 유학생인 연상의 은혜 엄마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다. 은혜 아빠는 그곳에서 경영학 박사까지 공부하고 영국산업개발청 공무원으로 20여 년을 보내다가 지금은 CCTV 카메라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해마다 50% 이상씩 비즈니스가 성장해갔다며 비즈니스에서 나오는 수익금 중 매달 2,500파운드(미국 돈 약 4,000달러)를 선교비로 보내고 있다며 하나님이 그곳에 정착하게 하신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리 가족이 그곳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은혜 아빠는 한국교회가 없는 그 지역의 한국 사람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친다. 틈틈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 시험에 부부가 나란히 합격하여 영국인을 상대로 거의 무료로 침을 놔주고 약도 지어주기도 한다. 그 일도 하나님의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숨이 벅차게 뛰어왔던 지난 모든 나날이 온통 간증의 순간들이었다고 고백했다.

아무튼, 은혜네는 호텔에 가기로 결정했다며 출발할 때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호텔에서 잤는가? 나도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서로 고집만 피우다가는 일이 될 것 같지 않아 일단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가 잘 알고 있으니 싸고도 안전한 곳을 예약하겠으니 그곳은 해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 메일을 띄웠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뉘앙스를 슬쩍 풍겼더니 바짝 긴장하는 것 같았다. 여차여차 이 메일이 몇 번 오고 가고 싸고도 안전한 내 집에서 며칠 지내게 되었다. 온종일 디즈니랜드를 구경하고 돌아온 은혜네 가족은 이벤트 하나하나 너무도 충실했다며 대만족이다. 달콤한 복숭아, 얼린 야쿠르트, 삶은 옥수수 등등…챙겨준 간식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다음날은 나의 아들이 짬을 내 UCLA와 게티박물관 그리고 코리아타운을 구경 시켜 드렸다. 레돈도비치에 가서 게도 뜯고 내 집에서 LA갈비 바비큐도 해먹고 코리아타운에서 순댓국도 사 먹었다.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 별 볼 일 없는 곳이라고 말해도 그래도 꼭 보고 싶다고 청해서 길바닥에 유명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진 할리우드 길을 따라 걸었다. 아이들은 스타들의 이름을 부르며 신나게 떠들어 댔다.

은혜네 가족은 정말 꿈같이 왔다가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예상치 못할 만큼 컸다. 생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의미를 두는 그들의 신실함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무엇보다 영국인들과 30여 년을 이웃으로 살았어도 결국은 외국인으로 남더라, 던 은혜 엄마의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LA사는 한국 사람들은 그 말이 그렇게 실감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영국 분위기를 조금 아는 나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영국 시민권자가 되고 공무원이 되고 자녀들이 의사의 길을 공부하지만, 영국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꼭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은 영국처럼 그렇게 그렇지는 않아요.’라고 말하면서도 은혜 엄마의 말이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지 모르겠다. 이민자의 삶이 좀 쓸쓸하고 아프고, 그게 그런 것인 모양이다.


-2012년 해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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