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2025.05.17 12:36

번개탄

조회 수 60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번개탄 / 이월란 

 

 

불을 잃어버린 엄마는 불에 덴 듯 뛰어다녔다

발등에 떨어진 차가운 알을 품는 남극 펭귄처럼

곧추선 다리 사이로 불씨를 낳으면

몸에서 꺼낸 것이 모두 화근이 되었음에도

 

어둠을 꿰뚫어 보는 그녀는 밤눈 어두운 야행성

왜 춥고 배고픈 밤에만 꺼졌을까

영하의 밤이 불의 기원이 되기까지

깜빡이며 눈 맞춘 수천 개의 구멍은

사라지지 못해 살아지던 여백

 

어둠과 재와 불꽃의 삼위일체여서

밀린 구석에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떠도는 마음은

어느 곳에서 타올라도 이상하지 않아

 

연탄가스와 김칫국물을 연달아 마신 딸들이 살아났을 때

토해낸 것은 불꽃 대신 살아난 불의 여신

 

불 눈 맞추느라 어린 눈 지나쳐버린 미혹한 시절

젖은 운동화는 아궁이가 키우고

힘주면 바스러질까 살금살금 어둠 속으로 들어가던 여자

먹구름 사이 섬광처럼 타오른 것은

처음과 마지막 사이에 끼워둔 점화의 순간

 

피우지 않아도 재가 되어버린

화상 자국 위에는 살이 붙지 않는다

어둠이 오면 내가 탈까

얼어붙은 내리막길에서도 타다 남는 엄마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97 제4시집 시집 해설_김학중 시인 file 이월란 2025.05.17 639
1696 제4시집 걸어가는 새 이월란 2025.05.17 759
1695 제4시집 모래와 안개의 집 이월란 2025.05.17 642
1694 제4시집 모압 가는 길 이월란 2025.05.17 740
1693 제4시집 시간을 베끼다 이월란 2025.05.17 619
1692 제4시집 안개와 아버지 이월란 2025.05.17 749
1691 제4시집 경계 이월란 2025.05.17 703
1690 제4시집 바늘을 잃어버렸다 이월란 2025.05.17 631
1689 제4시집 파자마 데이 이월란 2025.05.17 732
1688 제4시집 섬머 타임 이월란 2025.05.17 614
1687 제4시집 나는 로봇이 아닙니까 이월란 2025.05.17 744
1686 제4시집 엔터로프 아일랜드 이월란 2025.05.17 746
1685 제4시집 Re: 꿈 이월란 2025.05.17 745
» 제4시집 번개탄 이월란 2025.05.17 601
1683 제4시집 사슴이 온다 이월란 2025.05.17 599
1682 제4시집 사라진 여자 이월란 2025.05.17 682
1681 제4시집 시크릿 가든 이월란 2025.05.17 610
1680 제4시집 무선시대 이월란 2025.05.17 593
1679 제4시집 마음 레시피 이월란 2025.05.17 696
1678 제4시집 생각의 최고속도 이월란 2025.05.17 57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