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의 고마운 관심

2016.10.31 04:21

노 기제 조회 수:240

20160928                       연하남의 고마운 관심

 

 

   콜로라도 브리큰리지. 스키클럽 멤버들과 시즌 마지막 트립을 지난 3월 초에 갔다. 미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로 스키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캘리포니아를 떠나 타주로 가기도 한다. 같은 스포츠를 같은 장소에서만 즐기기 보다는 장소를 바꿔가며 즐길 때, 기쁨은 몇 배까지라도 상승한다.


   자주 가던 맘모스 스키장이 아닌, 생소한 스키장이라 설레임은 컸다. 칠십 명 가까운 멤버들이 공항에서부터 두 대의 버스로 이동해서 콘도에 도착이다. 각 콘도마다 두 팀, 혹은 세 팀씩 방을 배정 받아 짐을 푼다. 대부분 동성 친구들끼리 한 방을 쓴다. 오랜 기간을 같은 클럽에서 스키여행이나, 여름철 관광 여행을 함께 다니다 애인 사이가 된 남녀 친구들이 짝을 이뤄 같은 방을 쓰는 모습도 보인다.

   

   난 삼년 째 풋내기 회원이라 동성 친구도 없다. 매번 룸메이트를 찾느라 기다리는 날들이 길다. 미국인 친구 따라 회원이 된 경우라 한국 사람도 없는 클럽에서 거의 외톨이다. 나를 데려간 친구는 한 번 여행 후 스키여행 보다는 보통 관광 여행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다닌다. 그 친구 없다고 나도 떨어져 나오기엔 내가 스키타기를 너무 좋아한다.


   매 해 9월 초에, 다음 해 스키시즌 여행 계획서가 나온다. 먼저 오는 사람 순으로 신청을 받는다. 50 여 마일이나 떨어진 클럽모임 장소까지 주저함 없이 밤 운전을 해서 간다. 그날을 놓치면 자칫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스키를 안타는 사람도 여행에 참여하고자 신청을 하는 까닭에 항상 첫날에 마감 된다. 대강 칠 팔 명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상태였다. 신청 시작 시간 두 시간 전에 모임 장소에 가도 이미 회원들로 가득 차 있곤 했다.


   몇 번의 여행을 함께 했던 회원들에게 제법 큰 소리로 하이하며 인사를 나누는 상황이지만 남자 회원들은 의식적으로 내가 피한다. 문화의 차이를 잘 모르는 실정이라 나의 어떠함이 그들에겐 엉뚱하게 이해 될 수도 있음을 감안해서다. 혼자 스키여행을 다니는 한국여자. 대부분 내가 싱글이라 짐작하는 모양이다. 불편해서 안 끼던 결혼반지를 일부러 끼고 다니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남편 얘기를 자주 꺼내기도 했다. 잘 못 이해된다는 것이 싫다.


   콜로라도의 낭만적인 분위기, 눈 덮인 스키장이 삼면으로 펼쳐 진 유리창을 통해 찡끗 윙크를 날린다. 십 여 명 건장한 남녀가 반라의 몸을 담은 따끈한 실내 온천탕. 각자의 손에 들린 와인 잔이 입술을 당긴다. 누구하고라도 달콤한 말 한 마디 주고받을 수 있다.


   하루 종일 스키장에서 춤을 춘다. 대강 실력이 비슷한 멤버들이 함께 다닌다. 점심시간에야 비로소 헬멧과 고글을 벗는다. 서로 이름을 알리고 작년에 했던 똑 같은 절차를 밟으며 조금은 가까워진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잡으며 튀어 든다. 싱긋 웃는 얼굴이 친숙한 로버트. 탄탄한 몸매에 과묵한 인상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말문을 튼다. 


   "나 쉰 여섯. 넌? "

   "어? 나? 칠십"

   커진 눈에 벌린 입을 보이며 엄청 놀란 표정이다. 예측이 어려운 동양여자의 나이. 보여준 관심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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