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8.09.26 11:28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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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문학 강의를 위해 한국에서 오신 한 교수님을 공항에서 모시고 오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어떻게 그런 미친넘이 미국 같은 나라의 대통령이 된 건지, 라며 유감을 표하셨다. 노골적인 표현에 조금 놀랐지만, 그 후 매스컴을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보며 그 표현이 적절한 단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의 기질이 과격하다는 생각이 든다.

옥죄는 이민정책을 보며 이민자인 우리가 느끼는 위압감을 비롯해 이런저런 쇼킹한 뉴스들 때문인지, 눈만 뜨면 가슴 덜컥 내려앉는 새로운 발표가 터져 나올 것 같다. 업적도 많이 있을 터인데 거친 행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여지가 남지만, 그의 편에 서서 소리를 내는 사람은 드물어 보인다.

그런데 얼마 전 공원 산책하다가 만난 지인 한 분이 열띤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분도 계시네,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을 기회는 없었지만, 확신에 찬 모습에 새로운 바람이 휙 지나는 것 같았다.


다분히 감정적인 느낌이 드는 뭉뚱그려가 아니라 조목조목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글은 어떨까. 언제부턴가 정치에 까막눈인 나에게 주류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얘기를 다른 각도에서 분석한 원용석 기자의 '폴리 토크'가 눈길을 붙잡는다.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 때문인지 처음 기사를 대했을 때는 이 사람 뭐야, 했다. 이번에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낙제점을 주는 주류언론을 비판하는 시선이 날카롭다. 대부분의 사람이 A라고 말할 때 B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예리한 분석, 옳고 그르고를 떠나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신문이 고맙게 여겨진다.


정치뿐 아니라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 내리는 판단이라야 후회가 적다. 우리의 일상 속의 인간관계도 한쪽 이야기만 듣고 성급히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누군가에 관한 나쁜 말만 듣다 보면 재고의 여지 없이 그 사람의 이미지가 굳어져 버릴 수 있다. 친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남 흉보는 습성이 심하게 발달한 사람의 말은 감안해서 듣고 흉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는 것도 방법이다. 혹여 내가 흉의 대상이라면 억울한 일일 테지, 라는 역지사지의 너그러운 마음을 품어보는 것도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도 모든 사람에게 배척받는 사람도 드문 것 같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해 힘을 얻고 싫어하는 사람으로 인해 겸손을 배운다고 했던가. 하지만 배척받는 감정은 아무래도 슬프다. 그 사람 형편없어 할 때 그게 아니거든, 손 번쩍 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위축된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확신과 소신이 필요한 정치적 사안이 아니더라도 손드는 그 누군가가 되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손들어 주고 싶은 그런 사랑을 품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누군가를 갈구한다. 애절한 마음으로 내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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