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오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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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봄기운이 돌자 다시 분주해지는 뒷정원을 보면서 좁은 공간안에 함께사는 몇몇 고정식구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영어이름의 Wood pigeon에 대한 얘기이다. 한국에서는 숲비둘기가 아닌 산비둘기라고 부르지만 사실 한국에서 사는동안 City pigeon/ 도시비둘기 말고는 산비둘기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런 산비둘기가 몇십년동안 우리집 뒷정원의 가장 친근한 고정식구가 된것이다. 지금도 그들이 울때마다 국민학교때 배운 ‘산비둘기 구구구 숲속에서 구구구’ 노래를 연상하곤 함께 구구구를 나눈다. 어쨋든 날렵하고 빠릿빠릿하게 도는 도시비둘기보다는, 그저 푸근하게 느껴지는 누님처럼, 두툼하고 느긋하게 뒷뚱뒷뚱 걷는 모습을 가까이 접하는 순간부터 훅 반해버렸다. 십여년전, 뒷정원으로 이어지는 라운지밖에 파티오를 만들어 여름이면 나가 앉아서 쉬는게 낙이되었다. 문제는 산비둘기 가족이 너무도 자주 올라와 지저분을 떠는 바람에 그다음 부터 파티오선으로 올라오는 그들을 즉시 쫓아버렸다. 여러번 시도를 하니까 그들도 눈치채고 더이상 올라오지 못하고 내눈치만 살피며 파티오선밖에서만 빙빙돌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그룹에서 조금 날씬하게 보이는 한마리가 뒤뚱뒤뚱하며 거침없이 파티오로 돌진해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나는 어라, 어디감히, 쉬쉬하고 계속 쫓았지만 그놈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티오에 올라와 여기저기 탐색하더니 내 발곁에 다가와 앉아 쉬질 않는가. 나는 이렇게 당당한 기세로 올라와 내곁에 머무르는 모습에 두가지 생각을 했다. 한 미물이 순전이 나를 믿고 찾아와 곁에 앉는데 대한 감동과 privilege를 느끼면서도 혹시 조금 들떨어진 half shilling인가 하는… 그러면서 가만이 내려다보니 그놈의 발(claw)가락 하나가 꼬부라져 있지 않는가. 그순간 쫓아내기 보다는 불구자에대한 동정감이 앞서 땅콩한줌을 가져다 내 발앞에 살금하게 놓았다. 그랬더니 조금도 주저없이 그 땅콩을 다 쪼아먹고 돌아가는것이었다. 그다음 알아챈것은 그놈이 암놈이라는것. 몸매가 조금 작다 했더니 여러마리가 자주달려들어 mating하려는것을 보고 암놈인지를 금방 가늠했다. 그래서 꼬부라진 발가락을 토대로Clawy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Clawy가 여성이름 Chloe와 같은 발음이어서 안성맞춤이었고 그 후로는 그놈이 아니라 Lady Clawy로 승격시켜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소개를 시켰다. 아울러 Clawy가 half shilling이 아닌것을 확실히 안것은 발가락 하나가 꼬불어졌을망정 숫놈들에게 인기짱이라는 것이다. 동물들도 안다. 똑똑하고 날씬한 Lady급의 Clawy를 파트너로 삼으려고 덤비는것이다. 아무튼 그때부터 매일처럼 찾아오는 Clawy를 땅콩으로 대접했다. 그런데 그이후 이 땅콩대접을 지켜봤던 동료 비둘기들이 땅콩에 샘을 내어 가끔 들어와 날치기를 하려하면 Clawy는 가차없이 그들에게 대항해 쫓아 보내곤 했다. half shilling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몸매짱에다 그런 여장부의 기질이 가득한 Lady Clawy였다. 어쨋든 Lady Clawy와의 첫 랑데뷰이후로 땅콩을 먹으며 내주위에서 맴도는것이 하루의 ritual 처럼 되었던게 거이 10년에 이르게된것이다. 하두 오래된 기분에 도대체 산비둘기들이 얼마나 사는가 wikipedia 검색을 해보니 보통 3-4년 살지만 좋은 환경에서는 10년을 넘게도 사는것으로 나타났다. 아하, 나의 끊임없는 땅콩대접과 자신의 여장부 기질로 오래사는것으로 확신했다. 한번은 집에 찾아온 노인 정원사가 내앞에 천연덕 스럽게 앉아서 땅콩을 먹는 Clawy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금까지 저렇게 길들여진 Wood pigeon은 처음본다고 했다. 나는 내가 Clawy를 길들인것이 아니라 Clawy가 나를 길들인것이라고 되받았다.

10년쯤 지난후 작년봄 Clawy가 한동안 보이지 않아 염려가되어 지나다니는 Wood pigeon들의 발가락을 살펴보고 또 살펴봤다. 그런데 어느순간 Lady Clawy가 엄마가 되어 먹이를 조르며 입을 벌리고 재촉하는 새끼를 데리고 열심이 파티오로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그렇치 역시나... 그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도록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그새끼조차 엄마를 닮아서 당당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고 역시나 모전자/여전 이구나하고 혀를 찼다. 물론 그새끼의 성별은 분별할수가 없었고… 그것이 Clawy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직도 파티오 바깥선을 도는 Wood pigeon 가족들이 있지만 그후로 Clawy의 종적은 사라졌다. Clawy는 갔어도 그중에 아무도 Clawy와 같은 개성으로 파티오를 올라오는 놈은 없고 이제는 Clawy 이전의 시간처럼 멀리서 뒤뚱뒤뚱 몰려다니는 Wood pigeon 가족을 바라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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