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마 해변에서 웃지못할 헤푸닝

2010.03.02 09:10

김수영 조회 수:1081 추천: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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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마 해변에서 웃지 못할 헤푸닝          


   건강한 사람에게는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학교에서 인생 공부를 하게 되어 보다 우리의 삶이 윤택하게 되고 풍요롭게 된다. 풀로리다 마이애미에 사는 조카 내외가 동생과 나를 초청해서 여행 스케줄을 다 짜 놓았다. 나는 마이애미는 처음 가기 때문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조카 가족을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도 잠시 뒤로한 채 도착하자마자 그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바하마로 가는 유람선을 탔다.    

   밤에 시차 관계로 잠을 못 자서 배당받은 캐빈에 가서 눈을 좀 부치고 일어나 점심을 끝내고 6층 갑판 위로 올라가 의자에 몸을 눕히고 수평선만 보이는 끝없이 광활한 검푸른 카리비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생동감이 넘치는 파도가 햇빛에 반사되어 온통 은빛으로 출렁일 때 아름다운 물고기의 비늘처럼 겹겹이 무늬 져오는 물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형언키 어려웠다. 바다가 숨을 쉴 때  파도가 장단 맞추어 움직이는 물결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와락 달려들어 꿈틀거리며 박동하는 바다의 심장을 움켜쥐고 싶었다. 그만큼 바다는 살아서 약동하고  있다. 율동으로 노래를 자아낸다. 라인 강 강변에 인어의 로렐라이 노래가  멀리서 은은히 들려오는 듯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들을 수 없는 내 특유의 소라 귀로 때로는 조용한 풀룻의 소리로, 바이올린의 소리로, 첼로의 소리로, 교향곡으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로 들려 오면서 연주자로서 바다는 관람객인 나를 자유자재로 마음을 이끌어 갔다.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환상에서 깨어나듯 일어나 갑판을 내려갔다. 바하마섬에 거의 도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로 시내 관광버스로 갈아타고 아름다운 타이 노 해변(Taino Beach)으로 안내되어 그곳에 여장을 풀고 라운지에서 바하마 마마로 불리는 과일 펀치를 한 잔씩 나눠 마시게 되었다. 바하마 섬에서 나는 과일로 만든 펀치라 맛이 별미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맛을 내었다.    

   다른 일행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기 시작했지만 동생과 나는 짚으로 된 비치 파라솔밑 의자에 몸을 눕히고 좀 쉬기로 했다. 너무나 바닷물이 청정해 땀이 묻은 내 몸을 깨끗한 바닷물에 담그기는 미안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눈앞에 펼쳐진 공해 없는 아름다운 바다. 갈매기들은 하늘이 좁다고 활개를 치며 날아다니고 바다는 푸르다 못해 에메랄드 빛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지상천국이 따로  없고 이곳이 바로 지상천국이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어질어질 하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온몸이 발갛게 되면서 군대군데 반점이 생기더니 가렵기 시작하는데 걷잡을 수가 없었다. 가려움의 강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졌다. 동생도 나와 똑같은 증세로 숨을 헐떡이며 거꾸로 누워 공중으로 발을 추어 올리고 머리를 땅 쪽으로처박고 사력을 다해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누가 보았으면 포복절도할 장면이었을 것이다.    

   점심을 잘못 먹어 식중독이 걸렸나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이러다가 죽는것이 아니냐고 걱정이 되는 순간 동생과 둘이서 이유를 알아내고 마음을 가라 앉히며 증세가 호전될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 두어시간 지났을때 가려움이 가라 앉으면서 심장의 박동수도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과일 펀치에 술을 희석 시킨 것을 전혀  모르고 마셨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평생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터라 상황은 한층 심각했던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해프닝에 당황 했지만 정말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위로 된 피어에 가서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즉흥적으로 시 한 편을 지어 읊으면서 놀랜 가슴을 쓸어내렸다. 까마득한 옛날 어머님께서 잔칫날 만들어 놓으신 막걸리 술을 몰래 한 사발 떠다가 설탕을 타서 취할 줄 모르고 단술처럼 훌훌 마셨다가 가슴이 뛰어 죽을 뻔 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체질이 술 하고는 인연이 멀다는 것 거듭 깨달으면서 아련한 추억에 새삼보고싶은 어머님 얼굴이 달처럼 환하게 떠 올라 눈시울을 적셨다. 수평선 넘어 그리운 고향이 아물거렸다. 석양에 비취인 고운 노을 속에 아름다운 추억들이 빨갛게 감처럼 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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