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인간
2010.03.16 03:52
인조인간
최 문 항
내게는 사촌 형님이 한 분 계시다. 기골이 장대하고 성격이 호탕해서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들끓었다. 언젠가는 시골 장터에서 벌어진 씨름대회에서 황소 한 마리를 상품으로 받았는데 그것을 친구들과 몇 날 며칠 동안 읍내 술집에서 탕진했다고 한다.
그러던 형님이 이십여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한국에서는 거대한 체격 하나로 모든 것이 수월하게 잘 풀렸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웬만한 서양인들은 팔뚝이 우리 다리통보다 굵으니 어디 가서 힘 좀 쓴다는 말도 못 붙여보게 되었다. 우선 말이 안 통하니 무엇 하나 맘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한인 타운 안을 맴돌면서 마켓일도 해보고 이삿짐센터에도 나가 일을 좀 거들어 보았으나 힘으로는 젊은 멕시칸 친구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매일 같이 독한 술만 마셔대더니 어느 날 드디어 고장이 났다. 위경련이 일어나 급기야는 병원에 입원해서 담낭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형님은 쓸개를 제거당하고 난후부터 당뇨병이 생겼다. 요즈음 의사들은 담낭이나 맹장 같은 장기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잘라낸다. 나이 든 여자들의 경우 자궁은 이제 별로 쓸모가 없어서인지 마구잡이로 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기들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아무 쓸데없어 보이는 기관들이지만 전혀 실수가 없으신 조물주의 창조 섭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제거해 버리는 의사들의 오만을 탓해보고 싶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체액과 혈액이 잘 순환돼야 하고 이것들을 잘 돌아가게 하려면 여러 종류의 호르몬이 요소요소에 그때그때 공급되어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제자리에 있어야 할 장기들을 잘라 버렸으니 뇌로부터 신경 줄을 타고 내려오는 명령이 중간에 끊어져서 어디에 무슨 호르몬이 필요한지를 알 수가 없어진 것이다. 제아무리 육 척이 훨씬 넘는 장신에 집체만한 바위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던 장사였다고 해도 배를 갈라서 몸 안에 흐르는 기를 끊어 버렸으니 단전에 모여드는 신비한 힘은 아예 기대도 할 수 없게 되었고 당분이 소변으로 마구 방출돼 버리니 손발에는 힘이 하나도 없고 늘 피곤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형님은 쓸개를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인슐린마저 제대로 분비되지 못하고 있으니 당뇨병에 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핏속에 당분이 녹아나오니 오장 육부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풍선으로 막힌 혈관을 확장해주는 방법으로 심장 관상동맥을 두 번씩이나 뚫어주고 얇은 망사처럼 생긴 금속 튜브를 끼워 놓았다. 이 방법도 당시에는 대단한 기술이었다. 당 수치가 점점 높아 가더니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안과를 드나들면서 눈 안쪽 망막에 터진 모세혈관을 레이저 광선으로 지지고 난리를 부렸다.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안과 의사가 남들은 15분 정도면 거뜬히 끝내는 백내장수술을 40분이 넘게 만지작거리더니 잘못되는 바람에 몇 달을 고생했다. 결국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각막까지 이식을 받았다. 겨우 앞이 흐릿하게 보일 만 하니까 이빨들이 온통 흔들거렸다. 윗니부터 차례차례 빼고는 틀니를 해서 끼우게 됐다. 빠진 이빨자리에 티타늄이란 강철로 만든 치아를 열세 대나 심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비용이 자그마치 사만여 불이나 들어갔다.
쓸개, 심장, 눈, 그리고 이빨까지 떼어버리고 수리하고 다른 부속으로 갈아 끼워 놨으니 이제는 더 이상 괴력을 발휘하던 형이 아니었다. 머리털을 몽땅 깎여 버린 삼손처럼 힘을 전혀 못 쓰는 꼴이 된 것이다. 이제 육십이 채 안 되었는데 머지않아 귀에는 보청기를 끼게 될 것이고 콩팥은 두 개가 있으니 그 중 하나만 기능을 발휘할 때까지는 안심해도 될 것이다.
폐나 위장, 소장, 대장은 제3국 형무소에 수감 돼 있는 사형수의 장기를 기증(구입)받아서 갈아 끼워주는 병원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인체의 각 부분을 마치 자동차 부속 갈아 치우듯 쉽게 생각하다 보니 이제는 의학이 공학(생명공학)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마치 공산품 다루듯이 경솔하게 생명을 취급하는 것 같아서 산다는 것 자체가 혐오스럽다.
요즈음 한국을 대표하는 황우석 박사 연구팀이 인체 줄기세포 연구로 전 세계를 주도하고 그 연구 결과가 많은 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한다. 수천 명의 환자들이 황 박사와 그 연구진에게 거는 기대는 아마도 보이지 않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 같다. 그들의 연구가 성공하는 날에는 인체의 각 부분과 신경 세포들이 다량 생산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 날것인가? 몇 년도 산 어느 종족 남 녀 신체의 크기와 무게 등을 잘 구분해서 필요한 인체 부위를 컴퓨터로 주문하면 다음날 UPS로 배달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현대나 도요타 같은 유명한 자동차 딜러에 준비되어있는 부품을 주문하듯이 말이다. 그러고 나면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자동차 정비소와 같은 규모의 병원(아마 의사가 아닌 로봇이 시술하는)에 본인이 직접 들고 가서 몇 분 이내에 갈아 끼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부스스 털고 일어나서 제 길을 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부의 장기들을 그렇게 교환 수리해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한다면 우글쭈글해진 외모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한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다. 강남의 어느 거리는 온통 성형외과 병원들이 진을 치고 있고 일본과 중국에서 건너온 아가씨들이 한국의 잘생긴 여배우나 가수처럼 바꿔 달라고 야단들이란다.
이렇게 내장을 몽땅 갈아 치우고 외모도 밀고 당겨서 인조인간이 탄생 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오fot동안 이 좁은 지구에서 살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지금도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칠팔십은 보통이고 수년 내에 백세를 넘어 백오십 세까지는 무난하리라고 한다.
오존층은 파괴되고 핵폐기물이 넘쳐나고 하천과 공기오염은 올 때까지 왔다. 한동안은 광우병으로 쇠고기를 못 먹게 하더니 이제는 조류들이 인간을 향해 독감 바이러스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콜레스테롤 걱정하랴, 혈당과 혈압조절을 위해 생식을 먹어야 하고 무슨 클로렐라라는 녹색 물질로 식사를 대신하니 우리는 머지않아 노아의 홍수이전으로 돌아가서 사슴처럼 풀을 뜯게 될 것 같다.
우리 인간들이 속과 거죽을 열 번 바꿔서 젊음을 되찾아보려고 발버둥치지만 가공할 파괴 무기와 석탄 연료의 부족 지진과 홍수 태풍과 해일등 불 속으로, 물속으로 쓸어가 버릴지도 모르는 하늘의 재앙을 두려워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인생들이고 보면 오래 산다는 것이 결코 축복만은 아닌 것 같다.
심장이 박동을 멈추면 죽는 것일까? 아니면 뇌의 기능이 정지되는 순간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것일까? 성경에서는 생명이 피에 있다고 했고 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생로병사의 오묘한 진리에 순응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수명만큼만 보람 있게 살아가려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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