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수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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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시평설-홍승주 시인 극작가

2022.11.28 10:55

박복수 조회 수:18

詩評說 

 

박복수 詩學이 보여주는 사랑, 믿음, 소망의 꼭지점 

-해탈과 憐憫, 기여와 봉사 그 존재의 미학을 중심으로- 

 

                                                     홍승주 

                                                 -시인. 극작가- 

 

1 . 박복수 시인, 그는 누구인가. 

 

진시왕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멀리 조선에까지 신하를 보냈지만 그들은 종내 뿌릴 찾지 못 해 고국으로 돌아가 진시왕을 대할 면목을 잃고 객지에서 분사했다. 

평자에게 왜 곡절없이 이 고사가 떠 오르는가. 

여기 불로초 없이 천연의 태깔로 희수에서 傘壽로 가는 모진 세파에도 물들지 않고 시종일관 고운 자태를 처음처럼 유지하는 신비와 기적의 여인이 있다. 

그녀의 재담하는 유모러스한 제스처, 입을 가리고 고른 하얀 이로 화사하게 웃는 모습, 얼굴에 주름 하나, 반점 하나 없는 고운 살갗의 발군의 용모는 아직도 청정한 영락없는 불로의 숙녀로 자타 공히 우리를 기쁘고 들뜨게 한다. 

그녀가 풍기는 향기와 발랄함, 유모러스한 위트와 세련된 사교, 재색이 겸비한 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녀의 가족은 사랑의 명가이다. 사랑을 연습하고 사랑을 연창하고 사랑으로 단합하고 사랑으로 반복한다. 사랑은 그녀에게 유일한 영혼의 원천이요 반면 교사이다. 

하기 쉬운 듯 하면서도 지극히 하기 어려운 말, 그것이 곧 사랑해요. 라는 말이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에게 수줍고 설고 체면 차리기 그리고 쑥수러움으로 매우 어섹하고 난삽한 표현 중의 하나이다. 

그녀의 가족에는 선대부터 이 말이 일상어처럼 몸에 배고 체질화된 다반사의 일이다. 

그녀의 시는 이 사랑의 존재 의식에서부터 싹이 트고 가지를 치고 꽃 피우며 자란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삼위가 일체가 되면서 마침내 자유와 평화의 꼭지점을 이룬다. 

삶에 대한 해탈, 시에 대한 절질한 욕구와 혼불, 종교에 대한 경건한 신앙과 歸依가 적절하게 하모니 되면서 오늘의 제미 시단의 원로시인으로 각광되고 지성인. 봉사인, 사회인으로  원만한 인간 관계를 조성한다. 

평자가 이러한 엘리트 재원,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언제일까. 

수년 전 어떤 시 모임에서 그녀의 시를 대하는 데서 강렬한 인상을 받음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시에서 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이란 벽력 같은 철학 이슈를 들고 나와 평자를 당황하게 했지만 그 개념이 수년래 골수에 배긴 詩的 과제와 모티브로 남아 맴돌다 근자에 

와서 그의 근작 시 수 편을 통하여 평설의 기회를 얻어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2 .인간의 숙명과 허무의 경계 너머 유열과 체관의 세계 

 

구름이 지루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바닷물이 슬퍼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대지가 답답해 몸을 틀어 

파괴와 생성을 

일삼는 게 아니다 

걸으며 비움을 배우고 

오늘의 나의 과제는 

피할 수 없다 할지라도 

짊어진 보따리 따위 

한 발 한 발 다 버리며 

걷고 또 걸으면 

안 밖의 찌꺼기 

소금되어 떠나고 

시원한 바랍소리 들리니 

나는 오늘도 걷는다. 

                                     -보행 전문- 

 

이 시인은 총명하개 터득한 눈으로 운명과 대치하고 선다. 

부정과 긍정의 부단한 갈등 사이에서 순리와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모순에서 벗어난다. 

고요한 체관이요, 득도한 고승의 경지에 이른다. 

성철 스님이 일찍이 달파한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삼라만상이 일정한 질서와 규모 내지 법칙에 의해 운영되는 평범한 이치와 순환을 깨닫는다.  

구르는 돌은 멈출 데가 와야 멈추고 오며 가는 변하는 단순한 제행무상의 진리와 피하거나  

숨을 수 없는 절대절명의 숙명의 고리를 목에 건다. 

일체의 가식이나 위선, 허위, 허욕을 용납하지 않음으로 삶의 첫길이요, 끝길인 인간 본연의 

긴 고행길을 잊으며 털며 버리며 바람 불 듯이, 구름 가 듯이, 물 흐르듯이 도포 자락, 옷깃을 훨훨 날리며 포효하게 걷는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자연스럽게 들으며 걸어간다. 

그건 이미 이 시인이 짊어진 형이하학적 철학의 한 부분이다. 

이 시인의 시인으로의 年期가 아니라 세월에서 오는 年功이요 깊숙한 內攻의 힘이다. 

궁극에 가서 이 시인이 찾고자 구하여 눈에 다가오는 것은 구원으로 승화된 풍화 또는 동화작용으로 일궈낸 한 톨의 숭고한 구원의 소금이다 

그건 어쩌면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은혜라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시의 전반적 구조가 무리없이 원활하게 다듬아진 흔적이 역력하고 간명한 터치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2 .신기한 존재, 탐구와 확인에서 오는 영육의 遊離 

 

황혼이 내리는 나폴리 항구 

도시의 불빛 하나 둘 

눈눈이 깨어나니 

그를 향한 내 가슴도 

깊어가는 어둠 속에 

타 오른다 

 

질주하는 차들의 불빛은 

가로등과 어울려  

영롱하게 꼬리를 이어가며 

살아 있음을 자랑한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듯 

저 깊은 바다의 어둠을 

환히 비추어 준 따스한 누군가가 

조용히 내 볼에 입을 맞춘다 

 

정다운 속삭임이 오고 갔다 

그를 담고 있는 공간 전체를 

흡수하려는 

숨 막히는 시간은 지나가고 

불멸의 한 가운데서 

나를 이끌고 있는 그 분의  

높은 위상에 나는 머리 조아린다. 

 

                                      -그 존재 (선상일기.7) 전문- 

 

그는 어떤 존재인가. 

존재 의식, 존재 탐구, 존재 확인, 존재 가치, 존제의 유기질과 무기질, 그의 관심은 존재의 

무한 세계로 확산되어 간다. 

나폴리 기행에서 관광지를 돌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 이 시인의 근면한 사색의 역동감은 

가로등 밑에서 신호등을 보면서 번질나게 사유하고 눈부시게 변동한다.. 

유와 무에 가치는 무엇인가. 

영육의 유리에서 영혼의 눈이 차춤 깨어나며 인광 불을 지핀다.  

생존을 확인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아니, 반어법, 또는 역설법 미학으로 이 시인은 무언가 알어날 것 같은 누군가의 절대주에 대한 징조와 외경감을 예지한다.. 

깊은 바닷속 어둠, 숨소리를 들으면서 환히 비쳐오는 한 줄기 빛, 그 聖光이 내려와 이 시인의 旅愁의 볼에 고운 평화와 사랑의 입을 멎춘다. 

고요한 묵시가 오고 가는 공간, 축복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불멸의 한 가운데서 

이 시인을 끌고 인도히는 미지의 세계. 그 높은 그 분의 위상과 은총, 복음 소릴 듣는다. 

족교적 메타포가 은은하게 깔려 고이는 밀도있는 시를 본다. 

존제는 일련의 연작시로 시의 미래가 촉망된다. 

 

3 . 채울없는자리, 창문을 두들기며 오는 매화의 幻影 

 

머리 빗까지 두고 시집 간 

사려 깊은 매화 

갈아입을 옷 몇 벌 들고 

살짝 떠나려던 深思 

아랑곳없이 

 

한밤에 꿈같이 사라진 시간들 

가슴에 펑 뚫린 자리 너무도 커 

차다차게 내리는 비 

밤의 세계를 휘저어 놓는 밤 

 

잠을 청하려는 매화 없는 빈 자리 

꽃으로 피어나던 지난 날들 

밤이 다 가도록 한 바구니 

소중히 담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 자리 

가난한 기나긴 겨울밤 

우두둑 빗소리만 

창문을 두드린다. 

 

                                 -가마 타고 매화 시집 간다 . 2 전문- 

 

이은상의 봄처녀 같은 결이 고운 서정시를 본다. 

머리 빗까지도 깊은 심사로 친정에 두고 훌훌 꽃가마 타고 시집 간 매화 아가씨의 애잔한 여한이 눈에 잘 들어오는 시각적 에코를 품기는 시다. 

일종의 서경젹 묘사로 매화, 떠나간 빈 자리의 적막을 잘 묘사한 선이 가늘고 섬세하고 달큼하게 리얼한 쎈티에 젖게 한다.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도 매화의 발자국 소린가. 

우두둑 빗소리에도 귀를 쭁끗 세우는 동작이 마치 무용처럼 아름답다. 

창가를 맴도는 새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이 시인의 정많고 여린 마음이 가야금처럼 울리고 거울밤의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어 온다. 

갈아입을 옷 몇 벌 들고 에선 정비석의 대표작 서낭당에서 옷보따리 들고 남정네를 따라가는 여인상이 연상되어 미소를 금할 수가 없다. 

연로한 박복수 시인 아니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고전적 풍습으로 한결 회고적 이미지를 유발한다. 

점차 시들어 가는 시의 서정성에서 난이한 시맥을 차단하고 거부하고 나선 제미있게 수월하게 읽힌 친밀감이 도는 시다. 

일맥의 이슈와 이야기를 동반한 그의 역작으로 싯적 동기와 충동에 바수를 치고 싶다. 

 

4 . 미래에 거는 창조와 찬란한 여망의 빛. 

 

시는 죽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가 판을 치고 로봇의 전성 시대가 다가와도 결코 시는 퇴폐하지 않고 언제나 부활하고 소생한다. 

그것이 시 또는 문학, 예술의 영원한 생명력이요, 세기의 소명이다. 

그렇게 양원히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는 한층 더 판득하고 접근하가 쉬어야 하고 친밀김을 주어야 한다. 

老軀能解라는 말이 있다. 동네 할머니까지도 좋아하고 이해하는 시를 쓰라는 詩作의 警句다. 

흔히 애매 모호하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어려운 단어, 미사여구를 나열하여 난해한 시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조차도 무엇을 쓰고 말하려는지 왕왕 혼돈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시의 해독으로 시를 점점 경원시하게 된다. 

바라건대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을 시인의 본령으로 해야 한다. 

미당처럼 소월처럼 영랑처럼 상화처럼 만해처럼 박재삼처럼 김수영처럼 정지용 같은 

만인이 좋아하고 위안과 기쁨이 되는 서민 애환의 시를 썼으면 박복수에게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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