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신화의 진실
2025.12.19 13:00
1955년 크리스마스 이브,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시어스 백화점은 신문에 광고를 실었다. ‘산타에게 직접 전화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를 게재했다. 헌데 인쇄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했다. 광고에 실은 그 번호는 산타 핫라인이 아니라 냉전 시대, 국가 안보 위기 상황에만 사용되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직통 라인인 비상 핫라인이었다.
그날 저녁, 해리 슈럽 대령의 책상 위 빨간 전화기가 울렸다. 수화기를 든 슈럽 대령은 긴장했지 만 들려온 것은 예상 밖의 어린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산타 할아버지세요? 저 착한 아이였어요’
대령은 순간 당황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깊은 목소리로 산타 역할을 자처했고, 밤새 걸려온 수십 통의 전화를 모두 받았다. 이 아름다운 실수가 전통이 되어 지금도 방위사령부는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위성과 레이더로 산타를 추적하는 일명 '산타 추적 작전'을 펼치게 됐다. 전 세계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며 산타가 어디쯤 선물을 배달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거다.
거의 같은 시기, 또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들이 산타를 찾게 되면서 캐나다 우체국도 특별한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산타에게 보낸 편지들이 우체국에 쌓이기 시작했는데 주소는 단지 ‘산타클로스, 북극’뿐이었다.
우체국 직원들은 난감했지만 자발적으로 일일이 답장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공식 프로그램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산타의 우편번호까지 생겼다. 이 우편번호로 매년 수십만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캐나다 우체국은 20개 이상의 언어로 답장을 보낸다고 한다. 점자로 쓰인 편지까지도.
이 두 전통은 같은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수든 우연이든, 어른들이 아이들의 믿음을 지켜주기로 결심한 순간들의 마음들이었던 거다.
헌데 이보다 훨씬 앞서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1897년, 8살 소녀 버지니아는 ‘뉴욕 선’ 지(紙)에 편지를 보냈다.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나요?’ 이 편지를 받은 편집자는 고심 끝에 사설을 썼다. ‘Yes, Virginia, There is a Santa Claus’로 시작하는 이 글은 신문 역사상 가장 많이 재인쇄된 사설이 되었다.
심리학자들은 산타 신화는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집단적 환상게임' 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라서 산타의 실체가 거짓임을 알게 되지만 동시에 더 큰 진실을 배운다는 거다. 세상에는 자신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서로에게 마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산타클로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북극에 사는 한 노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 몰래 선물을 준비할 때, 익명의 기부를 할 때, 남의 기쁨을 위해 수고할 때, 우리 모두가 산타가 되면서다.
슈럽 대령이 어린아이의 전화를 받고 산타 역할을 한 그 선택, 우체국 직원들이 산타 편지에 답장을 쓰기 시작한 그 결정, 그리고 매일 수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하는 작은 노력들, 이 모든 것이 바로 산타의 실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관대함, 헌신이 있는 한 산타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도 천 년, 아니 영원히 아이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말이다. 130년 전 버지니아가 들었던 그 대답 처럼.
다음 주가 크리스마스다. 산타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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