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3 22:43
목련꽃 질 무렵/ 전희진
인천 큰외삼촌은 문간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창호지 문을 주먹으로 탕탕 두들겼다
어린 나이에도 술 냄새가 싫어 어스름을 밟으며 집 밖을 맴돌곤 했는데
말 못 하는 마른 북어처럼 엄마는 묵묵히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두들겨도 털어도 죽어도 없는 돈은 나올 생각을 않고
아래채로 내려가는 엄마의 긴 옥양목 치맛단에 환멸의 먼지가 풀썩였다
과자봉지 든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막내 고모할머니, 그 손에는 자글자글 햇살 같은 주름살이 모여 살았다
겨우내 조용하던 할아버지가 문지방 위에 젖은 꽃잎처럼 엎질러졌다
내가 약을 먹었노라 죽으려고 약 먹었노라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이 있었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고
방 문턱이 반질반질 닳도록 여럿의 젊은 새어머니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2021년 '외지'에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4 | (시평) 전희진의 시 '늦은, 봄'을 읽다 | 전희진 | 2019.02.03 | 198 |
53 | 오렌지 향기가 진동하는 봄밤의 살인 사건 [1] | 전희진 | 2020.05.20 | 151 |
52 | 노인 | 전희진 | 2020.07.16 | 145 |
51 | 6월의 오후 3시와 4시 사이 [2] | 전희진 | 2019.01.29 | 129 |
50 | 폐업 | jeonheejean | 2020.12.17 | 128 |
49 | 주제별로 살펴본 시집‘우울과 달빛과 나란히 눕다’ | 전희진 | 2020.12.05 | 114 |
48 | 백년동안 몸을 풀지 않는 드가의 한 소녀를 위하여 | 전희진 | 2019.01.14 | 111 |
47 | 밀접 접촉자 | 전희진 | 2021.02.19 | 107 |
46 | 선글라스의 귀환 | 전희진 | 2020.03.08 | 102 |
45 | 노라의 변신 | 전희진2 | 2019.12.17 | 95 |
44 | 부부 | 전희진 | 2019.01.14 | 91 |
43 | 연극 관람평 ‘해나와 공포의 가제보’ [2] | 전희진 | 2020.03.14 | 89 |
42 | 동쪽 마을에서 [1] | 전희진 | 2020.12.02 | 87 |
41 | 어느 목조 건물 | 전희진 | 2020.09.10 | 83 |
40 | 봄, 그 거대한 음모 | 전희진 | 2019.01.22 | 82 |
39 | 무모한 사람 | 전희진 | 2021.02.19 | 80 |
38 | 오월이 오는 길목 [2] | 전희진 | 2022.04.25 | 74 |
» | 목련꽃 질 무렵/전희진 | 전희진 | 2022.05.03 | 62 |
36 | 소금사막_창작가곡제 | 전희진2 | 2019.03.22 | 58 |
35 | 장례식장에서 | 전희진 | 2022.04.26 | 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