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합창

2020.04.06 15:02

김학천 조회 수:24

  로마에는 유명한 원형 경기장들이 있다. 대명사처럼 쓰이는 콜로세움 말고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가 베로나에 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에 있는 베로나는 중세 이탈리아의 앙숙인 몬테규 가()과 캐풀렛 가()의 아들과 딸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셰익스피어는 오래 전에 내려오는 이 이야기에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기어 올라갔다는 유명한 발코니 장면과 시적인 대사들을 추가해 화룡점정을 찍었던 거다
   이 때문에 베로나에는 운명적 사랑의 상징이 된 바로 이 두 사람을 위한 기념물이 있다. 우선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 모든 벽에는 사랑을 기원하는 낙서가 가득하고 정원 가운데에는 줄리엣 동상이 있다. 헌데 동상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반들거린다. 그리고 줄리엣의 집 옆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과 노래를 연출했던 발코니가 있다. 이제 그 발코니가 오늘에 와서 또 다른 모습의 인류애의 무대로 재등장하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로 나라 전체에 이동 제한령이 떨어지자 이탈리아 사람들은 집집마다 발코니로 나왔다. 누군가는 노래하고, 누군가는 북을 두드린다. 여기에 아낙네와 할머니는 프라이팬이나 냄비 뚜껑을 들고 나와 장단도 맞춘다.
  그런가 하면 기타나 아코디언 같은 악기도 등장하고 유명한 가수, 연주자, 지방 당국까지도 동참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발코니 합창'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아울러 곳곳에서 종소리에 맞춰 전국의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보내는 응원의 박수도 울려 퍼진다.
  노래도 다양하다. 국가에서부터 발라드, , 오페라 아리아 등 총 망라된다. 더러 지역마다 노래는 달라도 발코니 합창의 메시지는 같다. 그 중에서도1990년대 유행가 ‘고맙다 로마(Grazie Roma)’가 인기다. ‘비록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다는 가사 때문이다. 그리고 발코니에는 안드라 투토 베네(Andra Tutto Bene)’라고 쓴 플래카드도 펄럭인다. ‘모든 게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다.
  이 모두가 비정상적인 침묵에 빠진 도시의 발코니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는 함께’라는 메시지인데 이에 따라 떨어져서함께 (#Unitimalontani)’라는 해시태그가 불꽃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5년에 나왔던 노래가 국민 격려가로 재 탄생했다고 한다. ‘괜찮아 잘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라는 가사다. 이곳 미국은 어떨까? ‘We are the world’,  ‘We shall overcome’이 떠오른다. 이렇듯 그들의 합창은 이제 그들 것만이 아니고 전세계 전 인류가 한 마음 한가지로 이 어려운 역경을 헤쳐 나가기 위한 극복의 대합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코니에서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문이라는 이름만이 적()일 뿐이에요. 장미는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달콤한 향기는 그대로 에요. 그러니 그 이름을 벗어버려요.’ 
  지금 우리의 적(
)이 무엇이든 이를 떨쳐버리는 날 우리는 잃어 버리지 않은 우리 고유의 향기를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용기와 도전 그리고 아름다운 동행이다. 안드라 투토 베네(Andra Tutto Bene: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Unitimalontani(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함께)’ 그리고 We shall over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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