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60년대 뉴욕의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는 최하층민들이 몰려 살던 구역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계 갱단과 그에 맞서는 아일랜드계 갱단의 패권 다툼은 치열했다. 특히 영국계 이민자 우두머리 빌(Bill)은 잔인하기로 악명을 떨치는 인물로 온갖 악행과 불법을 저질러 인간백정, ‘도살자 (Bill the Butcher)’로 불렸다.
  그런 그는 먼저 신대륙에 와서 터를 닦았으며 독립전쟁 희생자의 후손인 만큼 이 땅의 원주인인 동시에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뒤에 이주해 온 아일랜드계를 핍박한다. 하지만 뒤늦게 온 아일랜드계도 국적획득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남북전쟁에 참여해 나름대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는 자부심으로 영국계의 폭압에 대항해 싸운다.
  그러던 중 두 집단의 전쟁에서 아일랜드계 우두머리 발론(Vallon)이 빌(Bill)에게 처참히 살해당하고 이를 목격한 발론의 어린 아들은 고아원으로 끌려간다. 그 후
16년이 흘러 성인이 된 아들은 파이브 포인츠로 돌아와 빌(Bill)과 아버지의 복수전을 벌여 그를 죽게 한다. 19세기 과도기 미국의 이민자들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 ‘Gangs of New York’ 이야기다.  
  헌데 자신들만이 진짜 원주인이라고 주장하는 빌(Bill)이 뒤늦게 오는 이민자들에게 항상 내뱉는 말이
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과연 영국계가 원주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는지? 따지고 보면 영국계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네델란드계다. 해서 그들은 맨하튼 지역을 네델란드 수도 이름을 따라 -암스텔담(New-Amsterdam)’으로 불렀다. 후에 영국이 명칭을 뉴욕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 기이한 것은
서로 이민자이면서 나중에 왔다고 배척하는 영국계 이민자와 아일랜드계 갈등 속에 원조 토박이 아메리카 원주민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누가 누구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네델란드계, 특히 인디언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빌(Bill)에게 살해 당한 아일랜드 우두머리 발론의 아들 이름이 암스텔담(Amsterdam)인 것이 영국과 아일랜드의 우선권 다툼에 조소(嘲笑)를 던지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무튼180 여 년 전 나왔던 이 말이 요즘 우리의 귀를 다시 거슬리게 하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 차별은 그 동안 흑백 갈등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왔다. 헌데 이는 흑백간의 문제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형성되었다. 반면에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기득 세력인 주류와 비주류라는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다.
주류에게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영원한 외국인 (Perpetual Foreigners)’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른 소수계 민족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사회에 비교적 쉽게 동화되는 반면 아시아계는 이와 달리 그렇지 못한 데다가 외모나 언어, 문화, 관습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온전한 미국인이 될 자격이 부족한 이방인혹은 외부인같이 다른 사람들로 간주되어서다. 해서 내뱉는 말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Bill)의 후손들이 환생이라도 한 걸까?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경계심은
일본이 청일전쟁(1894-95)에서 승리하면서 나온 황화론 (黃禍論:Yellow Peril)’에서 시작했다. 1895년 당시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동양인이 유럽 문명에 위협이 된다’고 한 아시아 견제론이다.
  아시아계를 한 집단으로 싸잡아 견제한 이 개념은 1960년대 들어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 로 진화했다. ‘
모범적 소수자란 법을 준수하고 근면성실하게 일함으로써 인종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주류 사회에 진입해 성공적인 삶을 사는 아시아계 이민자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포장지에 불과하고 그 속내는 고분고분 듣고 묵묵히 열심히 일하며 불만 등으로 골치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사회 제도 비판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맞추어 살라는 주문이다.
   해서 다른 소수인종에 모범이 된다는 이 긍정적 시각은 이들의 지위가 미국사회에 불리하게 작용될 때는 언제든 이방인(외부인)으로 내몰리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짐과 동시에 흑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돼 온 것이다. , ‘아시아인들을 봐라. 열심히 배우고 일하니 잘살지 않느냐’며 흑인들의 불만과 가난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구실로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흑인들은 지난 200 여년 백인과 함께 오늘의 미국을 이룩한 일원이었음에도 이민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아시아계와 비교당하는 피해의식에 더해 주류 구성원에서 밀리는 박탈감이 겹치면서 분노와 증오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중국이 경제적 부흥으로 미국의 맞수로 부각되면서 재조명되는 황화론이 코로나 사태를 맞아 ‘중국 바이러스’니 ‘황색 경보’니 하는 낙인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시아계에게도 일면 책임은 있다. 그 동안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해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해서 설혹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맞서 싸우지 않고 참으며 열심히 일만 뿐이었다. 그러는 한편 오로지 자녀들 뒷바라지에 힘써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대리 만족도 했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했다는 자족감에 이르면 언사적인 모범적 소수자란 이미지에 안주한다. 다시 말해 미 주류 지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믿음에 충실했기 때문에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을 비중있게 받아들이거나 그 저항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그 동안 목소리를 내었지만 주류가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항변도 있다.)    
   그러는 한편 흑인이나 또 다른 인종 소수자들 보다는 우월하다고 스스로 별화 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아시아계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연결되고 증오의 쉬운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 최근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총 8명이 희생당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거다.
   바이든 대통령의 4대 국정 과제 중 하나가 미국 내 인종 평등이다. 하지만 이는 주로 흑백갈등에 촛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에 아시아계 차별 문제는 뒤로 밀릴 수 있다. 미국 전체 인구의 약 5-6% 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흑백처럼 단일한 집단간의 갈등이 아니라 아시아계 집단은 그 안에 무수한 민족적 다양성 때문에 정치적으로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은 한계도 있어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모두 일어서 함께 큰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어떠한 차별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먼저 여기서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는 터전이 제도적으로 마련되기까지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땅에 깊이 뿌려진 가혹하게 쏟았던 수고의 땀과 인종차별의 유산을 멍에처럼 매고 흘린 흑인들의 희생의 피가 베어 있음도 상기해야 한다.     
  애당초 모범적 소수자라는 개념의 근거가 빈약하기도 하지만 이 말은 뒤집어보면 비 모범적 소수자도 있다는 의미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인종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또 하나의 숨겨진 차별전략으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방패 도구에서 벗어나 정당한 권리 쟁취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성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포도원에 이른 아침에 온 일꾼이나 낮에, 오후에 그리고 저녁에 온 모두가 같은 하루 품삯을 받는다는 이야기. 이는 먼저 오건 뒤에 오건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차별없는 동일한 자격이 주어진다는 의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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