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w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 Ricardo Odnoposoff
차이코프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Ricardo Odnoposoff, violin
Walter Goehr, Conductor
Netherland Philharmonic Orchestra
리카르도 오드노포소프(Ricardo Odnoposoff)
리카르도 오드노포소프(Ricardo Odnoposoff)는 1914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 5살의 나이에 고국에서 첫 데뷔를 했을 정도로 신동으로 인정받았었다.
특히 전설적인 바이올린 교육자인 레오폴드 아우어와 칼 플레쉬에게 사사한 후 1931년 베를린에서 불과 17살의 나이에 에리히 클라이버와 협연하여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1932년 그는 비엔나 국제 음악 콩쿠르에 참여하여 1위에 입상하였고, 193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자이 콩쿠르에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공동으로 1위를 나누어 가졌다.
콩쿠르 입상이후 그는 독일과 유럽 전역을 순회하면서 리사이틀리스트로서
협연자로서 당대의 거장인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와 발터 퀘흐등과 협연하였다.
20살에 리카르도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임명되어 전쟁기간중 활동하였으며,
이 시기에 녹음활동도 하게 된다. 전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고,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음악 페스티발 시벨리우스 주간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였다.
또한 1960년 파리 음악원 협회 음악 페스티발에 참여하여 칼 뮌싱거의 지휘로 멘델스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1960년대 후반 라카르도는 슈트가르트 음악원과 빈 음악 아카데미의 바이올린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레이너 구슈마흘(Rainer Kusmaul)과 같은 뛰어난 제자들을 양성하였으며,
1970년부터 세계 여러 바이올린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특히 1962년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에 하프의 명인
자바레타, 바리톤 게하르트 허쉬등과 한국 방문하여 브람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여
국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었다.
Vadim Repin, violin
Valery Gergiev, cond
St.Petersburg Kirov Orchestra
Ruggiero Ricci, violin
National Polish Radio Symphony Orchestra
Pyotr Il'ich Tchaikovskii, (1840∼1893)
차이코프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해설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 Candenza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서주에서 잠시 주제가 암시된 후 바로 바이올린에 의해 낭랑히 울려펴진다.
전개부에서는 화려한 바이올린의 테크닉의 향연이 펼쳐지며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야성적인 외침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카덴짜 (독주자가 반주없이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과시하는 즉흥연주를 하는 부분.
고전파 이후 상당수의 작품에서는 작곡자가 대부분 카덴짜까지 겸해서 작곡해두는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카덴짜를 연주하기도 한다)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주제가 반복되고 곡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끝나게 된다.
일반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케스트라가 먼저 제1, 2주제를 연주한 다음 바이올린이 그것을 받아서 주제를 연주하게 되는 형식인데 비해서 이 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에 이어 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하게 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제1악장은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장쾌함이 절묘하게 어울린 소타나 형식의 악장으로 서주에서 시작되는 주제 부분이 카덴짜(즉흥 연주부분)와 서로 밀고 당기며 계속해서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절정에 이르게 되면 숨가쁘게 전개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들이 정말 눈부신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가슴속이 서늘할 정도로 장쾌함이 밀려 와서 문득 정신을 가다듬으면 바로 1악장의 연주가 끝이 난 것이지요. 여기에서 1악장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2악장, Canzonetta (Andante)
'칸쪼네타 (작은 노래)' 라고 되어있는 A-B-A의 3부형식으로 되어있다.
애수어린 멜로디가 곡전체를 지배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데, 이는 매우 슬라브적인 정서가 풍부한 선율이다.
곡은 명확히 끝나는 부분이 없이 3악장으로 연결된다.
슬라브적 애수 어린 선율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칸쪼네타(Canzonetta)' 로 되어있는 A-B-A의 3부 형식인데, '칸쪼네타'는
이탈리아의 포퓰러송을 뜻하는 칸초네(canzone)의 축소형으로 주로 16~17세기에 유행했던 가벼운 기분의 작은 가곡작품을 뜻하는 말로,
그냥 '작은 노래' 라고 하면 된다는군요. 흐느끼듯 아름답고 애수어린 멜로디가 곡전체를 지배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데,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황홀한 매력에 빠지게 하는 이 2악장은 차이코프스키만의 매우 슬라브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나타나는 선율이라고 평가됩니다.
특히 오늘 여러분께서 감상하시다가 어? 이상하다....라고 생각하실만큼 이 곡은 명확히 끝나는 부분이 없이 첼로 등 현악기들의 저음을 바탕으로 혼(Horn)과 함께 애절함을 장식하다 끝난 것 같지도 않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이어서 깜짝 놀랄만큼 강렬한 음량이 터지면서 곧바로 열광적인 3악장 연주와 연결됩니다.
제 3악장, Finale (Allegro vivacissimo)
자유로운 소나타형식의 악장이다. 전악장에서 이어진 곡은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열광적인 리듬의 축제로 변한다.
중간에 잠시 우수어린 선율이 고개를 내밀다 제시부의 첫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 하다 점점 열기를 고조시켜 나가면서 마지막에는 환희에 찬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끝맺는다.
피날레. 화려하고 여유로운 소나타형식의 악장입니다.
2악장에서 이어진 곡은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열광적인 리듬의 축제로 변하게 됩니다.
중간 부분에서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의 선율로 잠시 우수어린 연주가 이어지다가 제시부의 첫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 하면서 점점 열기를 고조시켜 나간 후
마지막에 환희에 넘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총연주로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이제 3악장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Pyotr Il'ich Tchaikovskii, (1840∼1893)
차이코프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이 세상에 등장하기까지...
4대 바이올린 협주곡중의 하나 :
누가 붙인 별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은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칭호를 누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멘델스죤 (E단조)을 제외한 세 곡의 협주곡이 모두 D장조로 쓰여진 것인데,
이것은 아마도 바이올린이 가장 아름다운 울림을 낼 수 있는 조성이 D장조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화려함과 애절한 멜로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곡이며,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비해 이 장르의 작품을 처음 접하기에 좀더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차이코프스키는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이는 3대 바이올린 협주곡(베토벤, 멘델스죤, 브람스)에 이어 가장 인기 있고 자주 연주되는 협주곡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곡이 처음 발표되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무척 힘든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심한 우울증 증세에 빠져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에서 요양생활을 하던 중에 작곡되었다 (1878년, 당시 38세).
이 기간은 그가 교향곡 제 4번과 "에프게니 오네긴" 등을 작곡한 시기이기도 한데,
이 때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코데크라는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의 도움으로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1878년 이 곡을 완성하여 당시 바이올린의 거장이었던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곡의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본 후 '기교적으로 연주 불가'로 판정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솔로 바이올린을 작곡하는데 많은 조언을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코테크조차도 그 곡을 연주하는 것을 꺼렸다고 합니다.
(이 코테크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있어 마치 브람스의 요아힘과도 같은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실망한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4년여 세월 동안이나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는데,
이 곡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연주하기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아돌프 브로드스키라는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을 칭찬하면서 발표할 것을 적극 권하여
1881년 12월에 빈 필과 한스 리히터의 반주로 브로드스키에 의하여 1881년 초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계속 반복하여 연주해도 절대로 질리지 않으며,
이는 이 곡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브로드스키의 말입니다. 그러나 이 때도 당시 공연의 지휘를 맡았던
한스 리히터도 곡의 연주를 꺼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결국 초연을 했지만... 관중들은 크게 야유를 보냈으며, 악명 높은 비평가
에두아드 한슬릭은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은 더 이상 연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리저리 잡아채졌으며,
갈기갈기 찢겼고, 멍들 정도로 두드려 맞았다.
우리는 천하고 품위 없는 얼굴만 봤고, 거친 고함 소리만 들었고, 싸구려 술 냄새만 맡았다.
프리드리히 피셔는 짜임새 없는 그림을 평할 때 '보고 있노라면 악취가 나는 그림이 있다'하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음악 중에서도 악취가 나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혹평에도 불구, 이 곡의 매력을 굳게 믿었던 브로드스키는 이 곡을 널리 알리는데 굉장한 노력을 하였고,
차이코프스키도 이 곡을 다시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이 협주곡은 널리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곡을 거부하였던 아우어도 결국은 연주를 하였으며, 그의 신동
제자였던 하이페츠에게도 이 곡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신예 바이올리스트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기교를 세상에 과시하는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한슬리크가 말한 것처럼 강렬한 러시아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의 야성적인 주제나 2악장의 슬라브적 애수가 어린 선율, 3악장의 광포한 리듬과 열정적인 끝맺음 등은
러시아외의 유럽 작곡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민족색채가 넘치는 것들이다.
또한 아우어 교수가 처음에 연주가 불가능할것이라 예견했을 정도로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