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6 22:52
20210901 벗고 살리라
설촌
개구리가 된다. 무심하게 산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서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편안하다. 설마 이 연못의 물이 말라서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야 하겠어? 걱정 놓고 잘살고 있다. 지나가는 소년이 장난으로 던진 조약돌에 맞아 개구리가 죽었다. 연못의 물은 찰랑찰랑 교태를 부린다.
아슬아슬 숨이 차서 살기 힘든 시기가 있다. 지나가는 소년이 던진 돌에 죽을 수만 있다면 그 돌 내게 던져달라 청하기도 했을 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개구리가 아니다. 죽고 싶어도 방법을 모른다. 방법을 알아도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다. 따스한 물 한잔 건네주는 이웃 사랑에 기진한 몰골이 생기를 찾고 있다.
지긋지긋 견디기 힘든 결혼생활을 죽음으로 끝내겠다고 바닷가를 헤맨다. 이 상황을 피할 방법을 모른다. 그렇다. 죽으면 된다. 죽는다는 건 무얼까. 어떻게 해야 죽는단 말인가. 도망쳐 나가면 시원한 공기가 가슴을 뛰게 한다. 운율 맞춰 철석이는 파도의 옹알이가 흥겹다.
힘을 꾹꾹 주면서 옮기는 모래위의 걸음마. 재미있어 기운이 난다. 아무도 내게서 이런 행복한 시간을 뺏으려 하지 않는다. 너 가져. 다 네 거야. 맞아. 이런 좋은 세상을 왜 포기하려 해? 신나게 살아야지. 만약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하느님은 없는 거지.
우린 인간이야.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참아주고 할 수 있다고? 넌 예수가 아니거든. 착각하지 말자. 나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했어. 자랄 때 들어보지 못한 심한 욕지거리,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까지도 참고 살라는 예수의 가르침. 그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잘못 배운 성경 말씀. 문제는 가해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고려하지 않은 훈계라는 것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관 내지는 철학이 있다.
각자가 인격 형성이 꼴 지워진 가정환경이 있다. 무엇을 보고, 어떤 삶의 양상을 배우며 어른이 되었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정해진 법률은 없다. 정답 없는 인생에 주인은 바로 나. 너. 누구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살아 본 내가 결정할 일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나를 향한 저 무서운 시선들을 속이려 애쓴다. 숨겨도 숨겨도 모두 가릴 수 없는 빙산 같은 덩어리.
차라리 벗자. 죄의 값을 묻기보다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끽하고픈 소망이 꿈틀거림이다. 나로 인해 아픔을 당할 부모님이 계실 땐 참아야 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혀 깨물며 참던 세월도 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알고 이해할 나이쯤 되면 자식의 의견도 도움이 된다.
잘못 배운 사랑학으로 내가 아니면 누가? 걸핏하면 짠하고 불쌍하단 마음이 들어 별거 상태임에도 청하면 달려가고, 지시하면 행하고, 휘둘리는 삶에 멀미가 심해진다. 남들 눈에 보이는 우리 부부관계는 그만하고 들어가라는 의견이 구십 프로다. 그런 남편, 어디 가서 만나겠냐고 배부른 짓거리란다. 무슨 소용 있겠나. 내가 불행하다. 그것이 가장 큰 사유가 된다. 서로가 존중하지 못하는 인격이라면 참고 기다릴 필요 없다.
사랑의 표현이 폭력이 될 수 없고, 거침없이 쏟아 내는 욕지거리들이 애정의 표현은 아니다. 받아주는 사람이 측은지심으로 개과천선 할 날을 기다리며 견뎌 준다면 그건 행운이겠다. 결혼 40년 동안 이제나저제나 하늘에 올리는 기도로 참고 기다렸다. 결혼 20년 만에 가출해서 열흘 만에 눈물범벅으로 용서비는 모습에 속았고, 그로부터 5년 후 다시 가출했다가 열 한달 만에 다시 불쌍한 마음에 끌려 들어갔다. 자식 없는 것도 참았다. 내 팔자려니.
그 후 15년 동안 강아지를 기르며 나름대로 올바른 사랑 표현법을 보여 주면서 간접 교육 효과를 기대했다. 내가 바라던 효과는 없었다. 사랑의 매개체이던 강아지가 떠나고 다시 악몽 같은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책상 위 스테이플러가 나를 향해 날아오기 직전 결심했다.
무엇이 두려우냐, 이렇게 산다고 천국이 너의 것이 된다고? 아니지. 난 이미 천국시민권자거든. 십자가의 피로 예수님께서 이미 예약 끝내셨으니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난 그저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줄 알았거든.
네가 행복해야 해. 하늘이 원하시는 건 네가 평화롭게 사는 것. 감히 예수 흉내 내며 참고 견디는 네 모습에 하늘은 슬퍼 우신다는 걸 알아야지. 남들 시선 무시해. 무지한 인간들 입놀림에서 자유롭기를 두려워 마라. 이혼? 잘 견딜 수 있다면 이혼해.
혹여 남의 아픈 사정에 가볍게 입놀림 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분들께 사죄드립니다. 무심히 던진 작은 돌로 본의 아니게 아픈 상처 후볐을 경우도 사과드립니다. 내 가림을 벗으며 고개 숙입니다. 우리 함께 우리의 우리 됨에 당당하게 어깨 펴고 살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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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많이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구나. 네가 널 믿어주는 게 제일 급하고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이 드네. 얼마나 산다고. 이제라도 너만 바라보고 너만 믿으며 뚜벅이처럼 걸어가도 좋을 듯~오늘도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