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준 교훈
2024.02.09 19:33
흔히 장미는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흉한 가시가 달린 흠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장미는 고혹적이고 화려한 최고라는 꽃의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 열등함을 극복해 낸 인고의 고통을 안다.
그래서 그런지 장미는 화려함 속에서도 자신의 미(美)를 자랑하지 않는 침묵을 아는 기품과 위엄이 있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미소년 아도니스와의 비련의 결과로 아네모네를 낳았다. 이 비밀을 감추려고 아들 큐피드는 침묵의 신에게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 감사의 대가로 장미를 선사했다. 그로부터 로마인들에게는 말조심하라는 의미로 연회장 천장에 장미를 조각하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더 나아가 장미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마력도 갖고 있다. 중국 한 무제의 총애를 받던 후궁 여연은 절세미인이었다. 그녀가 지나 갈 때면 꽃들마저 감히 대적을 못하고 시들어버릴 정도였다고 하니 그 미모를 가히 짐작 할 수 있겠다.
어느 날 그녀와 함께 정원을 거닐다가 아름다운 장미를 본 무제가 ‘이 꽃이 너의 웃음보다 더 아름답구나’하자 ‘꽃은 돈을 주고 살수는 있어도 사람의 웃음은 살 수 있는 게 아니지요’라고 했단다. 이로부터 장미를 ‘웃음을 얻는 꽃’이라 부르고 그녀는 그 꽃 속으로 들어가 정(精)이 되어 사람 마음의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해서 이런 여러가지 미덕을 두루 갖춘 장미는 마침내 사랑과 온 마음으로 바쳐지는 ‘꽃중의 꽃’으로 군림하게 됐던 거다.
한 신사가 멀리 고향에 사시는 어머니께 꽃을 보내기위해 꽃집에 들렀다. 차에서 내려 들어가려는데 꽃가게 앞에 앉아 흐느껴 울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았다. 그는 소녀에게 다가가 무슨 일로 우느냐고 물었다. ‘엄마에게 드릴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사고 싶은데 갖고 있는 돈이 모자라서 살 수가 없어요.’
측은한 마음이 든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와 함께 들어가자. 내가 장미를 사주마.’ 소녀를 데리고 꽃집으로 들어가 먼저 장미 한 송이를 사준 뒤 자신의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도 장미 한 다발을 배달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가게를 나오면서 그는 환한 얼굴로 바뀐 소녀에게 집까지 태워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감사’하다고 깍듯이 인사하고는 ‘엄마한테 데려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헌데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공동묘지였다. 갓 새로 만든 무덤 앞으로 다가간 소녀는 '엄마' 하면서 꽃을 내려놓았다.
이를 본 신사는 무언가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를 집까지 바래다 준 뒤 곧바로 꽃집으로 되돌아가 배달 주문을 취소했다. 그 대신 장미 꽃 한아름을 사들고는 부리나케 뛰쳐 나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200 여마일이나 떨어진 어머니 집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우리는 삶의 긴 여정에서 늘 무언가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간다.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그러다보니 정작 소중한 일들은 뒤로 미루어지기 일쑤다. 그러면서 귀하게 맺어진 인연들에게 할애되어야 할 감사와 사랑과 미안한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내일은 우리의 명절 설이요, 며칠 후면 발렌타인 데이다. 가족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훌륭한 선물은 ‘함께하는 시간’일게다. 겉치레가 아닌 온 마음으로 사랑과 진심을 나누는 시간 말이다.
무엇보다 침묵의 장미를 본받아 남의 말 하지 말고 내 자랑도 하지 말아야겠지만 ‘사랑한다’는 말만은 아낌없이 많이 하라고 기리는 날 일터. ‘해피 설! 해피 발렌타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소녀가 준 교훈 | 김학천 | 2024.02.09 | 121 |
126 | 부엔 카미노 (Buen Camino)! | 김학천 | 2024.01.11 | 15 |
125 | 10-29 참사 (참척지변) | 김학천 | 2022.11.08 | 38 |
124 | 종은 더 아파야한다 | 김학천 | 2022.10.04 | 62 |
123 | 4-29 30주년에 즈음하여 (소수인종비판론) [1] | 김학천 | 2022.05.10 | 66 |
122 | 4-29, 30주년에 즈음하여(모범적 소수자) | 김학천 | 2022.05.10 | 54 |
121 | 끄트머리에서 다시 시작을 | 김학천 | 2022.01.04 | 96 |
120 | 고엽의 계절 | 김학천 | 2021.11.12 | 85 |
119 | 리더는 마지막에 | 김학천 | 2021.09.08 | 80 |
118 | 카운터포인트 (음악과 전쟁) [1] | 김학천 | 2021.03.26 | 96 |
117 | 코비드와 동백꽃 [1] | 김학천 | 2021.03.15 | 89 |
116 | 우리가 올라가야 할 언덕 | 김학천 | 2021.03.01 | 34 |
115 | 한 뼘의 마당 | 김학천 | 2020.05.12 | 118 |
114 | 4월. 샨티 샨티 샨티! | 김학천 | 2020.04.11 | 38 |
113 | 거리두기 | 김학천 | 2020.04.11 | 99 |
112 | 발코니 합창 | 김학천 | 2020.04.06 | 29 |
111 | 춘래불사춘 | 김학천 | 2020.03.20 | 91 |
110 | 총균쇠 [1] | 김학천 | 2020.03.20 | 124 |
109 | 손씻기의 위력 | 김학천 | 2020.03.20 | 103 |
108 | 추석과 반보기 | 김학천 | 2019.09.13 | 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