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덕 시인의 시세계 )
2012.12.24 00:06
서용덕 시인의 시세계
< 작품해설 >
서용덕 시인의 제 5시집 “心 마음 가리킨 생각”
만년설(萬年雪)을 녹인 시심(詩心)의 온기(溫氣)
정용진 시인(전.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시인은 영혼의 창을 열어 심안(心眼)으로 세상 사물을 바라다보고 그 속에 담겨진 순수와 진실을 밝혀주는 사명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이 탄생시킨 창작의 작품 속에는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 시속에 시인의 시심이 생동하는 눈빛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여기에 ‘세상 e-세상, 영혼이 불타는 소리의 통로, 떠나도 지키리, 허허벌판, 에 이어 제 5시집 心 마음 가리킨 생각, 이 서용덕 시인을 통하여 세상을 향하여 고고의 성(呱呱의 聲)을 울린다.
서용덕 시인은 만년설이 뒤덮인 미국의 최북단 알라스카에서 살면서 진솔한 시를 쓰고 있다.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그의 아호 설천(雪泉)만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꿈속에서 헤매다
쫒기다 놓치고 놓친
진땀으로 품 안 찾아 안아
“내 것이다” 소리 지른 한마디
첩첩 산 속 헤매다
번쩍 뜨이는 생각
임자 없이 기다린
“심心 봤다” 소리 지른 한마디
오늘도 오다가다
부딪치며 놓치고 붙잡는
그 생각 하나를
“내 것이다”
”심心 봤다“
피 토하는 두견새처럼
목 놓아 외쳐 보던 날이다. -심봤다, 전문.
저자가 “심心봤다” 를 시집 제호로 정한 것만 보아도 그의 시상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암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산삼을 얻는 축복은 천지인(天地人)의 축복과 조화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 설원 속에서 산삼을 캐는 심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피를 토하는 두견 같이 울고 싶다는 저자의 절절한 고백이 작품 속에 여실히 각인 되어 있다.
강건너 생바람이 밀려오고
산넘어 콧바람이 몰려들어
벌판에 씨앗들이 모두 깨어나
뒷 짐 지고 떠나버린 연인들이
또 다시 찾아 올 때마다
쨍쨍하고 팽팽하게 채우는
가장 따뜻한 고백은
뭉텅뭉텅 터뜨리는 떼거리들
텅 빈 것을 채워
갈 길 묻지 않고 떠났는데
다시 살아서 돌아오던 날
채워 온 것이 어디 꽃뿐이더냐, -꽃마중, 전문.
인간은 인간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주위의 자연을 통하여 상호 교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老子) 같은 도학자는 자연을 거스르지 말라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강건너 생바람이 밀려오고/산넘어 콧바람이 몰려들어/벌판에 씨앗들이 모두 깨어나/...텅 빈 것을 채워, 꽃 마중의 이 진솔한 언어들은 시인의 자연을 바라보는 순수가 내면속에 숨겨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철인 데카르트의 말처럼 인간은 절대자로부터 내어던져진 피투성(被投性)적존재로서 자신의 자아의식을 스스로 발굴하려는 부단한 노력과 사명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다. 특히 시인에게 있어서는 삶 속에서 수시로 대하고 느끼는 세계가 자신의 작품 속에 명징(明澄) 하게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시인은 항상 진실한 마음의 자세로 독자들 앞에 서야하는 것이다.
서용덕 시인은 만년설이 덮여있고 만년빙이 쌓여있는 알라스카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세계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였다.
이제 서용덕 시인의 시집“心 마음 가리킨 생각‘이 독자들을 향하여 다가간다.
꿈이 깨어/씨앗이 터진다/내민다/가득 채웠던/것이/뿜어낸다. 새 싹이 난다. 의 일부다. 시인은 사색과 명상의 주인이 되어야 명작을 남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늘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날마다 수시로 부딪치는 숱한 갈등 속에서 방황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날이 밝았으니
지금이라도 나가면
박수를 받을까 야유를 받을까
기억이 새로워지는 일들이
걸음걸음으로 묻어나는
오래된 내가 어떻게 시작하는 것일까
꿈이 있는 곳에 빛이 있고
힘이 솟는 곳에 길이 있어
맑은 날도 흐린 날도
같은 날인데 어떻게 시작하는 것일까
날이 밝아 앞서 가느냐
오래된 내가 앞서 가느냐
한 세상이 뒤엉키는
보고 듣던 말들이 열린다
목숨이 세월보다 길지 않다 -갈등, 전문.
이 작품 속에서 작자가시를 쓰면서 숱한 괴뇌와 갈등을 강하게 느끼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작가는 위대한 고뇌를 만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노인과 바다’ ‘분노는 포도처럼’의 존 스타인백이 그 예가 아닌가.
스스로의 갈등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존재 이것이 성공한 작가의 모습이요, 아름다운 표본이다.
눈이 오기도 전에 겨울이라더니
눈이 녹기도 전에 봄이 오나
땅 밑으로 끌어당기는
나무들은 빠른 물살의 강을 살리고
그 강물 끝을 눈부시게 채운
파도를 만든 바다가 넘실거린다. -나뭇잎, 전문.
서용덕 시인의 시 속에는 유독 자연이 많이 등장하고 진지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들이 주조(主調)를 이룬다.
알라스카는 자연의 보고다. 나도 오래전 그곳을 방문하여 육로로 전체를 일주하면서 산을 뒤덮은 만년설의 상서로움, 그리고 수시로 지축을 흔들며 바다로 쏟아지는 만년빙의 거대한 폭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해마다 6.7월이 되면 아류산 열도를 거슬러 알을 낳기 위하여 알라스카 물길을 따라 몰려오는 무지갯빛 연어 떼들의 귀소행렬의 장관, 이런 힘차고 넉넉한 시심이 서용덕 시인에게 평생을 넘쳐나기를 기원한다.
캐나다 록키 마운틴의 만년빙과 더불어 알라스카의 빙산은 온 세계 인류들의 위대한 자연 유산인데 해마다 녹기를 더해 안타까울 뿐이다. 다시 작가의 시 ‘세상 바라보기,을 감상해보자.
바람이 읽어주는
경문을 알아들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지
경문에 취해서 흔들거리는지
이 세상은
책이며 스승이라서
속에 꽉 찬 글이며 말을 골라
내 머리 속 공책에 생각을 적는다
이 세상은
소리 없는 소리라도
아름다운 음악이며 그림을 그려
빈 가슴 속을 가득 채운다. -세상 바라보기, 전문.
산중에 사는 사람은 오히려 산의 장중미(莊重美)를 더 잘 모른다. 산의 품속을 떠나 멀리서 바라다볼 때 산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시성 괴테가 알프스산을 오르다가 그 산세의 웅장미에 감동되어 ‘위대한 창조주시여! 이렇게 거대한 작품을 지어 놓으시고 어찌 말이 없으십니까?’ 모자를 벗고 절을 하였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온다온다 하는 것은
나를 찾아오던 것을
간다간다 하는 것은
나를 두고 가는구나
이 때를 기다릴 것도 없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준비 없이 오지 않으며 가지 않는데
준비 없는 내 주머니 챙기지 못하고
게으른 발걸음만 남았을 때
기억할 수 없는 눈요기는
그렇게 변하는 것을
모르른 척 지켜보며 바라보고 있다. -들녁에서, 전문.
‘허허벌판’ 이란 시집을 낸 시인의 ‘들녁에서’란 시의 전문이다.
광대무변한 들녘에 서서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정경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심정의 참신함을 얻는 순간이다.
빈 지개를 지고 다니는 농민은 늘 가난하고, 빈 수레의 바퀴 소리가 요란하듯 작품이 별로 없이 장자리만을 찾아 헤매거나 문학 단체들만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문인은 영혼이 죽은 문인이다.
수시로 자기 자신의 작품을 들춰보며 퇴고(推敲)를 반복하고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일삼는 문인이라야 후세의 존경을 받는다.
시란 육신으로 바라다본 사물의 세계를 사유의 체로 걸러서 탄생시킨 생명의 언어인 동시에 영혼의 메아리다. 외면에 비친 사물의 모습이 내면의 영상으로 승화된 언어의 진솔한 표현이 시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시의 한 단어 속에 깊은 뜻이 숨겨져 있고, 한 줄의 문장 속에 의미심장한 지혜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주머니 속에는 항상 메모지가 있어야하고 시인의 손에는 늘 펜이 쥐어져 있어야한다.
시상은 번개와 같아서 예고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안개같이 자취 없이 살아져 버리기 때문에 시상이 내게 갑자기 찾아오면 즉석에서 영접하고 메모해 두어야 내 작품의 핵심이 된다.
있어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누리는 자유는
변하여 떠나고
놓쳐서 떠나고
채워서 떠나는데
비바람 맞으며
섭렵한 글과 말이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
반짝반짝 빛나는
서릿바람으로 쌓인다. -낙엽 3, 전문.
저자가 낙엽 시리즈로 엮은 중 낙엽3의 전문이다.
선인들이 일러 낙엽귀근(落葉歸根) 이라고 했다. 이른 봄 새싹으로 움터서 따가운 한여름 수분과 양분을 만들어 꽃과 잎에 전해주고 자기 자신은 가을 서릿바람을 타고 다시 뿌리로 되돌아가는 위대한 자연의 섭리가 은연중에 보이는 모습이 훈훈하다. 이는 마치 자기의 자녀들을 잘 키워놓고 그들의 곁을 떠나가는 부모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래서 인륜과 천륜은 상통하는바가 크다.
시인은 진실하고, 소설가는 궁리(窮理)하고, 수필가는 진실해야 한다.
시에서 진실이 결여되면 미사여구(美辭麗句)의 언어적 나열이나 짧은글로 끝나기 쉽고, 소설이 지루하고 흥미가 없으면 사장(死藏)되게 마련이고, 수필이 자화자찬(自畵自讚)에 치우치거나 객관적 사고의 영역을 벗어나면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다.
시인이 분명하게 가슴속에 깊이 간직해야할 명언은 ‘언어의 절제’다. 시란 거리에 떠돌아다니는 언어들을 붙잡아다가 억지로 엮어 놓은 짜깁기가 아니란 뜻이다. 시는 분명 생동하는 언어의 조각이요, 살아 움직이는 산 언어의 혼 불이다. 서용덕 시인의 시세계를 냉철하게 바라다보면 언어의 절제가 투철하다는 사실에 접하게 된다.
바람 없는 날에
하얀비가 주룩주룩 내려
가슴이 흠벅 젖은 체로
그리움만 살아나
바라보는 눈 빛 풀어진
하얀 눈물만 고인다
비 내려도 빈 가슴 채우지 못하고
나누어도 섭섭한 마음뿐인데
안은 것은 붙잡지 못한 빈 손이었다
하얀 것을 풀어 마시고
물색으로 물든 들녘에도
텅 빈 곳에 채워지는 것은
어찌 바람 뿐 일까
바람같이 가볍게 떠나는
바람 없는 날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빈손 들어 흔들어서 빈손이다. -바람 없는 날에, 전문.
가슴을 텅 비우고 그 속에 새하얀 만년설을 가득히 담은 순수무잡 한 시인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들어나 보이는 모습이다.
가슴이 흠뻑 젖은 채로 그리움만 살아 물색으로 물든 들녘을 바라보며 시심을 엮은 시인의 시상이 바람처럼 텅 빈 곳을 채워주고 있다.
알라스카에서 에스키모와 대결해도 손색에 전혀 없을 건장한 체구의 서용덕 시인이 만년설에 덮여 꽁꽁 얼은 새 시집 원고뭉치를 들고 아무연락도 없이 내가 사는 샌디에고로 찾아와 내려놓고 간지 달포, 나는 이 보따리를 풀어 농부의 손으로 살살 어루만져 주었더니 어느새 싹이 돋고 시심이 자라 향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짙은 시심의 향기가 알라스카 설원을 넘어 고국과 이국의 숱한 독자들의 가슴속을 찾아가 심마니의 풋풋한 향기를 전해 줄 것을 생각하니 나의 마음도 온기가 돌아 포근해진다.
필자와 독자 모두가 이 새 시집을 읽으면서 행복에 젖으시기를 바란다.
시란 샘물과 같아서 퍼 올리면 올릴수록 맑고 시원한 생수가 솟아나고 우리들의 마른 갈증을 해갈시켜준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세심정혼(洗心淨魂)의 경지로 이끌어 준다는 뜻이다.
시인은 언어의 밭을 가는 쟁기꾼이요, 분명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이다. 새로운 시집의 탄생은 미주문단의 아름다운 경사다.
새 시집을 상재하는 서용덕 시인께 축하를 드린다.
2012년 세모 샌디에고 에덴농장에서
수봉(秀峯) 정용진(鄭用眞)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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