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09.14 09:29

야박해진 국내선 비행기 인심

조회 수 347 댓글 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뉴저지, 누군가 그곳에서 왔다 하면 괜히 반갑고 간다 하면 내 마음도 함께 달려간다. 딸이 그곳으로 이사간 후 생긴 증상이다. 같은 미국땅인데 나들이 한번 하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지. 벼르고 별러 2년 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착륙하자마자 '얼큰한 음식 먹고 싶어' 먹자 타령이 흘러나온다. 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음료수 한잔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언제 없어진 건지 쿠키나 땅콩같은 허기 면할만한 간식조차 없다. 음식은 돈 주고 사 먹으란다. 한 번 사 먹어 본 유쾌하지 않은 경험 때문에 배고픔을 꾹 참는다.

영화나 볼까 싶어 준비해 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앞에 있는 손바닥만한 TV를 켠다. 돈 주고 보란다. 무려 8달러. 인심 사납다 싶다가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순이겠지, 클릭 세상을 통해 산 좋은 가격의 비행기 표를 보며 고개 끄떡이는 심정이 된다.

국내선도 국제선처럼 음식을 제공하던 때가 있었다. 기내식 먹는 재미, 어린 시절 소꿉놀이 할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정말 조그만 일탈의 즐거움이었다. 이젠 아침 든든히 챙겨 먹고 나눠 먹을 새참 준비도 해서 옆 동네 마실가는 기분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좀 성가시긴 하겠지만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국내선의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는다면 창밖의 환상적 풍광이다. 화장실 가기 편한 통로 쪽을 선호하다가 창 쪽을 선택해서 얻은 수확이다. 느슨하게 펼쳐놓은 구름 사이로 듬성듬성 동네가 보이다가 더 높이 올라가면 비행기 아래로 황홀한 구름바다가 펼쳐진다.

날씨가 화창하면 웬만큼 높은 곳에서도 땅의 풍경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동부와 서부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또 깊은 산과 평원의 장엄함에 압도당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좋은지 다채롭고도 풍성한 자연에 가슴 먹먹해진다.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비행기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TV 지도를 보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봤거나 가보고 싶은 명소를 통째 감상할 수도 있다.

음료수 한 잔뿐이라며 투덜댔지만 내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더 큰 기쁨을 위해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배고픔이고 창밖을 관찰할 여유가 있을 만큼의 허기였다.

늘 잊고 살지만, 먹을 것이 없어 못 먹는 이들의 배고픔을 잠시 생각한다. 육신의 병이나 수술로 인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떠올린다.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 먹을 것이 있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함께 먹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음식을 특별히 가려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등등. 먹는 것과 관련한 평범한 말들이 감사의 조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국내선의 추세가 그렇다면 예전에는 '밥 같이 먹게 기내식 많이 먹지 마!' 했는데 이젠 내리자마자 '얼른 맛난 것 먹으러 가자!'가 될 것 같다. 비행기에서 내려 직행한 한국식당의 얼큰한 따로국밥 한 그릇 얼마나 맛있었는지, '최고!'를 외치며 엄지손가락 높이 치켜든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9.14

?
  • Chuck 2016.09.14 11:54
    여행자라면 선박편이 아닌 이상 항공을 이용하게 된다.
    그렇기에 항공사들은 저마다 차별화한 기내서비스를 제공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승객들이 기내 서비스를 잘 몰라 충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오늘은 모르면 손해인 '숨겨진 기내 서비스'를알아야 함니다?
    다만 기내 서비스는 항공사 별로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므로,


    https://youtu.be/KcuDdPo0WZk
  • Chuck 2016.09.14 12:33
    퐁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
  • Chuck 2016.09.14 12:42
    가고파 - 이은상 시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 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져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https://www.youtube.com/embed/GW4bJ8c9BLg"
  • 오연희 2016.09.22 01:26
    최무열 선생님도 즐거운 추석 보내셨는지요?
    추석에는 '가고파'가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아요.
    늘 감사드러요.^^
  • son,yongsang 2016.09.21 02:31
    공감 가는 좋은 글 잘 힑었습니다. 저는 어쩌다 미각을 잃은 지 한참 되어서 머리 속으로만 맛난 음식을 떠올리곤 하지요. 아주 오래전 국제선이긴 하지만 과음으로 속이 쓰려 아는 스튜어트 통해 컵 라면 한개 얻어먹던 그 시절이 환상이네요! 그래도 잘 다녀오셨으니 좋습니다. ㅋ
  • 오연희 2016.09.22 01:30
    공감가는..ㅋ 이렇게 극찬을 들어도 괜찮을지...고맙습니다.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미각까지...ㅠ.ㅠ
    국제선에 컵라면도 준비가 되어 있었군요. 진작 알았으면 저도....ㅎㅎ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9 수필 파피꽃 언덕의 사람향기 12 file 오연희 2017.05.01 301
368 수필 헤어롤, 이젠 웃어넘길 수 있어 10 오연희 2017.04.04 396
367 수필 '카톡 뒷북녀'의 카톡 유감 4 오연희 2017.03.14 258
366 수필 태극기도 촛불도 '나라 사랑' 15 오연희 2017.02.22 300
365 수필 드라마 '도깨비'에 홀린 시간 4 오연희 2017.01.31 337
364 수필 함께 밥 먹는다는 인연의 대단함 4 오연희 2017.01.19 9825
363 수필 정전이 남기고 간 것 4 오연희 2016.12.28 424
362 토마토 수프 5 오연희 2016.12.20 266
361 수필 꽉 막힌 도로와 한국 정치 6 오연희 2016.11.29 410
360 수필 남가주에서 꿈꾸는 '가을비 우산 속' 2 오연희 2016.11.09 666
359 수필 부고에서 읽는 세상살이 4 오연희 2016.10.19 420
» 수필 야박해진 국내선 비행기 인심 6 오연희 2016.09.14 347
357 잔치국수 4 오연희 2016.08.29 238
356 수필 렌트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4 오연희 2016.08.25 119
355 폐가(廢家) 4 file 오연희 2016.08.08 238
354 수필 목소리는 인격, 무얼 담을까 2 오연희 2016.08.01 177
353 수필 신문에서 만나는 연예인과 스포츠인 2 file 오연희 2016.07.01 148
352 수필 보물단지와 애물단지 5 오연희 2016.06.20 160
351 수필 은행 합병과 자녀들의 결혼 2 file 오연희 2016.05.28 193
350 수필 나에게 온전히 몰두하는 아름다움 2 오연희 2016.05.19 17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